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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1964년 미국 대선과 배리 골드워터
작성일 : 2021-10-14 09:47조회 : 1,665
1964년 미국 대선과 배리 골드워터
오늘날 보수주의를 이야기할 때 1964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그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해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주의를 내건 공화당 후보 배리 골드워터(Barry Goldwater 1909~1998) 상원의원은 민주당 후보 린든 존슨(Lyndon Johnson 1908~1973) 대통령에게 참패했고, 같이 치른 의회 선거에서도 공화당은 상원과 하원 과반수 의석을 민주당에게 내어주는 패배를 맛보았다. 이를 보고 언론인 월터 리프먼(Walter Lippmann 1889~1974)은 “보수주의는 끝 났다”고 평했다. 선거에 승리한 존슨 대통령은 베트남 전쟁을 확대하고 ‘위대한 사회’라는 야심에 찬 복지 플랜을 추진했으나 그 결과는 좋지 않았고, 존슨은 1968년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1964년 선거에서 골드워터가 참패함으로써 무산된 줄 알았던 ‘보수주의 꿈’은 1980년 대선에서 로널드 레이건이 승리함에 따라 찬란한 꽃을 피웠다.
1964년 대선은 뜻밖의 요인으로 존슨 대(對) 골드워터의 대결로 치러졌다. 존 F. 케네디( John F. Kennedy 1917~1963) 대통령은 1964년 대선이 자기와 뉴욕 주지사이던 넬슨 록펠러(Nelson Rockefeller 1908~1979)의 싸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케네디는 1963년 11월, 댈러스에서 암살되고 말았다. 케네디의 비극적인 죽음은 대선 판도를 흔들어 놓았다. 비명에 죽은 민주당 대통령에 대한 추모 때문에 대통령직을 승계한 린든 존슨이 무난하게 승리할 것으로 예상됐다. 케네디의 기반인 동북부는 케네디에 대한 추모로 존슨을 지지할 것이고, 남부는 텍사스 출신인 존슨을 역시 지지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1964년 대선을 앞두고 뉴욕 주지사 넬슨 록펠러와 애리조나 출신 상원의원 배리 골드워터가 공화당 후보로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고, 1960년 대선에 나와서 낙선한 리차드 닉슨(Richard Nixon 1913~1994)은 분위기를 살피고 있었다. 케네디가 암살됨에 따라 공화당의 승리가 어렵다고 느낀 닉슨은 출마를 포기했다. 비록 당적은 다르지만 케네디와의 관계가 돈독했던 배리 골드워터는 케네디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다. 치열한 예비선거 경쟁 끝에 배리 골드워터가 후보로 확정됐는데, 골드워터 측은 넬슨 록펠러가 동부 엘리트이고 진보주의자라고 싸잡아서 비난했다. 전당대회 연단에 올라선 록펠러가 “좌(左)이든 우(右)이든 극단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자 골드워터 지지자들은 거센 야유를 퍼부었다. 전통적으로 동부 엘리트 정당이었던 공화당이 내부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다.
배리 골드워터는 유태계 폴란드인인 조부가 미국에 건너와서 애리조나 피닉스에 자리를 잡은 가정에서 태어났다. 골드워터는 버지니아에 있는 군사학교를 나와서 애리조나 대학을 다녔으나 중도에 그만 두고 조부와 부친이 대를 이어 운영해 온 백화점을 경영했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육군 항공대 조종사 훈련을 받고 항공장교가 되어 수송기를 몰고 히말라야를 넘는 위험한 장거리 비행을 했다.전쟁이 끝나자 골드워터는 공군 예비역 대령으로 애리조나 항공 방위군을 창설하고 그 사령관이 됐으며, 1967년에 예비역 소장으로 퇴역했다. 그는 많은 종류의 수송기와 폭격기를 몰았던 유능한 조종사였다. 그는 백화점을 경영하면서 애리조나 주 항공 방위군을 지휘했으며 피닉스 시의원을 지냈다. 이렇게 해서 골드워터는 애리조나에서 널리 알려졌다.
골드워터는 2차 대전 전에 자신이 운영하는 백화점에서 흑백인종 분리를 스스로 철폐했고, 애리조나 주 항공 방위군 사령관을 지내면서도 흑백차별을 철폐한 진취적 인물이었다. 그의 삼촌은 애리조나 주 상원의장을 지낸 민주당 정치인이었으나 골드워터는 공화당 후보로 1952년 상원선거에 출마해서 당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이던 어네스트 맥팔랜드를 꺾고 승리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1958년에 무난하게 재선에 성공한 그는 백화점을 경영해 본 기업인 답게 연방정부의 방만함과 개인의 자유를 저해하는 진보 정치에 비판적이었다. 그의 이러한 성향을 알고 윌리엄 버클리(William Buckley, Jr. 1925~2008) 등 보수 논객들이 골드워터를 지지하고 나섰다.
1964년 대선에 존슨 대통령에게 패배한 골드워터는 4년간 공백기를 가진 후 칼 헤이든 상원의원이 은퇴하자 그 자리에 출마해서 무난하게 당선됐고 1974년과 1980년에도 당선돼서 도합 30년간 상원의원을 지냈다.
1974년 8월, 닉슨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하원 법사위원회를 통과하자 당시 의회 내에서 공화당 원로였던 골드워터는 상하원 공화당 원내대표를 대동하고 백악관으로 가서 닉슨 대통령을 만나서 사퇴할 것을 통보했고 닉슨은 다음 날 사임을 발표했다. 골드워터는 1986년 선거에 불출마하고 은퇴했는데, 그의 뒤를 이어서 상원의원이 된 사람이 2008년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존 매케인(John McCain 1936~2018)이다. 골드워터는 말년에 제리 팔웰, 팻 로버트슨 같은 우파 기독교인들이 보수주의를 내걸고 공화당 내에서 세력을 키워 가는 현상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골드워터는 가정과 지역 공동체, 그리고 개인의 자유와 책임이란 미국적 가치를 존중했던 품위 있는 정치인이었다.
-사진 (1) 1964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 지명 수락 연설을 하는 배리 골드워터 (2) 1974년 8월 7일, 닉슨 대통령을 만나서 사임을 요구하러 백악관 정원에 들어선 배리 골드워터와 휴 스콧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왼쪽), 존 로즈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오른쪽). 그 다음 날 닉슨은 사임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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