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보수 신문'을 위한 변론

작성일 : 2008-06-18 11:53조회 : 2,393

‘보수 신문’을 위한 변론(辯論)

요즘 이른바 보수신문이라는 ‘조 중 동’이 뭇매를 맡고 있다. 그것을 보는 나의 심정은 솔직히 괴롭다. 나는 오랫동안(1995년-2003년) 조선일보에서 비상임 논설위원으로 일했다. 아마도 우리나라 신문사에서 비상근 논설위원으로 나 만큼 오랫동안 많은 글을 쓴 사람도 없을 것이다. 또한 작년 한 해 동안 나는 동아일보에 정기 기고를 했다. 나의 외조부는 일제시대에 동아일보가 창간할 당시부터 창업자 분들과 교분이 깊으셨기 때문에 그로 인한 애정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보수니 진보니 하는 말이 나온 것은 1987년 대선과 1990년 3당 통합(‘보수 대통합’)부터가 아닌가 한다. 한겨례신문이 진보신문을 표방하고 나온 것도 그 즈음이다. 4공화국과 5공화국 치하에선 언론통제가 심했기 때문에, 정부에 비판적인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많은 고생을 했다.

다 알다시피 1980년대 들어서 조선일보는 보수성향을 확실히 보였다. 그것을 두고 지금 40대 이하 세대는 조선일보를 일단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조선일보도 당시 집권세력과 많은 갈등이 있었다. 우리나라 신문의 ‘주필’의 대명사가 되다시피 한 김대중 (현) 논설고문은 집권층에 잘못 보여서 원치 않은 외국 파견생활을 해야만 했다.

지금도 내 기억에 생생한 ‘거리의 편집자’라는 김대중 칼럼은 당시의 사정을 잘 보여준다. 정부가 간섭해서 정부에 유리한 기사는 키우고 불리한 기사는 작게 구석에 처박아 넣곤 하는데, 광화문 지하도에서 신문을 파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그날 신문에서 구석에 조그맣게 처박힌 중요한 기사를 귀신같이 찾아내서 붉은 색연필로 표시해 팔았는데, 김 주필은 이들을 ‘거리의 편집자’라고 자조적으로 불렀다. 모르긴 모르되 이 칼럼이 나오기까지 끌고 당기는 줄다리기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김 주필의 이런 칼럼을 기억하는 세대는 나의 세대가 마지막이다. 나보다 한 세대 아래부터는 비극적으로 사망한 이한열을 기억하지 김 주필이 겪었던 ‘고충’ 따위는 안중(眼中)에도 없다. 더구나 문화 헤게모니를 진보좌파에게 빼앗긴 탓에 젊은 세대는 지난 세월을 일방적으로 해석하는데 익숙해 져 있다. 그것이 현재 조선일보가 안고 있는 고민일 것이다.

조선일보는 분명히 ‘보수 신문’이고, 그런 탓에 진보진영의 공격을 받는다고 하자. 그러면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도 똑같이 ‘보수 신문’이라서 공격을 받고 있단 말인가 ? 내 기준에 의하면,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보수 신문’이라고 할 수 없다. ‘보수 신문’과 ‘진보 신문’을 가르는 기준은 일관적인 논조, 즉 사설과 특집기사 같은 것이다. 사실 중앙일보는 트렌드를 이끌고 또 트렌드를 따라가는 신문이지 ‘보수 신문’이라고 할 수 없다. 중앙일보의 주필이건 논설실장이건 간에 ‘보수’라는 타이틀을 주장할 만한 사람을 도무지 기억해 낼 수 없을 것이다.

동아일보를 '보수 신문‘이라고 부르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동아일보의 문화면, 특히 북 섹션은 한겨레신문 못지않게 진보 성향을 띄고 있다. 신문의 성향을 판단하는데 있어 북 섹션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럼에도 동아일보가 ‘보수 신문’으로 몰려 있는 원인 중의 하나는 ‘뉴라이트’ 때문일 것이다. 동아일보는 노무현 정권 시절에 ‘뉴라이트’를 발굴해서 키웠고, 그 세력은 지금 이명박 정권의 한 기둥이 되어 있다. (참고삼아 말하자면, 나는 ‘뉴라이트’를 ‘보수’로 보지 않는다. “공산주의가 논의되는 사회가 바람직하고”, “체 게바라처럼 북한인권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수’로 볼 수는 없다. 이에 대해선 나의 책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참고하기 바란다.)

진보 진영이 '조 중 동‘을 몰아서 ’보수 신문‘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 신문에 사주(社主)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서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신문은 공공적 기능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독자가 선택하는 것이다. 독자가 좋아하는 신문은 정확히 보도할뿐더러, 정부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정론을 펴는 신문이다. 한때는 ‘조 동 중’이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조 중 동’이 된 계기는 김대중 정부 들어서부터인데, 그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이 시세가 없었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 칼을 들이대지 않으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역설적으로 ‘조 중 동’이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 것도 이런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신문사의 소유는 문제가 되지 않으며, 되어서도 안 된다고 나는 확신한다. 만일에 신문이 사주가 경영하는 방계 기업을 옹호하면, 독자들이 우선 그 신문을 거부한다.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폭스 뉴스 등도 확실한 소유주가 있다. 반면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사주 가족이 손을 떼고 지주회사로 형태를 바꾸자 경영이 안 좋아 졌다. 사주가 있는 CNN과 역시 사주가 있는 Fox News 가 시청자를 확보하는 경쟁을 하는 한 국민의 알 권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Fox News는 기존의 3대 네트워크와 CNN이 모두 진보성향이라서 보수 성향 시청자가 볼 뉴스가 없다는 데 착안해서 창설해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게 자유시장주의의 매력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나는 우리의 젊은 세대가 이 점을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여기까지 오면, 나는 조선일보만 ‘보수 신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자연히 ‘보수신문을 위한 변론’은 ‘조선일보를 위한 변론’이 될 것인데, 그 부분은 며칠 뒤로 미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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