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못이 되어버린 낙하산 기관장

작성일 : 2022-06-21 15:26조회 : 911

대못이 되어버린 낙하산 기관장

이번에도 산하기관장이라고 부르는 공공기관장의 임기 보장을 두고 논란이 많다. 정권만 바뀌면 나오던 이야기가 또 나오고 있으나, 이미 예상한 대로다. 과거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에서는 군 출신들을 공공기관장으로 많이 임명했다. 노태우 정부 이후에는 정부 여당 인사와 퇴직 고위관료들을 임명했는데, 인사 적체를 해소한 측면이 많이 있었다. 정부 기능이 늘어나서 정부 자체가 그 기능을 담당하기 보다는 전문적인 집행기구에 맡기는 게 좋다는데 착안해서 공공기관 숫자가 늘어났다. 그러다가 정부 여당이 공공기관장 인사를 전문성과 관계없이 정치적 연줄로 한다는 여론이 일어서 공공기관 혁신 차원에서 공공기관장과 임원 선임을 공개채용으로 임기를 보장해서 전문성과 독립성을 확보하자는 것이 공공기관장/임원 공채 제도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완전히 ‘사기극’에 불과함이 백일하에 들어나고 말았다. 공채는 허울 좋은 번거로운 절차에 불과하고 청와대가 좌지우지한 것이다. 공공기관장과 임원 자리는 정권의 전리품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게다가 대통령 임기와 그러한 기관장과 임원의 임기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정권 초에는 전 정권에 의해 임명된 기관장은 새로 들어서 정권의 장관과 어색한 동거를 하게 된다. 그런 기관장이나 임원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자신을 임명한 정권이 끝났으면 그만 물러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대체로 그들은 버티고 버틴다. 그래서 생긴 사태가 문재인 정부 환경부와 산자부에서 있었던 산하기관 블랙리스트 파동이다.

그러면 그런 상황을 운영의 묘를 살려서 피할 수는 없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 기관장을 했던 사람 중 내가 잘 알던 분이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도 당 대표 시절부터 아는 분이었다. 박 대통령이 취임하고 얼마인가 있다가 그 분의 경력과 합치하는 공공기관장으로 임명됐고 3년 임기 동안에 그 기관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3년 임기가 끝나고 본인의 희망이기도 했겠지만 대통령의 임기와 맞추어서 1년 연임 발령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는 바람에 그의 임기는 박 대통령 임기 보다 몇 달 더 갔으나 별 문제없이 임기를 마치고 홀가분하게 자연인으로 돌아갔다.

내가 환노위에 있을 때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 임명된 어느 기관장이 있었는데, 도무지 국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이 되지 않았다. 그 기관은 노사분규가 생기는 등 문제가 많았지만 임기가 끝날 때까지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그의 후임으로 임명된 기관장은 그 분야에서 일해 온 능력 있는 분이었다. 자연히 그 기관은 정상을 찾았고 기관평가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았다. 또 환노위 소관 기관장 중에는 처음 임명될 때는 말이 있었지만 그 후 많은 일을 해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경우도 있었다. 나는 그런 기관장은 1년 정도 연임을 해서 대통령 임기까지 같이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3년 임기가 끝나자 곧 새 기관장들이 우르르 내려왔다. 문 정권 하에서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사람이 그렇게 많았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런 기관장들이 자질이나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문 정부 시절에 임명된 환노위 소관 어느 기관장은 상임위원회에서 기초적 답변이 되지 않아서 의원들은 그 기관장을 상대로 질의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런 기관의 직원도 못될 사람이 정치적 연줄을 타고 공채를 거쳐서 기관장이 된 것이다. 자질이 안 되는 그런 사람을 기관장으로 내려 보낸 청와대는 도무지 무슨 생각이었는지 한심하다고 느꼈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 임기 종료를 6개월 앞두고도 대못을 박는 식으로 임명된 기관장이 여러 명이라고 하니 기가 막힌 일이다.

공공기관이 전문기관이라서 정권에 관계없이 전문성 있는 기관장을 선출해서 임기를 보장한다는 것이 지금의 공공기관장 임기제인데, 세상에 이처럼 뻔뻔한 거짓말이 없다. 그래서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합의제 기관인 위원회를 제외하고 통상적 기관장은 임기 보장을 없애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부가 기관장을 임명하고 그 기관장의 행위에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자기 임기가 남은 상태로 정권이 교체되어도 버티고 남아 있는 기관장 보다 대통령 임기 종료와 함께 스스로 물러나는 기관장이 훨씬 훌륭하고 멋있는 사람이다. 그런 기관장을 거의 볼 수 없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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