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국 전직 대통령 예우

작성일 : 2022-06-23 16:45조회 : 1,148

미국 전직 대통령 예우

미국 의회가 1958년에 전직 대통령법(The Former Presidents Act)을 제정하게 된 이유는 해리 트루먼(1884~1972) 대통령 때문이었다. 1차 대전 후 고향 미주리로 돌아온 트루먼은 셔츠와 넥타이를 파는 가게를 열었으나 실패해서 얼마 있지도 않은 전 재산을 들어 먹었다. 그 후 처가 집에 얹혀살던 트루먼은 얼떨결에 상원의원이 되고 또 얼떨결에 부통령이 되고, 석 달도 안 되서 루스벨트 대통령이 사망하자 또 얼떨결에 대통령이 됐다. 그런 트루먼이 대통령으로 성공한 것은 천성적으로 겸손한 그가 조지 마셜, 딘 애치슨 같은 당대의 인물들을 기용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으로 있을 때 차곡차곡 봉급을 모은 트루먼은 고향으로 돌아와서 처가 주택을 인수하고 자동차를 사서 부인과 여행을 하는 등 한가한 시간을 보냈지만 수입이 없어서 곧 궁색해 졌다.

그런 소문이 워싱턴까지 나서 의회가 전직 대통령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법률을 만들었는데, 법률 제정 시점의 대통령부터 적용돼서 정작 트루먼은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트루먼은 퇴임 후 19년을 더 살고 1972년 12월에 사망했다. 트루먼은 존슨 대통령 시절에 65세 이상 노인에게 연방정부가 의료비를 보조하는 메디케어법이 의회를 통과해서 메디케어 증서를 받고 병원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서 무척 좋아했다. 트루먼이 죽은 후 부인 베스 여사는 10년을 더 살았고 유언으로 살던 집을 미국 정부에 기증했다. 베스 여사가 매우 어렵게 살았을 것임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데, 베스 여사는 단 하나 뿐인 재산인 오래된 집을 역사적 장소로 보존하기 위해 미국 정부에 기증한 것이다.

아이젠하워(1890~1969) 대통령은 성공적인 임기를 마치고 펜실베이니아 게티즈버그에 있는 자택으로 은퇴했다. 5성 장군이라서 군인연금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아이젠하워는 전직 대통령법에 의한 혜택까지 있어서 중복되는 연금액을 공제해도 걱정 없는 은퇴생활을 할 수 있었다. 아이젠하워는 자기 아래에서 부통령을 지낸 닉슨이 대통령에 취임하는 모습을 병석(病席)에서 보고 매우 즐거워했다. 아이젠하워는 1969년 3월 월터리드 육군병원에서 사망했다. 당시 대통령이던 닉슨은 아이젠하워의 영결식에서 읽을 추도사를 밤을 새서 직접 썼다고 전해진다. 아이젠하워는 유언을 통해 게티즈버그에 있는 자신의 저택을 역사적 장소로 보전하기 위해 미국 정부에 기증했다.

존 F. 케네디는 임기 중 암살을 당해서 퇴임 후 연금 혜택을 볼 기회가 없었다. 재클린 케네디는 전직 대통령의 잔존 배우자로서 매년 2만 달러 연금을 받았지만 워낙 씀씀이가 헤픈 재키에게 그것은 큰 도움이 될 수 없었다.

린든 존슨(1908~1973) 대통령은 퇴임 후 텍사스 스톤월에 있는 자신의 농장 하우스(ranch house)로 은퇴했다. 그곳에서 존슨은 비서들과 함께 회고록을 집필하고 텍사스 대학에 기념 도서관을 열기 위한 준비를 했다.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고뇌와 스트레스, 그리고 끊임없이 피워 댄 담배 때문에 심장이 나쁜 존슨은 퇴임 후 4년 만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존슨은 전임 대통령에 관한 연금 등 예우를 겨우 4년 동안 받고 사망한 것이다. 존슨은 유언으로 스톤월에 있는 농장 하우스를 미국 정부에 기증했다.

닉슨 대통령(1913~1994)은 워터게이트 사건의 여파로 1974년 8월에 사임하고 남부 캘리포니아 한적한 작은 도시 샌클레멘츠에 있는 저택으로 가족과 공보비서였던 론 지글러 등과 함께 은퇴했다. 1년 동안 닉슨은 아무 말 없이 허공을 보는 경우가 많았고 간간히 외출을 했다. 대통령으로 있을 때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응하느냐고 변호사 비용을 너무 많이 지출해서 퇴임 당시 닉슨의 재정 상태는 엉망이었다. 포드 대통령이 사면을 해주어서 형사 재판에 피고가 되는 악몽은 피했으나 여러 가지 법적 문제는 닉슨을 괴롭혔고 변호사 비용은 계속 들어갔다. 건강이 나빠져서 수술을 해야 하는 등 의료비도 많이 들어갔다. 그런 닉슨에게 퇴직 대통령에게 주어지는 각료급 봉급인 연금은 생명줄 같았다. 중국과 외교 관계를 트고 소련과 군축 협상을 하는 등 화려했던 대통령 생활을 뒤로 하고 연금 생활자가 됐으니 꿈을 꾸는 것 같았을 것이다. 그런 닉슨을 지켜 준 사람은 아내 패트 여사와 평생 비서였던 로즈 매리 우즈였다 .

닉슨은 플로리다 키 비스케인에 있는 별장을 매각하고 영국 방송이 장시간 독점 인터뷰를 제안해서 간신이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닉슨은 샌클레멘츠 저택도 정리하고 뉴욕 맨해튼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1980년대 들어서 닉슨은 다시 의욕을 찾고 강연을 하고 외국도 방문했다. 1980년대에 레이건-부시 공화당 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이기도 했다. 고향 요바 린다에 기념 도서관을 준비하는 등 닉슨은 자신의 유산(legacy)을 정리할 수 있었다. 1993년에 부인 패트 여사가 사망하자 닉슨의 건강은 급속하게 나빠졌고, 이듬해에 사망했다. 닉슨은 퇴임 후 20년을 살았기 때문에 전직 대통령에 주어지는 혜택을 오랫동안 입은 편이다.

닉슨의 뒤를 이어서 대통령이 된 제럴드 포드(1913~2006)는 1976년 대선에 패배해서 1977년 1월 야인이 됐다. 포드는 전직 대통령에 주는 혜택을 축소해야 한다는 논란을 야기했다. 그러면 도무지 포드한테 무슨 일이 있었기에 대통령 연금을 축소해야 한다는 여론이 나왔을까 ? (계속)

사진 (1) 아이젠하워 저택 기념관 (게티즈버그, 펜실베이니아) (2) 존슨 저택 기념관 (스톤월, 텍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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