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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닉슨과 듀크 로스쿨
작성일 : 2022-05-15 12:54조회 : 72


닉슨과 듀크 로스쿨


듀크 대학은 노스캐롤라이나 더럼에 위치한 좋은 사립대학이다. 원래는 기독교계 대학으로 시작했으나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담배회사를 크게 일으켜서 거부가 된 제임스 듀크가 20세기 초에 거액을 기부해서 대학이 크게 성장했고 명칭도 듀크 대학(Duke University)으로 바꾸었다. 듀크를 졸업한 가장 유명한 졸업생은 리차드 닉슨(Richard M. Nixon 1913~1994)으로, 1937년에 로스쿨을 3등으로 졸업했다.

남부 캘리포니아 요버 린다에서 작은 잡화상을 운영하던 부친과 성실한 모친 사이에서 태어난 닉슨은 어릴 때 형과 동생이 폐결핵으로 사망하는 등 불행을 겪으면서 자랐다. 총명하고 근면한 닉슨은 아버지의 잡화상을 도우면서 공부를 했으나 항상 우등생이었다. 가정 사정상 다른 곳에 있는 좋은 대학을 다닐 수 없었던 닉슨은 부근의 휘티어 대학(Whittier College)을 다녔다. 듀크 대학에서 로스쿨 장학생을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지망해서 전액 장학생으로 선출된 닉슨은 낯선 노스캐롤라이나에 도착해서 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듀크 로스쿨은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장학금을 내걸었는데, 그 경쟁은 치열했다. 휘티어 대학 총장은 닉슨을 추천하면서 닉슨은 자기가 아는 최고의 학생이라고 극찬하는 추천서를 써주었다.

듀크의 장학금은 2학년과 3학년으로 올라갈수록 대상 인원이 줄어서 닉슨은 장학금을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닉슨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공부를 했고, 저녁에는 도서관에서 일하면서 생활비를 벌었다, 방학 중에는 교수들의 일을 돕는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조달했다. 닉슨은 학급 대표를 하는 등 리더십이 있었다. 같은 학년에  소아마비로 다리를 못 쓰는 학생이 있었는데, 닉슨은 그 학생을 2층 강의실로 업고 다녀서 동료 학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당시 듀크 대학은 별로 좋은 대학이 못되어서 닉슨은 원하는 로펌에는 인터뷰도 하지 못했고, FBI에 원서를 넣었으나 역시 응답을 얻지 못해서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2차 대전 중 해군 장교로 태평양 도서에서 복무하고 전후에 고향으로 돌아온 닉슨은 공화당 후보로 출마해서 하원의원과 상원의원이 되고 아이젠하워 대통령에 의해 부통령으로 발탁됐다. 1960년 대선에는 케네디에게 패배했으나 1968년에는 당선됐고 1972년에는 압도적으로 재선에 성공했으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1974년 8월 사임했다.

닉슨의 일생에 있어서 듀크 대학 로스쿨은 결정적인 계기였다. 듀크 대학은 그 후 꾸준히 발전해서 이제는 누구나 인정하는 명문 사립대학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듀크 대학과 닉슨과의 관계는 순탄치가 않았다. 닉슨이 부통령이 되자 1954년 듀크 대학은 닉슨을 졸업식에 연사로 초청하고 명예학위를 수여하려고 했는데, 교수협의회가 닉슨은 상대방을 비열하게 공격하는 정치인이라면서 반대를 해서 대학 당국은 그 계획을 철회했다. 화가 난 닉슨은 그 후 모교와 거리를 두었다. 1961년에 듀크대가 다시 닉슨에게 명예학위를 수여하겠다고 제안했는데 이번에는 닉슨이 거절을 했다.

닉슨이 대통령이 되고 재선 가능성이 높아지던 1972년, 듀크 대학은 닉슨이 퇴임한 후에 듀크 캠퍼스 부근에 닉슨 기념도서관을 설립하는 계획을 세워서 닉슨 측과 협의를 했다. 듀크 대학은 부지를 마련하고 개략적인 건축계획을 세웠는데,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져서 닉슨은 1974년 여름에 불명예스럽게 사임을 했다. 닉슨이 사임을 하자 듀크 로스쿨에 걸려 있던 닉슨 초상화가 철거되는 등 대학 내 분위기는 닉슨 기념도서관 설립에 부정적으로 돌아갔다. 1981년 듀크 대학은 닉슨 기념도서관을 건설하지 않기로 최종적으로 결정했다. 그 후 닉슨과 듀크 대학은 교류가 완전히 끊어져 버렸다.

1994년 4월 22일 닉슨이 사망하자 듀크 로스쿨 학장이 닉슨이 남긴 여러 가지 유산(legacy)에 대해 간단한 메시지를 냈을 뿐이고 대학 당국은 듀크의 가장 유명한 동문인 닉슨의 사망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한편, 닉슨 기념도서관은 닉슨의 고향 요바 린다에 세워졌다. 닉슨의 부인 패티 여사가 먼저 사망하자 기념도서관 옆에 묻혔고 1년 후 닉슨이 패티의 옆에 묻혔다. 닉슨의 출생 100주년이 되는 2011년, 닉슨이 다닌 휘티어 대학에는 닉슨 센터가 세워졌고 닉슨 백악관 시절의 자료가 보관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듀크 대학은 닉슨의 후손과 아무런 연락이 없으며 듀크 대학에 있어서 닉슨은 여전히 불편한 존재가 되어 있다.

- 사진 : 닉슨이 듀크를 다닐 적의 로스쿨 건물, 지금 듀크 로스쿨 건물은 1963년에 새로 지어졌고, 원래 로스쿨이 사용했던 오래된 석조 3층 건물은 오늘날 랭귀지 빌딩으로 불리며 어문학과가 사용하고 있다. 듀크 학생은 물론이고 직원 중에도 이 건물이 닉슨이 공부했던 로스쿨 건물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 - 닉슨은 말년에 대통령으로서 자기는 대부분 사람들에게 마오쩌뚱과 악수하고 워터게이트로 물러난 대통령으로만 기억되고 있다고 씁쓸하게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닉슨은 소련과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케네디와 존슨이 시작한 베트남 전쟁을 마무리하고 미군을 모병제로 전환시켰고, 달러화의 금(金)태환을 금지시켰으며, 미국의 행정조직을 오늘날의 모습으로 만드는 등 미국에 많은 변화를 가져온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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