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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의 경제 업적 ?

작성일 : 2021-11-02 09:23조회 : 1,433

전두환의 경제 업적 ?

“전두환이 정치를 잘 했다”는 표현에는 “경제는 물론 잘 했고 정치도 잘 했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실제로 전두환 시절에 우리 경제가 좋았다면서 뜬금없이 전두환 예찬론을 펴는 노년층이 제법 많이 있다. 나는 물론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전두환 시절에 우리 경제가 좋았다면 박정희 시절에 토대를 세운 수출과 중공업 덕분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국제적 환경, 특히 미국의 영향이 컸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는 우리나라가 변동환율제를 도입하기 전이었다. 전두환 국보위는 1979년 2차 오일 쇼크, 10.26와 12.12로 인한 경제 난국을 탈피하기 위해 원화를 평가절하 했다. 당시는 고정환율제라서 그것이 가능했다. 덕분에 우리나라 수출산업의 경쟁력이 높아졌지만 달러 표시 국민소득은 추락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원자재 외에는 수입 개방을 하지 않았을 때이고, 외국에 송금을 하는 사람은 소수였고 중동에 나가 있는 노동자들이 국내로 달러를 보내 올 때였다.

1981년 1월에 취임한 레이건 대통령이 처음 취한 조치는 휘발유 가격 통제 철폐였다. 카터 행정부 시절에도 휘발유 가격 통제(gas price control)를 없애야 한다는 공감대는 있었지만 당시 매년 10%가 넘었던 인플레 때문에 미루어왔는데, 레이건 대통령은 그것을 철폐해 버렸다.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나는 당시 1갤런에 1.35 달러 하던 휘발유 가격이 가격통제를 철폐하자 1.45~1.50 달러로 오르더니 얼마 후 석유회사들이 증산을 해서 1.20달러 수준으로 내려가는 것을 직접 체험했다. 규제를 풀면 잠시 가격이 오르다가 공급이 증가해서 가격이 내려간다는 ‘시장(市場)의 원칙’을 직접 체험한 셈이다.

석유가격 인하에는 레이건 정부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밀월(蜜月)도 큰 역할을 했다. 사우디가 석유증산을 해서 1980년대 저(低)유가 시대를 열었으니 에너지 위기와 싸우다가 무너진 카터 대통령이 불쌍해 보였다. 1982년 7월부터 레이건 행정부가 끝날 때까지 국무장관을 지낸 조지 슐츠(George Schultz 1920~2021)는 닉슨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후 1974년부터 국무장관이 될 때까지 사우디에서 공사를 가장 많이 수주한 벡텔(Bechtel) 그룹의 대표를 지냈다. (우리나라 건설사도 벡텔의 하청 공사를 많이 했다.) 사우디는 호메이니가 이끄는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선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절실했으니 석유 금수(禁輸)로 미국을 위협했던 1970년대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1980년대 전반기에는 달러가 강세였다. 1970년대 후반기 미국 금리가 두 자리 숫자였고, 닉슨 대통령이 OPEC에 대한 원유대금을 달러화로 지불하도록 해서 달러 수요가 증가하고 또 높은 이자율로 인해 오일 머니가 미국으로 유입돼서 달러가 고평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미국에 수출을 많이 할 수 있었다.

1985년 9월에 뉴욕에서 이루어진 플라자 합의(Plaza Agreement)로 인한 엔고(高) 현상도 우리나라 수출품의 경쟁력을 높여 주었다. 플라자 합의로 달러화가 평가절하 되자 자연히 우리나라 수출품의 대미 수출 경쟁력이 떨어졌는데, 그러자 일본 엔화 가치가 올라가서 우리 제품이 미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게 됐다. 그러니까 전두환 시절의 경제 호황은 이래저래 레이건 대통령에 힘입은 바 컸다.

전두환이 당시 내란죄로 사형선고를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방미를 조건으로 감형하고 얼마 후 석방해서 일본 도쿄를 거쳐 미국으로 가도록 한 조치도 경제에 영향을 미쳤다. 유학 중이던 나는 1980년 미국 대선 후 ‘김대중 사형집행 가능성’을 언급하는 미국 신문 기사를 보고 걱정을 하기도 했다. 파키스탄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나서 알리 부토 전 총리를 처형한 사례가 같이 언급됐기 때문이다. 전두환 세력이 정말로 DJ를 처형할 생각이 있었는지, 아니면 미국과 일본에 대한 레버리지(leverage)로 사용하기 위해 공갈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여하튼 카터 행정부의 안보 팀은 그것을 심각한 위험으로 생각하고 레이건 대통령 당선자의 안보 팀을 이끌던 리차드 앨런(Richard Allen)을 만나서 정권 인수인계 최우선 사안의 하나로 전달했고, 그렇게 해서 1982년 2월 전두환은 미국을 방문하고 레이건 대통령을 면담하게 된다.

전두환은 미국에 약속한 대로 DJ를 감형했고 얼마 후 석방해서 DJ는 일본을 거쳐서 미국을 방문하게 된다. 일본은 김대중 납치로 인한 영토주권 침해가 원상회복이 되었다고 보고 우리나라에 차관 제공을 재개해서 전두환 정권의 숨통이 트이게 됐다. 전두환 세력은 ‘김대중의 생명’을 갖고 게임을 한 셈이다. (그런 것도 ‘정치’인가?)

- 사진은 레이건 대통령을 방문한 전두환. 1대1로 만나기가 불편했는지 레이건 대통령은 부시 부통령과 헤이그 국무장관도 배석을 하도록 했다. 다리를 쩍 벌리고 앉은 전두환, 그리고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부시 부통령과 헤이그 국무장관(오른쪽 소파에 앉은 두 사람)이 대조적이다. 누구를 만나도 친절하게 대하고 유머를 잊지 않았던 레이건 대통령의 면모를 이런 장면에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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