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외조부와 동아일보

작성일 : 2021-06-22 13:26조회 : 2,789

외조부와 동아일보

나의 외조부 고희동은 동아일보 창간부터 1923년까지 미술/도안 담당 기자로 일했다. 동아일보 창간호의 디자인이 외조부의 작품이다. 소설가 염상섭도 동아일보 창간 초기에 문화부 기자로 같이 일했다. 외조부는 교사로서의 수업 등 다른 일로 동아일보를 그만 두었는데, 그 후에도 동아일보는 미술 기자를 꾸준히 두어서 삽화 등을 그리도록 했다. 그 시절에 동아일보는 문자 그대로 ‘꿈의 직장’이었다. 물론 강압적인 식민통치 시절의 언론은 자체로서 한계가 있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국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또 그런 기능을 통해서 식민통치 당국에 대해 어느 정도 견제를 했다고 하겠다.

지금은 ‘고희동 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원서동 자택에서 살던 외조부는 가까운 북촌에 사는 고하 송진우, 인촌 김성수 등과 왕래가 잦았다. 그 시절 공부를 한 사람들, 즉 인텔리들은 동아일보에서 기자를 하거나 보성, 중동, 중앙 등 사립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외조부는 한 동안 보성, 중앙, 중동 세 학교에서 미술을 도맡아 가르치셨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서양화를 접고 동양화로 회귀했는데, 이에 대해선 미술평론가와 학자들에 의한 많은 연구가 있다.

동아일보 사사(社史)는 외조부와 관련한 기사를 모아 두고 있는데, 아래에 옮겨 보았다. 사진은 동아일보 인사카드 같은 것인데, 왼쪽 사진이 기자 시절인 1920년대 모습이고, 오른쪽 사진은 해방 후 6.25 전에 찍은 것으로 동아일보가 자료 목적으로 붙여 놓은 것 같다.

<동아일보 사사 사이트>
1.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춘곡 고희동(春谷高羲東 1886~1965, 재직기간 1920.4~1923.12) 선생도 동아일보 창간 동인(同人)입니다.

‘내 나이 스물두 살 때, 국가의 체모가 말할 수 없게 돼 무엇을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어 이것저것 심중(心中)에 있는 것을 다 청산하여 보려고 그림의 세계와 주국(酒國·술에 취하여 느끼는 것 같은 딴 세상)에로 갈 길을 정했다.’는 고희동은 조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동경미술학교(지금의 도쿄예술대학 미술학부) 서양화과에 들어가 5년 과정을 졸업하고 1915년 돌아와 중앙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게 된 것이 인연이 돼 동아일보 창간 멤버가 됐습니다. (‘나와 조선서화협회 시대’, 신천지 1954년 2월호)
입사 후 그의 첫 작품은 1920년 4월 1일자 창간호 1면 도안이었습니다. 웅비(雄飛)하는 용(龍)틀임을 형상화한 동아일보 창간호 1면 도안의 상징성과 균형미는 어떤 신문 창간호에서도 보기 어려운 걸작입니다.

2. 1920년대 동아일보 초기 회고

“사옥이라야 화동 한 모퉁이의 낡은 한식가옥 – 짤가닥거리는 평판 인쇄기에서 찍혀 나오는 어설픈 신문이었지만 거기에는 줄기찬 뜻이 있었고 또 정열이 있었다. 신문사 운영은 아직 괘도에 오르지 못해 적자투성이인데다 걸핏하면 압수다 삭제다 정간이다 하는 바람에 박봉이나마 받지 못하고 외상 길조차 막혀 허덕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불평보다는 분노와 투지가 앞을 섰었다. 우리들은 제각끔 선각자라는 긍지와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각오를 가지고 일했었다. 왜경이 마치 제 집처럼 드나들면서 갖은 위협과 압력을 다하며 성가시게 굴었지만 항일의 완강한 붓은 끝내 꺾지 못했다. 명월관에서 열린 창간축하연 때의 일이다. 술에 취하여 흥이 한창 도도해졌을 때 누군가의 선창으로 당시 유행하던 ‘독립운동의 노래’를 거리낌 없이 합창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초창기를 말한다’, 고희동, ‘동우(東友·동아일보 사내보)’ 1963년 7월호 9쪽>

3·1 독립운동 관련자 48인의 재판을 앞두고 동아일보는 48인의 사진을 모두 실어 거족적 관심을 표시한다는 대담한 기획, 통 큰 편집을 기획하고 사진을 모았으나 한용운 선생의 사진만은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난처한 순간을 넘기게 해 준 사람이 K화백, 고희동 선생의 기지(機智)였습니다. “한용운의 사진 한 장만이 미비하여 나는 쩔쩔 매는데 K화백(고희동)이 어떤 단단하게 생긴 청년 얼굴에 그럴듯이 화이트를 칠해주면서 한용운이라고 한다. 내가 반색을 하면서 물으니 K화백(고희동)은 웃기만 하였다. 48인 중에 그 때 신문에 나타난 한용운의 사진은 가짜인 것을 말하여 둔다.” (유광렬, ‘기자 반세기’, 서문당, 1969)

3. 동아일보 1960년 4월 1일자 4면, 창간 40주년 기념 좌담회

진학문(창간 당시 정경부장, 학예부장, 논설반 기자 겸임) = 월급에 대해서는 처음에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3단계로 나눠서 100원 80원 60원 이렇게 3단계로 나눴어요. 그랬다가 나중에 장덕수 군이 주간으로 되었으니까 장덕수 군 만 그때 120원을 받았지요. 그리고 100원 짜리가 셋인데 이상협(편집국장, 사회부장, 정리부장 겸임) 이운(영업국장 겸 경리부장) 나(진학문)하고…

고희동 = 나(고희동)하고 염상섭이하고 8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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