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영국 1990년대

작성일 : 2022-09-22 00:14조회 : 713

영국 1990년대

영국 여왕 서거를 계기로 1990년대에 있었던 영국과 관련된 기억을 되살려 보고자 한다. 1990년대 초부터 자동차 수리하는 카센터에서 영국 국기가 그려있는 쿠션(사진 참조)을 팔았는데, 그게 인기가 좋아서 너나없이 자동차에 한두 개는 넣고 다녔다. 그 모습을 본 미국 사람이 한국에 여왕이 다녀갔냐고 물어 볼 정도였다. 그 유행은 21세기 들어서 사라진 것으로 기억된다. 어떻게 해서 그런 유행이 불었는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1992년 11월과 12월에 미국과 우리나라에선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재정도 흑자였고, 무역수지는 흑자가 너무 커서 걱정을 했고,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이 막바지일 때였다. 당선이 확실했던 김영삼 후보는 “경제를 살리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는데, 당시 우리 경제는 살릴 필요도 없이 좋았다. 나는 이듬해 정교수가 될 예정이어서 모든 것이 낙관적이었다.

우리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으나 영국은 그 해 가을 심각한 외환위기를 겪었다. 1992년 9월, 보수당 정부가 환율방어를 해서 고(高)평가 돼있던 파운드(貨)를 조지 소로스 등 헤지펀드 투기꾼들이 고점에서 투매하자 파운드화는 폭락했고 이들은 폭락한 파운드화를 헐값에 다시 사서 막대한 차액을 챙겼다. (사진 도표 참조. 1 파운드가 2달러를 넘자 일제히 투매를 해서 1주일 만에 1파운드를 1.70 달러로 떨어뜨렸다.) 소로스 등은 이태리 리라화(貨)도 공략해서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실물경제에 어두운 나는 그런 것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몰랐지만, 약간의 혜택은 누렸다.

1993~94년에 백화점에서 양복을 살 때였다. 점원이 영국제와 이태리제 복지로 만든 양복을 권했다. 가격은 국산 복지로 만든 양복 보다 약간 비쌌으나 품질은 비교가 되지 않게 좋았다. 폭락한 파운드화와 리라화 덕분이었다. (내 생각에 제일모직이 영국제나 이태리제 양복지 수준이 된 것은 2000년대 들어서 인 것 같다.) 그리고 영국 관광 붐이 불었다. 영국항공(BA)이 런던-서울 직항을 열어서 B747이 한국 관광객으로 꽉꽉 들어찼다. 당시 우리나라 환율은 1 달러가 900원대였고 파운드화가 폭락했으니 영국 관광을 할 만 했다.

나는 1995년 여름에 영국 정부 기관 몇 군데를 방문할 일이 있고 해서 가족 동반으로 영국을 여행했는데, 런던의 호텔비만 제외하면 모든 것이 쌌다. 런던의 버버리 숍에는 한국 여행객들이 모여서 “싸다, 싸다”하고 버버리 셔츠 등을 사들여서 영국인 점원도 덩달아서 한국어로 “싸다, 싸다”고 할 정도였다. 나는 그 때 무엇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해 연말 우리나라는 OECD에 가입해서 선진국이 됐는데, 2년 후 외환위기가 발생하고 말았다.

영국은 메이저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 정부가 파운드화(貨) 고(高)평가를 고집하다가 조지 소로스 같은 환(換)투기꾼에게 당해서 외환위기를 맞았는데,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명쾌한 답이 없는 것 같다. 요즘 출렁이는 환율은 역외 투기 세력과는 관련이 없는지, 그것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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