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촛불' 이젠 할 만큼 했다 (매경 2008년 6월26일자)

작성일 : 2008-06-27 16:41조회 : 1,970

매일경제 2008년 6월 26일자

[테마진단] '촛불' 이젠 할만큼 했다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한 달 이상 지속되던 촛불집회가 지난주 말을 고비로 수그러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사과하고, 추가협상을 통해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자율금지'를 이루어 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대운하 사업과 공공분야 민영화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촛불 시위 한 달 만에 대통령은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인 것이다.

대통령은 자신있게 내걸었던 주요 공약을 모두 취소함으로써 성난 민심을 간신히 달랠 수 있었다. 시위 양상은 6월 10일을 기점으로 분명히 바뀌었다.

초기의 촛불은 젊은이들의 페스티벌 같았으나 10일의 '100만인 집회'를 계기로 민노총 등 이익단체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과격한 행동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이제 촛불을 끌 때가 된 것이다. 촛불은 그것이 성공했기 때문에 꺼야 하는 법이다. 취임한 지 100일밖에 안 된 정권이 백기를 들도록 했으니 촛불은 성공한 셈이다. 이제 광장을 찾았던 대중은 학교와 직장으로 돌아가고 촛불이 남긴 숙제는 정치권과 시민사회에 맡겨야 한다. 대통령은 인적 쇄신, 대운하 백지화 등 구체적 약속을 했다.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때 촛불을 다시 켜도 된다. 그러니까 이제 촛불은 거둬야 한다.

모든 시위가 그러하듯이 촛불에도 주최가 있었다. 인터넷 카페 등 고만고만한 모임에서 시작된 촛불집회가 커지자 진보단체가 대거 가담해 세를 불렸다. 모든 상황을 총지휘한 '배후'는 없었다고 하더라도 촛불을 이용해 정권에 타격을 주려는 세력은 분명히 있었다.

촛불에는 많은 사람이 갖가지 동기를 갖고 참가했다. 미국 쇠고기가 정말로 위험하다고 믿은 사람도 있었고, '국적과 영혼이 없는 협상'에 항의하기 위해 참가한 사람도 있었다. 민영화를 저지하기 위해 거리로 나온 당사자들도 있었지만 국민을 무시하는 정권을 두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해 촛불을 밝힌 사람도 있었다.

촛불을 단순히 좌와 우, 진보와 보수 대립으로 접근하면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할 수 있다. 시위에 대거 참여한 젊은 세대들은 진보 좌파적이라기보다는 반체제적인 측면이 많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들은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다. '젊은 촛불'을 '좌익의 선동에 놀아난 철없는 아이들'로 치부하면 촛불의 실체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기성세대의 눈으로 볼 때 10대에서 20대 초에 이르는 젊은이들이 논쟁을 벌이고 여론을 형성하는 현상은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논술세대'다. 필자 같은 기성세대는 객관적 지식을 섭취하는 교육을 받고 성장했다. 반면 요즘 세대는 자기 주장을 거침없이 펴는 교육을 받고 자라고 있다. 인터넷 휴대폰 그리고 디카로 무장한 이 세대는 '소통의 대가'들이다. 이들은 선거에 관심이 없다.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 기권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자체를 외면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세상을 바꾸고 싶어한다. 1968년 서유럽과 미국에서 벌어진 상황이 40년 뒤인 현재 한국에서 '디지털 버전'으로 재현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재계는 이명박 정권에 대해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그러했듯이 세금을 낮추고 노조를 잠재워 줄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레이건 대통령은 도덕성을 갖춘 '소통의 대가'였다. 레이건은 정치란 훌륭한 장관을 임명해서 좋은 정책을 펴도록 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위임의 대가'였다. 이명박 정권은 이 점에서 레이건 정부와 정반대다.

촛불의 요구를 맥없이 받아들인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도 아니다. 때로는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때로는 그들을 설득해야 한다. 촛불을 야기한 데는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킨다는 보수세력의 책임도 크다.

나태하고 부패한 보수는 지난 20년 간 '문화전쟁'에서 철저하게 패배했고, 도덕이란 덕목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실책을 범했다.

촛불을 이제 꺼도 된다. 엄청난 시그널을 기성 체제에 보냈기 때문이다. 이제 공은 기성 체제로 돌아왔다. 정부와 국회, 그리고 시민사회 전체에 큰 숙제가 안겨진 셈이다.

이전글4대강 '토론'을 하자고 ?

리스트로

이상돈닷컴

이상돈

LEESANGDON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