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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H. W. 부시와 리 앳워터

작성일 : 2022-09-03 19:21조회 : 805

조지 H. W. 부시와 리 앳워터

미국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의장은 대체로 현직 상원의원이나 하원의원이 겸직을 하거나 선거에서 실패한 전직 의원이 맡아왔다. 공화당이 집권당인 경우에는 대통령이 사실상 지명하다시피 했다. 대통령이 특별하게 지명하는 사람이 없거나 공화당이 야당일 경우에는 위원회가 자체적으로 선출하기도 하는데 최근에는 투표로 선출하는 경향이 있다.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의장으로 세워서 대선 본선에 임했던 경우도 있다. 어느 경우에나 전국위원회 의장은 대통령이나 의회 지도부, 또는 대선 후보가 확정되면 그 후보를 위해 일하는 자리이다. (우리나라 당 대표처럼 자기가 날뛰거나 공천에 간여하는 경우는 절대로 없다.)

공화당으로선 어려웠던 시기가 1964년 대선에서 배리 골드워터 상원의원이 존슨 대통령에게 참패를 당한 후였다. 그 기간 동안 레이 블리스(Ray Bliss 1907~1981)라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오하이오 출신 공화당원이 전국위 의장을 맡았다. 그는 침체한 공화당을 결집해서 1968년 대선에서 리차드 닉슨(1913~1994)이 승리하는 기반을 쌓았다. 특히 그의 고향으로 전통적으로 경합 주(swing state)인 오하이오가 근소한 차이로 닉슨을 지지하는데 기여해서 치열했던 선거를 공화당의 승리로 이끌었다. 대선 후 블리스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닉슨은 자신의 1기 임기 동안 로저스 모턴 하원의원과 밥 돌 상원의원을 전국위 의장으로 연이어서 지명했다. 로저스 모턴(Rogers Morton 1914~1979)은 그 후 내무장관과 상무장관을 지냈다. 밥 돌(Bob Dole 1923~2021)은 1976년 대선 때 공화당 후보 포드 대통령의 러닝메이트였고, 1996년 대선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클린턴 대통령에게 패배했다.

1972년 재선에 성공한 닉슨은 내각을 개편했는데, 유엔 주재 대사이던 조지 H. W. 부시(1924~2018)를 공화당 전국위원회 의장으로 지명했다. 2년 동안 유엔 주재 대사를 하면서 제3세계 국가 대표들과 싸우는데 지친 부시는 각료 자리를 원했지만 마땅한 데가 없었다. 유엔 주재 대사로 나가기 전에 하원의원을 4년 동안 한 것이 정치 경력의 전부인 부시는 전국위 의장을 지내면서 전국 각 지역의 공화당 인사들을 두루두루 만나고 여러 곳을 방문했다. (1970년 상원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부시를 닉슨이 이렇게 챙겨 준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1980년 대선을 앞둔 공화당 프라이머리에서 부시는 로널드 레이건(1911~2004) 다음으로 지지를 많이 얻어서 부통령이 되는 행운을 잡았다. 당시 부시가 하워드 베이커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밥 돌 상원의원, 존 코널리 전 재무장관 등 비중 있는 후보들을 젖히고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1등을 하고 계속 선전해서 2위를 차지한데는 전국위 의장으로서 쌓은 인맥이 도움이 됐다. 부시는 포드 행정부에서 중국 주재 대표부 대사와 CIA 국장을 지냈다.
1988년 대선에서 승리한 조지 H. W. 부시는 자신의 선거운동을 일선에서 지휘한 리 앳워터(Lee Atwater 1951~1991)를 공화당 전국위 의장으로 지명했다. 37세 나이에 선출직 경험이 없는 선거 전략가인 앳워터를 전국위 의장으로 임명한 것은 파격적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4년 후 있을 선거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리 앳워터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성장했고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으로 석사학위를 했다 일찍부터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와 상원의원 선거에 공화당 후보 캠프에서 활약했는데, 상대방의 약점을 파고들어서 선전(宣傳)하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었고, 덕분에 그가 지원한 후보는 모두 당선됐다.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서자 백악관 정무비서관실 스태프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고, 1984년에 레이건 대통령이 재선에 나설 때 선거본부에서 활약했다. 백악관에 있으면서 부시 부통령과 알게 됐고, 1988년 대선을 앞두고 부시는 앳워터가 캠패인을 총괄하도록 했다. 민주당 후보로는 앨 고어 상원의원을 누르고 마이클 두카키스(Michael Dukakis 1933~)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선출됐는데, 초기에는 부시가 두카키스에게 두자리 숫자로 뒤지는 여론조사가 나와서 부시 측은 긴장했다.

앳워터는 두카키스가 중범죄인의 귀휴(歸休)를 금지하는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으며 당시 한 살인범에게 주말 귀휴가 허용돼서 물의를 일으켰음에 착안해서 두카키스가 대통령이 되면 살인 강간범이 거리에 활보하게 될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광고를 했다. 또한 두카키스의 부인이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에 참여했다는 등 루머를 확산시키는데 성공했다. 이런 네거티브 캠패인 덕분에 두카키스의 지지도는 곤두박질했고 다시는 부시를 따라잡지 못했다. 부시 부부는 선거운동의 귀재(鬼才)인 앳워터를 자식처럼 생각했고, 대통령에 당선된 부시는 앳워터를 공화당 전국위 의장에 임명했다.

공화당 전국위 의장이 된 앳워터는 부시의 정치 참모 역할을 했고 1992년 대선을 준비 했다. 당시는 뉴저지 출신 상원의원 빌 브래들리(Bill Bradley 1943~)와 테네시 출신 상원의원 앨 고어(Al Gore 1948~)를 유력한 민주당 대선후보로 보았지만 앳워터는 일찍부터 빌 클린턴(Bill Clinton 1946~)이 1992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과연 전국위 의장이 대통령의 정치 참모 역할을 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의문이었다.

1990년 봄, 앳워터는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여러 가지 치료를 했지만 결국에는 병세가 악화되어서 1991년 봄에 40세 나이로 사망했다. 당시는 걸프 전쟁 승리로 부시의 인기가 절정에 달해 있을 때였다. 죽음을 앞두고 앳워터는 천주교에 귀의했고, 자신이 인신공격을 동원해서 싸웠던 두카키스 등 상대방들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비는 편지를 보냈다. 만일에 앳워터가 죽지 않았더라면 1992년 대선의 양상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부시 대통령은 앳워터가 죽은 후 자신의 선거운동을 치열하게 이끌어갈 사람을 찾지 못했다. 1992년 대선에서 부시는 대통령 선거 역사상 가장 맥없고 싱거운 선거운동을 했다고 평가된다. 부시의 백악관에는 안보 외교 경제 등 정책 분야 참모는 넘쳤지만 정작 선거를 준비할 만한 정치 참모가 없었다.

사진 : (1) 1988년 초 대선 캠페인에 나선 부시 부통령. 옆이 리 앳워터 (2) 대통령 당선 후인 1989년 초 앳워터의 친구들이 운영하는 재즈 바에서 기분이 좋은 부시가 앳워터와 함께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앳워터는 기타가 프로급이었다고 한다. 두 사람 사이를 잘 보여주는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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