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촛불과 맞불

작성일 : 2008-06-21 09:35조회 : 2,080

‘촛불’과 ‘맞불’
(2008년 6월 21일)

TV 심야토론에서 진중권 교수(공교롭게 같은 대학에 적을 두고 있군요..)가 제 글을 인용해서 생방송을 탔습니다. 게다가 데일리안의 윤경원 기자의 인터뷰 기사가 어제(20일)에 나가서 하룻동안 '뉴스 감'이 되었더군요.

제가 보수 단체들의 ‘맞불 행사’에 대해 너무 심한 말을 하지 않았나, 구태여 그런 말을 해야 했나 하는 의견도 있습니다만, 또 한편으로는 조용하게 “할 말을 했다”고 한 사람도 있습니다. ‘맞불 집회’하면 당연히 TV, 한겨레, 오마이뉴스, 아고라 등의 집중적 조명을 받는 것 아닙니까 ? 그러면 그 점을 고려해서, 촛불을 반대하는 측도 폭 넓은 지지를 받는다는 것을 과시하는 방향으로 행사를 기획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 그런 생각은 전혀 없이 진행했으니, 창피한 모습이 나오는 것은 정해진 이치였습니다.

TV 카메라에 대고 “이게 모두 빨갱이 때문이야. 그놈들 때려잡으려 왔지" 등등 막말을 해대니, 완전히 코미디라고 해야지요.. 개신교 부흥회 하는 것도 아닌데, '할렐루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집회 몇 번만 더하다간 우리나라 전통적인 '경로 사상'도 무너지겠어요. 프라이 판에 소세지 구어 먹는 퍼포먼스는 도큐멘타리 영화에 나올 일이지요.. ‘법질서는 지켜져야 한다’ 면서 가스 통에 불붙이는 것은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 이런 것을 영어로 ‘public relation disaster'라고 하지요. ‘홍보 참사(慘事)’라는 뜻이지요.

저는 그 전부터 서정갑 회장께 이제는 포럼 같은 것을 만들어서 여론을 주도해야 한다고 말씀드린 적도 있습니다. 사실 국민행동본부 서정갑 회장님(예비역 대령)은 사심이라곤 없는 아주 순수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작년 3월 1일 국민행동본부가 처음으로 뉴라이트 김진홍 목사, 선진화운동 서경석 목사 등과 함께 시청광장 행사를 공동개최한 후로 이런 행사의 주도권을 뉴라이트에 상실한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 국민행동본부에 성원을 보냈던 전통 안보보수층은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조갑제씨가 작년 봄에 사실상 이명박씨를 지지하고 나선 것도 전통 안보보수층의 이반(離反)을 초래했다고 보아야겠지요.

지난 2004년 10월 시청 앞을 가득 채웠던 보수 집회는 노무현 정권에 대해 ‘당신들이 정권을 장악했다고 해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는 시그널을 주었습니다. 또 국가보안법 폐지 시도, 맥아더 동상 파괴 방치(노무현 정부가 파괴하려 것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파괴 공작을 방치했다고는 볼 수 있지요.) 등 사안에 대해서는 군복 입은 시위가 호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건강이 나빠서 죽음을 앞두고 있던 미국 하원의 하이드 의원이 휠체어 타고 맥아더 동상을 찾아 온 것도 그 덕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촛불시위는 쇠고기 협상, 대운하, 공기업 민영화 등등 민생 문제를 두고 생긴 것입니다. 더구나 정권이 바뀌었으니 군복을 입고 나와서 “우리가 진짜 애국세력이다”고 과시할 필요는 없습니다. KBS와 MBC는 어차피 공영방송으로 정부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것이니, 이명박 정부가 책임지고 처리할 문제입니다. 군복입고 가스통 들고 쳐들어갈 이유는 없다는 것입니다. 맞불집회를 주최한 사람들은 지금도 노무현 정권 아래에 있는 것으로 착각한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촛불 시위는 위장이전, 위장취업, 건보료 2만원 등 이명박 대통령을 유령(幽靈)처럼 따라다니는 총체적인 도덕성 문제가 분출된 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교수 박사들이 대운하가 필요하고, 공기업 민영화만이 살길이라는 연구를 하고 이명박 정권에 줄을 섰습니다. 대단히 실용적인 지식인들이지요.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게 여중생 여고생 집회로 한 달 만에 무너졌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보수진영은 이 엄청난 촛불시위에 ‘엄청난 배후와 음모’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 그런데 그들의 호프인 이명박 대통령이 초라한 몰골을 하고 나와서,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국민의 목소리를 겸허하게 수용하겠다”고 했습니다. 대통령이 ‘반역의 물결’에 ‘투항’한 셈입니다. 이제 보수진영은 무엇을 해야 하지요 ? ‘반역 세력’에 투항한 이명박 대통령을 규탄하고 탄핵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 조갑제 씨가 쓴 책에 ‘자폭(自爆)의 동반자(同伴者)들’이란 것이 있습니다. 남쪽의 좌파는 북의 김정일 정권의 자폭에 동반하고 있다는 의미이지요. 한국의 보수진영이 다른 의미의 ‘자폭의 동반자들’이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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