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항공사 규제해제법’

작성일 : 2021-11-06 10:28조회 : 1,413

‘항공사 규제해제법’

민간사업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규제는 시장 진입(entry) 규제와 가격 통제인데, 이런 규제는 많이 사라졌고 이제는 공정거래, 환경·보건·안전 규제가 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 내가 미국에서 공부를 하던 카터 행정부 말년까지 미국에는 휘발유 가격통제(gas price control)가 있었는데, 레이건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행정명령으로 이를 철폐해 버렸다. 가격통제가 없어지자 휘발유 가격은 잠시 올라가더니 공급이 증가해서 얼마 후 가격은 오히려 내려가고 말았다. 이것이 규제해제(deregulation)의 효과다. 이를 두고 규제해제는 1980년대 공화당 정책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맞는 말이 아니다.

규제해제로 경쟁을 촉진하는 정책을 본격적으로 밀고 나간 대통령은 지미 카터였다. 카터는 강력한 규제해제론자인 코넬대학의 경제학 교수 알프레드 칸(Alfred Kahn 1917~2010)을 민간항공위원회(Civil Aeronautics Board :CAB)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알프레드 칸은 평소의 지론대로 항공사업에 대한 규제를 철폐하는 작업에 들어갔고, 의회는 1978년에 항공사 규제해제법(The Airline Deregulation Act)을 통과시켰다.

민간 항공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무렵인 1939년에 설립된 CAB는 항공 노선 배정과 항공 요금에 대한 규제권을 갖고 있었다. 독과점과 과잉 경쟁을 똑같이 악(evil)으로 보았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시절에 태어난 CAB는 업계의 선두주자인 팬앰(Pan Am)과 TWA의 기득권을 보호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신규 항공사들은 노선 배정을 얻어 내기가 매우 어려웠고, 이런 결과로 항공 여행은 부유층에게나 허용되던 사치였다.

1978년 법률은 항공사 신규 허가, 항공 노선 배정, 요금 통제 같은 일체의 규제를 없애 버렸고, 이런 기능을 하는 CAB는 1985년 1월 1일자로 폐쇄하도록 했다. 알프레드 칸은 CAB를 해체하기 위해 CAB 위원장이 됐던 것이며 입법의 목적을 달성하자 CAB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이렇게 해서 미국 항공사는 완전한 자유경쟁체제로 들어갔고, 오늘날 항공사는 연방항공국(FAA)의 안전규제를 받을 뿐이다.

나는 이런 사정을 40년 전 유학 첫해에 행정법 시간에 알게 됐다. 미국 행정법은 우리와는 달리 규제기관의 규제 절차를 다루는 과목이라서 규제를 해제하고 규제기관을 폐지하도록 한 이 획기적인 법률은 큰 의미가 있었다. 기업활동을 규제해야만 국민경제가 건전해 진다는 뉴딜적 사고(思考)를 정답인 것처럼 알아왔던 나에게 그것은 큰 지적(知的) 충격이었다.

1978년 법률에 의한 규제해제는 항공사업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신규사업자들이 저가를 내걸고 항공노선에 새로 뛰어들자 국제선은 물론이고 국내선 운항을 과점(寡占)해 온 팬앰, TWA, 브래니프 항공, 이스턴 항공은 결국 몰락하고 말았다. 오래된 항공사 팬앰과 TWA는 노조가 강하고 임금이 높아서 노조가 약한 남부에 근거를 두고 뒤늦게 성장한 델타 항공(Delta Airline : ‘델타’는 미시시피 강 하류 델타에서 따온 명칭이다. 델타 항공은 원래 본사를 루이지애나에 두고 있었으나 나중에 애틀랜타로 옮겼다.)과 경쟁을 할 수 없었다. 사우스웨스트, 밸류제트 같은 신규사업자가 등장해서 소비자들은 보다 값싸게 항공여행을 할 수 있게 됐다. 1978년 법률 덕분에 항공여행이 대중화된 것이다.

항공여행이 보다 싸지고 편리해 졌지만 항공사는 피나는 경쟁을 해야만 했고 견디어 내지 못한 항공사들은 다른 항공사에 병합되는 길을 택했다. 컨티넨탈 항공이 유나이티드 항공(United Airlines)으로, 우리에게 오랫동안 친숙했던 노스웨스트 항공은 델타 항공으로, 유에스 에어는 아메리칸 항공으로 흡수 합병되었다. 1978년 법률에 힘입어 본격적으로 항공업에 뛰어 든 사우스웨스트 항공(Southwest Airline)은 눈부신 성장을 해서 경영학 교과서를 다시 쓰게 만들었다.

규제해제가 이루어지고 30여년 세월이 흘러가자 4개 항공사, 즉 유나이티드, 아메리칸, 델타, 그리고 사우스웨스트가 항공노선을 과점하는 4강(Big 4) 체제가 되고 말았다. 더 이상의 합병은 미국 법무부가 독과점을 이유로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에 4강 체제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결과는 알프레드 칸 교수가 CAB를 해체하면서 기대했던 바는 아닐 것이다. 4개 항공사 중에는 사우스웨스트의 성공이 가장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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