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리차드 헬름스 (3)

작성일 : 2022-09-18 11:40조회 : 763

리차드 헬름스 (3)

1973년 초, 닉슨 대통령은 원자력위원회 위원장이던 제임스 슐레진저(James Schlesinger 1929~2014)를 CIA 국장으로 임명했다. 하버드에서 경제학박사를 하고 버지니아 대학 교수를 지내던 슐레진저는 닉슨에 의해 원자력위원회 위원장이 된 후 불과 1년 반 만에 CIA 국장이 됐다. 하지만 이듬해 3월 워터게이트 사건이 확대됨에 따라 밥 홀드먼 비서실장과 존 얼릭먼 보좌관, 그리고 리차드 클라인딘스트 법무장관이 사임하자 닉슨 대통령은 국방장관이던 엘리옷 리차드슨(Elliot Richardson 1920~1999)을 법무장관에 임명하고 공석이 된 국방장관에 제임스 슐레진저를 임명했다. 따라서 슐레진저는 불과 5개월 동안 CIA 국장으로 있었는데 그 기간 동안 직원을 감축해서 내부에서 불만이 많았다.

닉슨은 슐레진저의 후임으로 윌리엄 콜비(William Colby 1920~1996) CIA 부국장을 신임 국장으로 임명했다. 콜비는 워터게이트 파문이 최고조에 달했던 1973년 9월에 CIA 국장에 취임했다. 프린스턴 대학을 나온 콜비는 2차 대전 중 육군에 입대해서 OSS 대원으로 독일 점령하의 프랑스에 낙하해서 레지스탕스와 협력하는 위험한 임무를 두 차례나 수행해서 무공훈장을 받았다. 전후에 컬럼비아 로스쿨을 나왔으나 변호사 생활에 무료함을 느끼고 CIA에 들어가서 해외 공작 파트에서 일했다. 리차드 헬름스의 부친은 대기업 임원이었지만 콜비의 부친은 컬럼비아 대학 교수였다. 그런 영향으로 콜비는 사회 문제에 대해 진보적 성향을 가졌다.

CIA 본부에서 주로 근무한 헬름스와 달리 콜비는 현장 근무를 많이 했다. 두 차례 사이공 지부에서 일했는데 당시 CIA는 특수부대와 함께 공산계열 베트남인을 암살하는 작전을 진행했다. 1971년부터는 콜비는 헬름스 국장 아래에서 부국장으로 있다가 국장이 됐다. 콜비가 국장이 되고 한 달 만에 4차 중동전쟁(Yom Kippur War)이 발발해서 미군은 비상경계령을 발동하는 등 긴장이 감돌았다. 그러나 CIA는 이집트가 이스라엘을 침공할 것으로 예측하지 못하는 정보 실패를 겪었다. 콜비는 닉슨 대통령이 사임하고 의회의 목소리가 커지는 당시 분위기를 반영해서 CIA의 조직 문화를 보다 개방적으로 바꾸려고 노력했다.

1974년 말 뉴욕타임스 등 몇몇 언론은 CIA가 미국 민간인을 사찰했으며 해외에서 암살 작전을 진행했다고 폭로했다. 상원은 CIA 활동을 조사하는 특별위원회 구성을 결의했고 프랭크 처치 상원의원이 위원장을 맡았다. 이렇게 구성된 처치 위원회(The Church Committee)는 1975년 한 해 동안 전·현직 CIA 국장을 위시한 많은 증인들을 소환해서 청문회를 열었고 이듬해에 수천 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청문회 과정에서 1973년 가을 칠레에서 발생한 군부 쿠데타에 CIA가 간여했음이 드러났고, 그에 앞선 1970년 칠레 대선에서 CIA가 우파 후보를 지원했음이 밝혀졌다. 의회 청문회에서 콜비 국장은 CIA의 민간인 사찰과 베트남에서의 암살 작전을 시인하고 그것이 잘못됐다고 솔직하게 시인했다. 또한 그는 의회의 자료 제출 요구에 응해서 비밀로 분류됐던 많은 자료가 공개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콜비 국장의 이 같은 솔직한 자세를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과 포드 대통령은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1975년 11월 4일, 포드 대통령은 백악관 비서실과 안보 관련 각료를 전격적으로 교체했다. 독단적인 결정으로 포드 대통령 및 키신저 장관과 불화했던 제임스 슐레진저 국방장관이 경질되고 도널드 럼스펠드 비서실장이 국방장관이 됐다. 윌리엄 콜비 CIA 국장도 해임되고 조지 H. W. 부시가 후임 국장으로 임명됐다. 콜비는 1976년 1월 말에 퇴임하고 그 후 변호사 업무를 하면서 회고록을 펴냈다. 그는 1996년 4월 주말 별장 근처의 샛강에서 카누를 타다가 사고를 당해 익사했다.

한편 상원 청문회를 통해서 1970년 칠레 대선에서 CIA가 우파 후보를 지원했음이 밝혀짐에 따라 리차드 헬름스가 1973년 초 대사 인준청문회에서 한 발언이 위증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렇게 해서 카터 행정부의 법무부가 전직 CIA 국장의 의회 증언에 대한 기소 여부를 검토하게 됐다. 그리핀 벨 법무장관은 헬름스를 기소하는데 반대했으나 카터 대통령은 정부 고위직이 거짓말을 해서 안 된다는 것이 새 정부의 철학이라면서 기소를 고집했다. 곤란해 진 법무부는 헬름스의 변호사에게 유죄를 인정하면 벌금형과 집행유예로 하고 CIA 연금은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자고 제의했다. 헬름스는 법무부의 기소 내용을 다투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동의했다.

1977년 11월 4일, 연방법원에서 법무차관 벤자민 시빌리티는 법무부는 헬름스에 대한 상징적 유죄판결이면 만족한다고 진술했다. 이렇게 해서 헬름스는 2000 달러 벌금과 징역 2년 집행유예 판결을 수용하고 법정을 나섰다. 헬름스는 워싱턴 근교에 있는 한 칸트리 클럽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CIA 퇴직자 모임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수백 명이 모여서 헬름스를 환영했다. 누군가가 헬름스의 벌금을 모으자고 제안하고 모자를 돌리자 벌금 2000 달러의 몇 배가 되는 돈이 금방 모였다.

1979년 1월, 이란 국왕 샤는 이란을 떠났고, 2월 1일, 파리에서 망명 중이던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이란으로 귀국했다. 그 해 11월 호메이니는 자신이 이란의 최고지도자임을 선포했고 테헤란에 있는 미국 대사관이 이슬람 폭도들에게 유린되고 대사관 직원 52명이 인질로 잡혔다. 이란의 전략적 가치를 이해하지 못한 카터의 멍청한 외교가 처참하게 몰락한 것이다. 카터는 이란 대사관 인질 사태와 소련군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속수무책이었다. 1980년 대선에서 미국인들은 무능한 카터 정권에 대해 준엄한 심판을 내렸다. 대선과 함께 치러진 선거에서 CIA의 활동에 관한 청문회를 주도했던 프랑크 처치(Frank Church III 1924~1984) 상원의원은 공화당 후보에게 패배했다. 전·현직 CIA 직원들은 카터와 처치의 낙선에 환호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자신의 선거운동을 지휘한 윌리엄 케이시(William Casey 1913~1987)를 CIA 국장으로 임명했다. 가톨릭 대학과 세인트 존 로스쿨을 나오고 변호사를 하던 케이시는 2차 대전이 발발하자 해군에 입대해서 OSS 대원으로 유럽에서 활약했고 훈장을 받았다. 헬름스가 해군 중위로 스위스의 OSS 지부에 근무할 때 그는 해군 대위였던 케이시를 만난 적이 있었다. 전쟁 후 케이시는 로펌과 금융관련 공직을 맡았는데, 레이건의 선거운동을 지휘한 후에 CIA 국장이 되어 금의환향(錦衣還鄕)했다.

1983년 8월, 레이건 대통령은 리차드 헬름스에게 국가안보메달(National Security Medal)을 수여했다. 헬름스는 회고록 서문에서 아마도 CIA 국장을 지낸 조지 H. W. 부시 부통령이 자기에게 메달을 수여하도록 했을 것 같다고 썼다. 백악관에서 메달을 수여받고 나서 며칠이 지나서 헬름스는 닉슨으로부터 축하한다는 편지를 받았다. 헬름스는 캠프 데이비드에서 닉슨과 악수를 하고 헤어진 후 10년이 지나서 닉슨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것이다. 닉슨은 이 편지에서 “1970년대 중반에 CIA를 무력화하려던 시도는 국가적 재앙이었다”고 언급했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화해를 한 셈이다.

헬름스는 그 후 워싱턴에서 살면서 소설을 몇 편 썼고 결국에는 회고록을 집필했다. 헨리 키신저가 긴 서문을 쓴 회고록(<A Look over My Shoulder> 2003년)에서 헬름스는 CIA 활동을 조사한 의회 청문회에서 나온 많은 기록과 증언은 결국 KGB를 이롭게 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헬름스는 자신의 회고록 출간을 보지 못하고 2002년 10월 89세로 눈을 감았다.

-사진 (1) 상원에서 증인 선서를 하는 윌리엄 콜비 CIA 국장. 1975년 (2) 백악관에서 헬름스에 대한 메달 수여식. 레이건 대통령, 리차드 헬름스 그리고 부시 부통령. 198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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