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972년 6월 16~17일 워터게이트 빌딩

작성일 : 2022-06-11 22:07조회 : 993

1972년 6월 16~17일 워터게이트 빌딩

1976년에 나온 영화 <All the President's Men>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추적 보도한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 그들의 취재 무용담을 담아 펴낸 같은 이름의 책을 토대로 한 것이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밥 우드워드, 더스틴 호프만이 칼 번스타인으로 나온 이 영화는 워싱턴포스트 뉴스 룸을 중심으로 다룬 것으로, 지금 보면 지루하게 느껴 질 것이다. 영화의 도입부는 1972년 6월 17일에서 18일로 넘어 오는 한 밤중에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던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 5인조가 침입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영화가 나온 후에 추후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그날 밤에 있었던 사건은 영화에 나온 것 보다 훨씬 화려(colorful)하다.

그날 밤 워터게이트 빌딩에 잠입한 5인조 중 리더는 CIA 요원 출신인 제임스 맥코드였고 다른 4명은 쿠바 난민이었는데 이 네명은 CIA가 피그스 만 침공을 준비할 때 훈련 시켰던 사람들로 영어를 잘 하지 못했다. 이들은 5월에도 비밀리에 잠입해서 도청 장치를 전화기에 설치했으나 잘 작동하지 않아서 다시 잠입해서 민주당 전국위 의장 래리 오브라이언의 전화에 도청장치를 설치하고 소형 카메라로 다른 문서를 촬영해 올 작정이었다. (쿠바 난민 출신인 4명은 그들이 카스트로 정권을 무너트리기 위한 공작에 참여하는 것으로 알았다고 나중에 진술했다. 이들은 건물 침입죄로 징역형을 선고 받았고, 출옥 후에 공화당이 자신들이 속였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해서 보상금을 받아냈다.)

워터게이트 빌딩이 잘 보이는 건너편 하워드 존슨 모텔 4층 방에는 FBI 요원 출신인 알프레드 볼드윈이 쌍안경을 들고 민주당 사무실을 살펴보고 있었다. 볼드윈은 워키토키를 통해서 5명의 행동을 지휘하고 경찰이 오는지를 살펴보았다. 이들은 원래 야간 경비원이 출근하는 밤 12시가 되기 전에 행동을 개시하려고 했으나 그 날에는 민주당 사무실에 젊은 직원이 밤늦게까지 퇴근하지 않아서 경비원이 자정에 출근한 후에야 사무실에 잠입할 수 있었다. 그날 민주당 사무실에 자정 가까이 늦게까지 있었던 직원은 대학생 인턴이었다. 그는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후에 남아서 멀리 있는 부모님과 여자 친구 등에게 장거리 전화를 계속 걸었다. 시외 통화 요금이 비쌌던 시절이라서 이 인턴은 사무실 전화를 공짜로 이용해서 마음껏 시외 통화를 하느냐고 늦게 퇴근했던 것이다. (그는 나중에 로스쿨을 나와서 변호사가 됐다.)

자정이 넘어서 5인조는 지하층에서 6층 민주당 사무실로 잠입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문이 자동으로 잠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문이 잠기지 않게 테이프를 붙였는데 자정에 출근한 경비원이 그것을 보았다. 그가 무심하게 테이프를 제거했는데, 얼마 후 다시 와 보니 또 다시 테이프가 붙여 있음을 알게 됐다. 경비원은 누가 침입을 했다고 생각하고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 경비원은 흑인으로, 자기보다 늦게 들어온 백인 직원이 자기보다 높은 자리로 승진을 해서 경비 회사를 그만 둘 작정이었다.)

워싱턴 DC 경찰 상황실은 워터게이트 건물 부근에 배치되어 있던 경찰관을 호출했다. 그런데 정작 순찰차를 세워 놓고 근처의 ‘PW 살론’이라는 바에 있었다. 별다른 일도 없을 것으로 생각한 그는 버번 코크(버번 위스키에 코카콜라를 부은 일종의 폭탄주)를 연거푸 마시고 얼큰해 있었다. 밤 2시가 거의 되어 갈 때 워터게이트 빌딩으로 출동하라는 호출이 왔는데 술에 취한 그는 운전을 할 수 없었다. 계속 호출이 오자 술집 주인은 그에게 순찰차에 휘발유가 없어서 못 간다고 둘러 대라고 했고, 그는 경찰 상황실에 그렇게 이야기 했다. 그러자 상황실은 부근에있던 언더커버 순찰차(보통 자동차에 사복을 입은 경찰관이 탄 것을 의미한다)를 호출했다. 경찰 표지가 없는 그 순찰차(unmarked patrol car)에는 세 명의 사복 경찰관이 타고 있었는데, 이들은 거리의 마약 사범과 소매치기 등 잡범을 잡아 드리는 ‘Bum Squad’로 장발에다 히피 복장을 하고 있었다.

영화에 보면 이들 3명 언더커버 경찰관은 워터게이트 빌딩으로 가라는 본부 호출에 대해 “정말로 우리가 가기를 원하느냐? 거기에 정복 경찰이 타고 있는 순찰차가 있지 않느냐?”고 물었고, 그러자 상황실은 그 순찰차는 휘발유가 떨어져 가서 못가니까 당신들이 가라“고 지시하는 대목이 나온다. 즉, 술집에서 퍼져 버린 정복 경찰관이 순찰차에 휘발유가 떨어져가서 못 간다고 하자 본부 상황실이 그 말을 믿고 언더커버 순찰차에게 출동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그런데, 그 술집에서 워터게이트 빌딩까지는 가깝기 때문에 휘발유가 떨어져가서 못 간다는 것은 도무지 말이 안 되었다. 또한 장발에 히피 차림을 한 사복 경찰관은 주택이나 사무실로 밤중에 출동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차림을 한 경찰관이 권총을 들고 주택이나 빌딩에 쳐 들어가다간 오히려 강도로 오인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본부에 “정말로 우리가 가기를 원하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하워드 존슨 모텔 4층 방에서 워터게이트 빌딩을 살펴보던 알프레드 볼드윈은 경찰차가 오면 워키토키로 5인조한데 얼른 피하라고 지시를 할 텐데 보통 승용차가 도착해서 장발을 한 히피 3명이 건물 정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괜찮다고 생각해서 피신 지시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히피 3명이 6층에 도달해서 권총을 들고 사무실을 돌면서 불을 키고 살펴보자 볼드윈은 상황이 심각함을 알고 5인조에게 피하라고 알렸으나 이미 늦어 버렸다.

히피 차림의 경찰관 중 선임인 리퍼 경사는 컴컴한 사무실 구석에서 인기척이 나자 권총을 겨누면서 손들고 나오라고 외쳤고, 5인조는 어둠 속에서 한명씩 두 손을 들고 일어섰다. 도둑이 든 것 같다고 신고를 받고 출동을 했는데 양복을 잘 차려 입은 5인조가 손을 들고 일어서자 그 순간 리퍼 경사는 머리칼이 곤두서는 공포를 느꼈다. 앞에 5명 괴한이 순순히 손을 들고 나오면 자기 뒤에서 다른 놈이 자기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공포에 휩싸였던 것이다. 겁에 질린 리퍼 경사는 고개를 천천히 돌려서 뒤를 보았더니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안도의 한숨을 쉰 리퍼 경사는 다섯 명에게 “너희들은 체포됐다”고 외쳤고 동료들이 와서 이들에게 수갑을 채웠다. 건너편 하워드 존슨 모텔에서 이 장면을 지켜 본 볼드윈은 장비를 챙겨서 줄행랑을 쳤고 그 조직의 책임자인 하워드 헌트와 고든 리디는 상황이 심각하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그 날 밤 공짜 시외전화를 즐기느냐고 대학생 인턴이 사무실에 늦게까지 있지 않았더라면, 또 술집에 있던 경찰관이 한잔만 하고 순찰차를 몰고 워터게이트 빌딩으로 갔더라면 역사를 바꾼 워터게이트 사건은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니, 일이 잘못되려면 모든 것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모양이다. (다음날 아침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또 5인조를 포함한 이 조직이 왜 생겨났는지에 대해서는 이어서 쓰기로 한다. ‘폭탄주 사건’은 2012년에 술집 주인이 밝혀서 알려졌지만 워싱턴 DC 경찰은 이에 대해서 아무런 기록이 없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다.)
- 아래는 영화 <All the President's Men>의 장면.

이전글워터게이트 빌딩 침입자

다음글워터게이트, 마샤 미첼

리스트로

이상돈닷컴

이상돈

LEESANGDON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