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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키신저, 안보보좌관이 되다
작성일 : 2022-12-30 17:49조회 : 1,635
키신저, 안보보좌관이 되다
1968년 대선에서 닉슨은 중서부와 서부, 그리고 조지 월러스를 지지한 최남부(Deep South) 5개주와 존슨의 후광으로 험프리를 지지한 텍사스를 제외한 남부에서 승리해서 1960년 대선 패배를 설욕했다. 미네소타 출신인 험프리는 자기 주와 미시건을 제외하곤 중서부에서 닉슨에게 완패했다. 1960년 대선에선 민주당의 조직적인 부정투표로 패배의 쓴 맛을 보았던 일리노이에서도 닉슨은 승리했다.
닉슨이 승리하자 키신저는 자기 앞날을 생각하며 기대에 찼다. 동부 지식인들은 도무지 닉슨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탓으로 닉슨 캠프에는 변변한 외교 전문가가 없었다. 1960년 대선에서 닉슨의 러닝메이트였던 헨리 캐봇 롯지Henry Cabot Lodge Jr. 1902~1985)가 키신저를 안보보좌관으로 닉슨에게 천거했다. 롯지는 키신저가 닉슨 측과 은밀한 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을 몰랐다.
키신저는 닉슨을 알지 못했다. 키신저는 1967년 공식 파티 석상에서 닉슨을 만나 봤을 뿐이었다. 1968년 대선 기간 중에도 키신저는 닉슨과 전화 통화도 한 적이 없었다. 대선이 끝나고 닉슨 선대위 본부장이었던 밥 홀드먼(Bob Haldeman 1926~1993)이 키신저에게 전화를 해서 키신저는 11월 25일 닉슨을 뉴욕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닉슨은 자기는 대외정책을 백악관이 이끌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키신저에게 의견을 물었다. 키신저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를 강력한 기구로 만들어야 한다고 답했다.
그 다음날 닉슨의 선대위원회를 이끌었던 존 미첼(John Mitchell 1913~1988)이 키신저에게 전화를 걸어서 안보보좌관을 제안했다. 사흘 후 키신저는 수락의 뜻을 전했다. 밥 홀드먼은 백악관 비서실장이 되고 존 미첼은 법무장관이 될 예정이었다. 닉슨과 전화 통화도 없었던 키신저는 이렇게 해서 닉슨의 이너서클이 됐다. 존 미첼과 밥 홀드먼은 키신저가 은밀하게 베트남 평화회담 정보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아는 극소수 닉슨의 측근이었다.
키신저는 자기가 안보보좌관 제안을 받았다고 하버드 동료 교수들에게 알렸다. 하버드 교수들은 키신저를 좋아하지 않아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소식을 들은 맥조지 번디는 키신저에게 거절하라고 전화를 걸었다. 번디는 닉슨은 도무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라서 같이 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번디는 물론 키신저가 닉슨 측과 은밀하게 통했던 관계임을 몰랐다. 키신저가 안보보좌관으로 임명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언론은 탁월한 인사라고 평했다. 뉴욕타임스의 제임스 레스턴은 키신저가 맥조지 번디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물론 번디는 키신저의 지도교수가 아니다.) 키신저가 평화회담 정보를 닉슨 측에 은밀하게 흘렸음을 알았더라면 레스턴은 그렇게 쓰지 않았을 것이다.
닉슨은 자신의 친구이며 아이젠하워 행정부에서 법무장관을 지낸 윌리엄 로저스(William Rogers 1913~2001)를 국무장관으로 임명했다. 로저스는 국무장관을 원하지도 않았고 되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닉슨은 대외정책을 모르고 의욕도 없는 변호사 친구를 국무장관으로 앉혀 놓은 셈이다. 닉슨 행정부 들어서 대외정책의 주역은 키신저가 이끄는 백악관 안보실이었다. 키신저는 스태프를 가혹하게 일을 시키는 사람으로 악명이 높았다. 백악관 안보실은 매일 야근이었고 직원들은 주말에도 나와서 일을 했다. 반면에 로저스 국무장관은 저녁 6시만 되면 퇴근을 했고 주말에는 골프장에서 살았다.
키신저는 스태프들에게 언론은 물론이고 백악관의 다른 부서 사람들과도 어울리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도 키신저는 기자들과 이야기하기를 좋아 했다. 기자들은 키신저와 통화해서 주워들은 말로 기사를 써댔다. 키신저 아래에서 일한 한 스태프는 키신저는 하루 일과의 1/3, 심지어 1/2을 기자들과 통화하는데 소모했다고 나중에 술회했다. 키신저는 홀드먼 비서실장과 사전에 약속을 하지 않고 닉슨을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특권을 향유했다. 닉슨은 CIA도 키신저를 통해서 보고하고 자기에게 직접 보고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CIA가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지 못하는 경우는 CIA가 생긴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닉슨은 CIA가 동부 명문 대학을 나온 엘리트가 움직이는 집단으로 보았다. 닉슨이 워터게이트로 파멸로 간 원인 중의 하나는 CIA와 소원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닉슨은 이처럼 키신저에게 날개를 달아 주었다. 아마도 닉슨은 키신저가 자기처럼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자기 뜻을 달성한 입지전(立志傳)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하버드를 나오고 하버드 교수를 지내도 뉴욕의 빈곤한 지역에서 자란 독일계 유태인 키신저는 맥조지 번디 같은 동부 엘리트 성골(聖骨)과는 거리가 멀었다. 닉슨과 키신저는 자기가 원하는 바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쟁취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이런 두 사람이 격동의 1970년대 세계 질서를 만들어 나갔다.
사진 (1) 전용기(Air Force One)에서 닉슨과 키신저, 그리고 로저스 국무장관.
사진 (2) 전용기 편으로 캘리포니아 샌클레멘츠 저택을 갈 때 수행하는 밥 홀드먼 비서실장. 백악관의 First Dog이 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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