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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그리고 논설위원

작성일 : 2023-07-31 08:55조회 : 1,367

칼럼, 그리고 논설위원

한겨례신문 기자를 지낸 세명대 안수찬 교수가 쓴 ‘칼럼 쓰지 맙시다’(미디어 오늘 2023년 6월 10일자)라는 칼럼을 페북을 통해 읽었다. 우리 언론은 사실보도와 의견개진이 혼합되어 있다면서 기자는 사실 탐사와 보도에 집중해야 한다는 논지에는 원론적으로 공감하면서도, 안 교수가 놓친 것이 있다고 생각되어 몇 자 쓰고자 한다.

안 교수는 우리나라 신문에서 기자가 논설위원이 됐다가 다시 편집국 부장 등이 되는 행태를 특히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기자는 보도를 하고 기자가 논설위원이 되면 다시 편집/보도국(뉴스룸)으로 돌아와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미국 신문은 기자가 논설위원이 되면 다시 편집/보도국으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가 첨언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 신문도 1990년대 말까지는 논설위원은 논설위원이고 기자는 기자였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어떤 이유로 1990년대 말에 메이저 신문사가 기자와 논설위원 로테이션 시스템을 도입했는가 하는 문제가 있고, 이는 언론학자들이 연구할 과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후 신문사 논설위원의 격(格)이 떨어졌거나 최소한 달라졌고, 논설위원을 거친 기자는 사실 취재와 의견 개진을 혼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전까지는 주필과 논설위원은 동료(colleague)로서 수평관계였지만 그 후로는 주필과 논설위원의 관계가 상하 수직관계로 변해서 논설위원실의 성격도 상당히 변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나는 1995년 가을부터 2003년 연말까지 조선일보 비상임 논설위원으로 사설과 무기명 칼럼(‘만물상’)을 썼다. 8년이 조금 넘는 동안에 내가 쓴 사설과 ‘만물상’은 450여 편이 되니까 매주 평균 1.1편을 쓴 셈이다. 논설위원이 반(半)근무 하는 일요일 오후에 나가서 회의에 참석하고 내가 준비한 주제나 회의에서 주어진 주제에 대해 글을 썼다. 그 글은 모두 회사의 입장이고 자산이지만 유력한 매체를 통해 내가 생각하는 바를 주장할 수 있었고, 많은 경우에 그것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고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1995년 당시 조선일보 논설실은 조선일보 기자를 오래하고 은퇴를 몇 년 앞둔 역전노장(歷戰老將)들이 주축이었으나 중앙일보에서 논설위원을 지내다가 조선일보로 이적(移籍)을 한 위원도 세 명이나 됐다. 논설위원의 연령은 김대중 주필의 연령과 비슷했고 내가 대략 10년 연하로 제일 젊었다. 이처럼 1990년대 이전에는 논설위원이 회사를 옮기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그리고 1990년대 말에 중앙일보가 처음으로 논설위원과 기자 간의 벽을 헐고 순환보직을 하기 시작한 것으로 기억된다. 조선일보는 그런 추세에 마지막으로 동참했다.

그 즈음이 있었던 변화는 신문 1면을 장식했던 조선의 <만물상(萬物相)>, 동아의 <횡설수설(橫說竪說)>, 경향의 <여적(餘滴)>, 중앙의 <분수대(噴水臺)> 등이 기명 기사(byline)화 된 것이다. 회사마다 사정은 조금은 다르겠지만 이 칼럼은 주로 논설위원들이 집필을 해 왔다. 이 짧은 칼럼은 열독율이 높았고, 1970년대까지는 당대의 논객이었던 천관우 등이 집필을 했다. 자유당 정권 말기에 경향신문은 <여적> 칼럼 때문에 폐간을 당하기도 했다. 내가 조선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조선의 <만물상>은 논설위원들이 돌아가면서 쓰다가 2003년부터 논설위원이 기명으로 쓰더니 그 후론 편집국 기자들도 쓰기 시작했다. 보기 나름이지만 나는 논설위원이 무기명으로 쓸 적의 <만물상>이 시니시즘이 감도는 촌철살인적 멘트가 많았다고 본다. 그런 글은 역시 필자의 연륜(年輪)에서 나오고 또 무기명으로 써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안수찬 교수가 제기한 문제와 관련해서는, 한국의 신문들이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로 넘어가는 시점에 논설위원실과 편집국 사이의 장벽을 헐어 버린 이유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환경, 그리고 조선 중앙 동아 3사의 내부 환경의 변화 등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안 교수가 지적하듯이 뉴욕타임스 등 미국 신문에선 논설위원을 하다가 도로 편집국으로 가는 경우는 없다. 미국에선 박사학위를 받고 논설위원으로 곧장 채용돼서 사설을 쓰다가 필력을 인정받으면 기명으로 칼럼을 쓰기도 한다. 워싱턴포스트의 조지 윌(George Will 1941~)이 대표적인 경우다. 프린스턴에서 박사를 한 그는 아마도 교수가 되지 못해서 내셔널리뷰에서 필자로 있다가 워싱턴포스트의 논설실에 가담한 후 칼럼니스트로 오랫동안 필력을 떨쳤다. 기자 경력이 없더라도 평범한 도시에 있는 보통 신문의 논설위원이 되는 것은 가능하고 흔히 있다. 닉슨 백악관에서 공보비서를 지낸 패트릭 뷰캐넌(Patrick Buchanan 1938~)은 조지타운을 졸업하고 23살 나이에 세인트루이스 신문의 논설위원을 지냈다. 글을 잘 썼던 뷰캐넌은 정치적 재기를 꾀하던 닉슨을 만나서 닉슨의 로펌으로 직장을 옮겼고 닉슨의 정치 참모로서 닉슨과 함께 백악관에 입성했다.

미국 신문은 논설실과 편집/보도국 사이에는 벽이 있지만 그 벽이란 것도 상징적일 뿐이다. 사설은 회사의 입장을 쓰는 것이고 기사는 독립된 편집국의 소관이라고 하지만 그 장벽도 사실은 그리 높은 것이 아니다. 흔히 사주(社主)라고 부르는 경영자와 편집국장, 그리고 논설실을 책임지는 주필이 모두 통해 있기 때문이다. 영화 <The Post>에도 잘 나와 있듯이 당시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장 벤 브래들리(1921~2014)와 주필 메그 그린필드(1930~1999)는 모두 사주(社主)인 캐서린 그레이엄(1917~2001) 여사와 매우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미국 기자들도 자신의 취재를 토대로 책을 내는 것을 꿈으로 생각한다. 미국의 메이저 출판사를 통해 자기 책을 출간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우드워드는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우드워드는 그 자체가 일종의 ‘브랜드’가 되어 있고 그 브랜드를 이용해서 대통령 등과 긴 인터뷰를 하고 그것을 토대로 스태프가 책을 만들어 내고 우드워드의 책은 그 이름 덕분에 잘 팔린다. 그래서, 우드워드를 미국 기자의 전범(典範)으로 볼 수는 없다.

예일대를 나온 밥 우드워드(1943~)는 기사를 못 써서 신문사에서 배겨내지 못할 줄 알았는데, 해군장교로 국방부에서 근무할 때 우연히 알게 된 FBI 부국장 마크 펠트 덕분에 워터게이트 특종을 해서 자신은 물론이고 워싱턴포스트의 위상을 높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워터게이트 기사는 대학을 중퇴한 칼 번스타인(1944~) 기자가 썼다. 우드워드는 정보를 물어 오고 천부적으로 글을 잘 썼던 번스타인은 그것을 기사로 만들었다. 영화 <All the President's Men>에도 벤 브래들리 국장이 우드워드를 젖히고 번스타인에게 기사를 쓰라고 지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진보적 성향이 강한 번스타인은 그 후 워싱턴포스트와 결별하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힐러리 클린턴 등에 관한 책을 썼다. 이처럼 우드워드는 과대평가되고 번스타인은 과소평가된 측면이 있다. 여하튼 1970년대 워싱턴포스트에는 정보와 취재에 강한 밥 우드워드, 기사를 빨리 잘 썼던 칼 번스타인, 그리고 격조 높은 칼럼을 쓰던 조지 윌이 있었다. 각자 자기가 잘하는 것으로 미국 언론사에 이름을 남긴 셈이다.

나는 안수찬 교수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에 공감한다. 하지만 ‘용병(傭兵) 필자’가 지면을 장식하는 오늘날 한국 신문의 현실에서 기자가 칼럼을 쓰는 것을 비판할 필요가 있는지, 나는 솔직히 모르겠다. 요즘 우리 신문의 사정으론 그런 논의 자체가 ‘사치’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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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오늘> 2023.06.12
[사실과 의견] 칼럼 쓰지 맙시다
기자명 안수찬 세명대 저널리즘 대학원

· 깜빡이는 커서를 밀어내지 못하고 컴퓨터 모니터만 쳐다보는 지금과 달리, 과거 어느 시절엔 글을 곧잘 썼다. 현장에 다녀오면 글이 써졌다. 사람을 만나고 시공간을 만지면, 문장이 팝콘처럼 곳곳에서 튀어 올랐다. 글쓰기가 얼마나 쉬운지, 하얗고 뜨거운 그것을 주워 담으면 됐다. 신났다.
피처, 르포, 내러티브로 채워진 그 시절이 천국이었다면, 칼럼 쓰던 시절은 지옥이었다. 오장육부를 쥐어짜면 문장 하나가 나왔다. 하나의 문장으로 완성되는 칼럼은 없으므로 백수십 번 비틀어 짰다. 설익은 추론이 억지로 게워낸 글에 매달려 너덜댔다. 창피했다.
그 창피를 견뎌야 좋은 기자가 될 것이라 여겼다. 한국의 많은 언론인이 칼럼으로 명성을 얻지 않았는가 말이다. 높은 평판을 꿈꾸지 않아도 칼럼 쓰기는 피할 수 없었다. 한국 언론, 특히 신문은 연차별로 칼럼 집필을 할당한다. 기자 시절엔 ‘현장 칼럼’을 쓰고, 부장이 되면 ‘데스크 칼럼’을 쓴다. 그것은 블랙홀과 같다. 다른 중력을 집어삼킨다. 현장 칼럼 쓰는 날이면 다른 현장 취재를 미뤘다. 데스크 칼럼 쓰는 날엔 기사 데스킹 시간을 줄였다.
이토록 대단한 칼럼을 영미 기자들은 거의 쓰지 않는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그들이 성취하려 안달하는 대상은 고정 칼럼이 아니라 심층보도를 담은 단행본이라는 점도 알게 됐다. 그러고 보니, 밥 우드워드가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를 엮어 책까지 낸 일은 알아도, 그가 무슨 칼럼을 썼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수수께끼를 풀겠다고 논문을 뒤지던 일이 뜻밖으로 흘러 언론학 박사 학위를 얻었다. 공부 이후, 나는 분리주의자가 됐다.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것, 적어도 그 분리를 근본 지향으로 삼는 것이 현대 저널리즘의 핵심이라는 의견을 갖게 됐다.
‘사실과 의견의 분리’의 여러 차원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보도 조직’과 ‘의견 주장 조직’의 격리다. 두 조직의 접촉과 연관을 완전히 끊어버리는 게 핵심이다. 기사 쓰는 기자는 칼럼을, 칼럼 쓰는 논설위원은 기사를 아예 못 쓰게 하는 것이다.
한국에는 그 형식만 남았다. 편집국과 논설위원실을 따로 두지만, 기자는 종종 칼럼을 쓰고, 논설위원도 가끔 기사를 쓴다. 논설위원이 뉴스룸에 돌아와 취재하는 일도 흔하다. 반면 영미 언론의 뉴스룸과 논설위원실 사이에는 ‘유리 바닥’이 있다. 일단 논설위원이 되면 기자나 에디터로 돌아가는 일이 극히 드물다. 은퇴할 때까지 의견만 쓴다.
2021년 12월, 워싱턴포스트 논설실 책임자 프레드 하얏트(Fred Hiatt)가 사망했다. 15년의 기자 생활을 거쳐 1996년 논설위원이 된 그는 25년 동안 칼럼·논설만 썼다. 뒤이어 임명된 데이비드 쉬플리(David Shipley)는 뉴욕타임스 논설 에디터를 거쳐 10년 동안 블룸버그통신 논설실 책임자로 일한 인물이었다. 비유하면, 한겨레 논설위원으로 일하다 연합뉴스 논설실장으로 옮긴 이를 동아일보가 새 논설실장으로 스카웃한 셈이다. 그런 일이 한국에선 불가능하다. 의견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기자건 칼럼이나 논설을 쓸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실과 의견의 분리’는 의견을 낮춰 보는 원칙이 아니다. 의견을 제대로 밝히려면, 사실 보도와 의견 제시를 구분하여 각각을 대단한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를 마구 섞으면, 사실 보도도 망하고 의견 제시도 망한다. 오만가지 일에 대한 온갖 칼럼을 기자와 부장의 이름으로 내보내는 한국 언론은 정확히 그 지경으로 향하고 있다.
자가 사실 취재에 집중하고, 데스크는 사실 검증에 집중해야 사실 보도의 수준을 높일 수 있다. 그 일도 바쁜데, 칼럼 집필의 부담까지 보탤 이유가 없다. 초년 시절부터 칼럼을 썼던 습성 때문에 기자는 의견을 담아 기사를 쓰고, 데스크는 의견을 앞세워 기사를 고친다. 반규범적이고 비효율적인 일이다.
사실과 의견을 둘러싼 문제에 집중해 칼럼을 써보려 한다. 새 대표를 맞은 언론 전문매체가 언론에 대한 글을 써달라고 언론학자에게 주문했는데, 거절할 이유를 찾다가 포기했다. 글을 비틀어 짜내는 지옥이 다시 왔다. 공부한 사실과 의견을 정돈할 기회라고 억지 위로해 본다. 아니면, 이제라도 칼럼 못 쓰겠다고 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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