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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로와 트라피칸트의 고백

작성일 : 2023-08-07 07:22조회 : 1,414

마르셀로와 트라피칸트의 고백

마피아 세계에서는 보스가 감옥에 가더라도 그 조직은 무너지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한동안은 보스가 감옥에서 통치를 하고 그 시간이 길어지면 후계자가 조직을 장악한다. 그 과정에서 분란이 생기면 ‘마피아 전쟁’이라고 부르는 피비린내 나는 투쟁이 벌어진다. 뉴욕에서 이런 마피아 전쟁이 자주 일어났다.

마르셀로는 감옥에 들어간 후에도 면회를 온 동생과 아들을 통해서 조직을 관리했다. 그러나 1~2년 지나자 마르셀로의 장악력은 급속히 떨어졌다. 보복이 두려워서 돈을 갖다 바치던 사람들이 슬슬 발을 빼기 시작한 것이다. 마르셀로는 원래 모든 결정을 자기 혼자서 했다. 그 만큼 치밀한 사람이었다. 그의 동생들은 형이 시키는 대로 일을 했던 심부름꾼에 불과했다. 마르셀로는 아들과 딸 셋을 끔찍하게 사랑했다. 곱게 자란 이들은 아버지의 심부름이나 했지 자기 혼자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 마르셀로가 감옥에서 뇌졸중으로 쓰러 진 후 조직은 사실상 와해 돼 버렸다.

마르셀로의 조직에서 일을 했던 부하들도 두목이 없어지니까 혼자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 마르셀로의 동생들과 아들, 그리고 부하들은 FBI가 자신들을 도청해서 감시할 것임을 알고 난 후에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국세청(IRS)이 툭하면 이들의 사업체를 조사해서 세금을 추징하고 탈세로 기소하겠다고 협박을 하니 금수저로 자란 아들 딸들은 공포에 떨었다. 뉴욕에서도 막강한 마피아 두목들이 루디 줄리아니 검사장에 의해 줄줄이 잡혀갔다. 마피아의 시대가 저문 것이다. 마르셀로의 아들 딸들은 레스토랑과 바를 운영하면서 조용히 살았다.

마르셀로는 FBI의 함정수사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조셉 하우저와 대화를 하면서 “오스월드의 이모부는 내 아래에서 일을 했어. 오스월도도 나의 심부름꾼이었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대화는 녹음 테이프에 남아 있고 정보공개법에 의해 공개가 됐다. 마르셀로는 1984년 4월 경비가 삼엄한 중범죄인 교도소로 이관됐다, 마르셀로는 2인용 감방에 있었는데 감방 메이트인 잭 반 래닝햄과 대화를 나누고 친하게 지냈다.

자신도 중범죄로 감옥에 들어온 나이가 많은 래닝햄은 처음에는 마르셀로를 무서워했으나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서 급속히 친해졌다. 이런 사정을 아는 FBI는 래닝햄을 통해 도청기를 감방에 설치하도록 했다. 1985년 12월 15일, 기분이 좋은 마르셀로는 케네디 암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내가 그 개**를 죽게 했어. 그렇게 해서 나는 기뻐. 내 손으로 직접 죽이지 못한 게 유감이야”라고 말했다. 이 녹음 대화록도 비밀로 분류되어 오다가 정보공개법에 의해 나중에 공개됐다.

마르셀로는 플로리다의 보스인 산토 트라피칸트(Santo Trafficante Jr. 1914~1987)와 특히 가까웠다, 트라피칸트는 쿠바에 투자한 카지노 호텔을 카스트로에게 몰수당했기 때문에 쿠바를 해방시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케네디에 대해 배신감을 느꼈다. 아버지의 조직을 인수한 트라피칸트는 외모와는 달리 굉장히 포악한 사람이었다. 그는 카스트로 혁명 당시 아바나에 있다가 카스트로에게 잡혀 버렸다. 그는 결국 몸값을 주고 풀려 날 수 있었는데, 몸값을 갖고 아바나에 왔던 심부름꾼이 나중에 오스월드를 죽이게 되는 재크 루비였다. 시카고 갱단 출신인 루비는 샘 지앙카나 조직에서 일하다가 텍사스로 내려와서 술집을 경영했는데, 그 술집은 실제로 마르셀로의 텍사스 하부 조직의 소유였다. 워렌 위원회는 재크 루비에 대한 조사를 거부해서 조금 만 파헤치면 알 수 있는 사실을 외면했다.

피그스 만 침공이 실패하자 케네디 형제는 카스트로를 암살하라고 CIA에 지시했고, CIA는 쿠바를 잘 아는 트라피칸트한테 카스트로 암살을 부탁했다. 트라피칸트는 그들이 해오던 방식으로 카스트로에게 기관총 세례를 퍼부어서 끝내고 싶었다. 그러나 CIA는 그렇게 되면 사태가 커진다고 해서 카스트로에게 약을 먹여서 서서히 죽게 하는 방안 등을 동원토록 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트라피칸트가 볼 때 케네디 형제나 CIA는 한심한 조직이었을 것이다.

산토 트라피칸트와 가까웠던 사람이 프랑크 라가노(Frank Ragano 1923~1998) 변호사이다. 플로리다 탬파에 있는 로스쿨을 나온 라가노는 젊었을 때 트라피칸트의 사건을 맡은 후 계속 트라피칸트와 마르셀로의 변호사로 일했다. 마피아와 일을 하면 거기서 멀어질 수가 없었다면서 자기는 인생을 낭비했다고 생각한 라가노는 자신이 불치의 병에 걸려있음을 알고 <Mob Lawyer>라는 책을 1994년에 펴냈다. 여기서 라가노는 트라피칸트가 1987년 3월에 죽기 직전에 마르셀로와 자기가 케네디를 암살했다고 고백했다고 주장했다. 마르셀로가 기획을 하고 트라피칸트는 제2, 제3의 저격수를 보냈다는 것이다. 마피아는 암살을 할 때 외부에서 저격수를 불러와서 실행을 하고 금방 철수시킨다는 사실을 고려하고, 또한 트라피칸트는 카스트로를 암살하기 위해 저격수를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로 여겨진다.

라가노가 트라피칸트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짐 개리슨 검사(영화 <JFK>에서 케빈 코스트너)도 마르셀로의 영향력 하에 있었으며 그가 케네디 암살은 CIA가 배후라면서 엉성한 기소를 하도록 해서 결국 케네디 암살이 오스월드의 단독범행임을 확인시켰고, 오스월드에 의해 피격돼 사망한 티핏 경관은 원래 오스월드를 살해해야 했으나 오히려 오스월드에 의해 피살돼서 마르셀로는 재크 루비를 급하게 투입해서 오스월드를 사살해야 했다는 것이다.

마르셀로의 ‘옥중(獄中) 자백’과 트라피칸트의 ‘임종을 앞 둔 고백'(deathbed confession)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케네디 암살을 오스월드의 단독범행으로 결론내린 워렌 위원회는 무일푼이었던 오스월드가 어떻게 뉴올리언스에 가서 카스트로를 찬양하는 활동을 했는가 하는 기초적인 의문점도 파헤치지 않았다. 오스월드가 마르셀로의 조직에서 일했던 그의 이모부에 이끌려서 뉴올리언스에 와서 의도적으로 친(親)카스트로 활동을 하고 멕시코시티에 가서 소련과 쿠바 대사관을 방문한 것은 케네디 암살의 배후로 쿠바를 지목하게 하려던 ‘dis-information activity'였던 것으로 설명이 된다. 이는 트라피칸트가 카스트로를 암살하려 했던 방식과 매우 닮았다.

- 사진 : (위) 산토 트라피칸트(왼쪽)과 프랑크 라가노. 1959년 12월. (아래) 라가노 변호사가 펴낸 책 <Mob Lawyer>(1994) 및 TV에 나와서 책에 관하여 대담하는 라가노. 그는 한번 마피아와 엮이면 죽지 않으면 헤어 나올 수가 없다면서 지난 삶을 후회하는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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