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통령의 오찬

작성일 : 2022-08-29 16:35조회 : 754

대통령의 오찬

며칠 전 국민의힘 연찬회와 재래시장 방문 등 윤 대통령이 먹는 장면이 너무 많아서 나마저 걱정을 하게 된다. 검색어로 ‘윤석열 먹방’을 치면 사진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올라 오는 데, 대통령이 이렇게 희화화되는데도 본인과 참모들은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니 한심하다. 대통령이 일정을 많이 갖는 것은 좋은 현상이지만, 그것은 생산적이어야 하고 또한 상징성을 갖거나 의미를 가져야 한다. 재래시장에 가서 호떡 먹는 모습이 서민적이라고 대통령 홍보실은 생각하는 모양인데, 인식 수준이 그 정도라면 할 말이 없다.

대통령은 내성적인 사람일 수도 있고 외향적이고 사교성이 좋은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내성적인 사람이라도 일단 대통령이 되면 그 직무상 여러 일정을 감당해야 하는데, 오찬도 중요한 일정 중의 하나이다. 오바마는 내성적이라서 시카고 로스쿨에서 강의를 할 때 그런 사람이 있는지 몰랐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일단 대통령이 된 후에는 오찬 일정을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그런 자리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무사히 8년 임기를 마쳤다.

반면에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를 좋아하지 않았던 닉슨과 카터는 공식행사가 아니면 오찬 일정을 거의 갖지 않았다. 닉슨은 백악관 집무실에 있는 것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오후에는 건너편 대통령실 건물에 마련한 서재에 가서 혼자 클래식 음악을 들어가면서 보고서와 서류를 읽고 자기의 의견과 지시사항을 직접 메모했다. 닉슨은 특이한 식습관을 갖고 있었는데, 점심은 코티지 치즈와 깡통 파인애플 두 쪽 그리고 우유 정도였고 집무실이나 서재에서 혼자 먹었다. 닉슨은 책을 많이 읽은 대통령으로 손꼽히는데, 대통령이 되기 전에 역사 책, 특히 링컨, 윌슨, 처칠 등 전쟁을 치른 지도자에 관한 책을 심취해서 읽었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닉슨은 캘리포니아 샌클레멘츠 저택과 플로리다 키 비스케인 별장을 자주 찾아서 며칠씩 있다 오곤 했다. 닉슨은 혼자 있을 때엔 비싼 프랑스 와인을 홀짝 홀짝 마시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선 값싼 와인을 내어 놓게 했는데, 와인 브랜드가 보이지 않게 따르도록 했다고 전해진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그의 성격이 결국 워터게이트 사건을 유발해서 도중에 사임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닉슨 못지않게 사람을 만나기를 싫어한 대통령이 지미 카터이다. 카터가 사람을 많이 만났던 때는 1970년 주지사 선거와 1976년 대통령 선거 때였다. 대통령이 된 카터는 복잡하고 잠시도 자신을 가만 두지 않는 워싱턴 DC의 정치적 생활이 매우 힘 들었다. 카터도 책을 좋아했던 대통령으로 뽑히는데, 그가 좋아한 책은 종교, 인류 문명, 환경과 생태 등 다양했다. 인플레이션과 높은 이자율로 국민들이 비명을 지를 때 카터가 미국과 세계 문명이 한계에 달했다는 식으로 긴 연설을 해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카터는 점심을 부인 로잘린 여사와 둘이서 먹거나 그날 백악관 카페테리아에 나온 음식을 가져오라고 해서 혼자 먹었다. 닉슨처럼 버젓한 저택과 별장을 갖고 있지 못한 카터는 사람들을 피해서 캠프 데이비드 대통령 별장으로 자주 피난을 갔다. 카터는 재임 중 해외방문이 많았는데, 방문한 나라의 리스트를 보면 구태여 미국 대통령이 갈 필요가 있어 보이지 않는 나라가 많았다. 1978년 6월에는 파나마 운하를 파나마에 돌려주는 조약을 체결하러 파나마를 방문해서 보수층으로부터 욕을 왕창 얻어먹었다. 카터의 비서를 지낸 어느 인사는 카터는 사람을 피해서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워싱턴을 떠나는 것을 좋아 했다고 꼬집었다.

1981년에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하자 백악관은 오찬을 물론이고 저녁 연회와 만찬이 부쩍 늘었다. 레이건이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 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백악관 주방이 가장 바빴던 시절이 레이건 임기 8년 동안이었을 것이다.

- 사진 (1) 추수감사절 칠면조 요리를 준비하는 패트 닉슨. 패트 여사는 그 시대 가장 전형적인 미국 여성이었다. 나는 패트 여사가 매우 훌륭한 퍼스트레이디였다고 생각한다. (2) 닉슨이 사임을 발표하는 날 백악관에서 먹은 마지막 점심으로 알려져 있다. 주방에서 누가 찍어서 언론에 많이 유포되어 있다. (3) 백악관에서 카터 부부의 점심 (4) 레이건 대통령의 백악관 작은 정원 오찬. 밥 돌 상원의원, 그의 부인인 엘리자베스 돌 교통장관. 오른 쪽은 제임스 베이커 비서실장, 그리고 마이클 디버 비서실 차장(뒷머리 만 보이는 사람).
===========

이전글"나가서 새당 만들어라!"(YTN)

다음글2012년 12월

리스트로

이상돈닷컴

이상돈

LEESANGDON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