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프레드 버즈하트 · 알렉산더 헤이그

작성일 : 2022-09-25 09:51조회 : 857

프레드 버즈하트 · 알렉산더 헤이그

대통령을 선출할 때 사람들은 “정직한 바보(honest boob) 또는 유능한 악당(competent scoundrel) 중 하나를 고르게 된다”는 말을 남긴 사람이 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위기에 처한 백악관에 소방수로 투입됐던 프레드 버즈하트(J. Fred Buzhardt 1924~1978) 변호사이다. 기자와 인터뷰 과정에서 나온 이 말은 닉슨 대통령을 ‘유능한 악당’, 그리고 닉슨에 이어 대통령이 된 제럴드 포드를 ‘정직한 바보’라고 평한 것 같아서 화제가 됐다. 버즈하트는 당시 백악관 비서실장이던 알렉산더 헤이그와 함께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로 무너져가는 1년 반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1973년 새해 들어서 민주당과 언론은 워터게이트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상원은 2월 초에 조사위원회를 구성해서 본격적인 조사와 청문회를 시작했다. 닉슨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보좌진이 의혹 대상으로 부각됨에 따라 닉슨은 4월 30일자로 밥 홀드먼 비서실장과 존 얼릭먼 국내담당 보좌관의 사임을 발표하고 존 딘 법률비서관을 해임했다. 이런 상황에서 백악관 참모를 새로 구성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결국 안보 부(副)보좌관을 지내면서 닉슨과 백악관을 잘 아는 알렉산더 헤이그(Alexander Haig 1924~2010) 육군참모차장을 비서실장으로 기용했다. 헤이그는 육군참모차장으로 나간 후 불과 넉 달 만에 다시 백악관으로 돌아왔다.

닉슨은 국방장관을 4년간 지내고 고향 위스콘신으로 돌아간 멜빈 레어드(Melvin Laird 1922~2016)를 국내담당 보좌관에 임명했다. 레어드는 원치 않았으나 친구인 제럴드 포드 하원 원내대표가 권해서 할 수 없이 다시 워싱턴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워터게이트 사건과 관련해서 의회와 법원을 상대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헤이그 신임 비서실장이 국방장관 법률보좌관이던 프레드 버즈하트를 추천해서 버즈하트는 백악관으로 소속을 옮기게 됐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인 프레드 버즈하트는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고 조종사를 잠시 했으나 신체 적성이 맞지 않아서 전역하고 고향에서 로스쿨을 다녔다. (버즈하트는 헤이그 보다 웨스트포인트 1년 선배이다.) 변호사를 하면서 공화당 활동을 했고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 스트롬 서몬드(Strom Thurmond 1902~2003) 상원의원의 보좌관을 오래 지냈다. 1968년 대선 때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 닉슨을 지지하는 운동을 주도해서 닉슨이 당선되는데 기여했다. 평판이 좋은 그는 레어드 국방장관에 의해 국방부 법률고문으로 발탁됐는데, 이제 백악관에서 워터게이트 문제를 담당하게 됐다.

상원 청문회가 시작됐을 뿐 더러 5월말에는 특별검사가 임명되어 수사에 나섰다. 백악관 법률비서관이던 존 딘(John Dean 1938~)이 자신에 대한 법적 책임을 경감해 주는 조건으로 청문회에 나와서 닉슨이 은폐를 지시했다고 진술해서 파문을 일으켰다. 이어서 백악관에 비밀녹음장치가 있다는 증언이 나오는 등 워터게이트는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닉슨을 지지한 남부 공화당원답게 워터게이트 사건은 백악관 참모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한 버즈하트는 상원 조사위원회와 특별검사, 그리고 워터게이트 빌딩 침입자들을 다루는 존 시리카 판사를 힘들게 상대해야 했다.

상원과 특별검사 그리고 법원이 모두 녹음 테이프 제출을 요구했으나 닉슨은 대통령 특권을 내세워서 거부해서 그 문제가 결국 연방법원으로 가게 됐다. 버즈하트는 녹음 테이프를 가져와서 사무실에서 수백 시간에 걸쳐서 들어보았는데, 그런 과정에서 닉슨이 사건 은폐를 지시하는 등 처음부터 간여했음을 알게 됐다. 더구나 닉슨은 툭하면 사람을 비난하고 심한 욕을 해서 그런 적나라한 대화가 담긴 테이프를 듣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버즈하트는 환멸을 느꼈을 뿐 아니라 과연 닉슨을 방어할 수 있겠는가 하는 회의에 빠져버렸다.

1973년 10월 20일, 닉슨이 특별검사 아치볼드 콕스를 파면하자 민주당은 탄핵을 거론하기 시작했고 타임지 등 몇몇 언론은 사임을 요구하는 사설을 내보냈다. 이런 심각한 국면을 맞아 버즈하트는 웨스트포인트 동문이기도 한 헤이그 비서실장과 자주 만나서 의논을 했다. 버즈하트가 닉슨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방어하기가 어렵다고 이야기하자 닉슨은 화를 내기도 했다. 버즈하트는 헤이그 실장에게 닉슨을 방어하기 어려우며 닉슨을 방어하려다간 자신과 헤이그 실장이 함께 사법방해죄(obstruction of justice)를 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헤이그는 이런 경고를 무겁게 받아드렸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하버드 로스쿨을 나온 보스턴의 유명한 형사재판 변호사 제임스 세인트 클레어(James St. Clair 1920~2001)를 닉슨의 법정 대리인으로 선임하도록 해서 재판 등 워터게이트 문제는 세인트 클레어 변호사가 맡도록 했다. 닉슨을 방어하는 임무에서 벗어난 버즈하트는 헤이그 비서실장과 함께 난파선 같은 백악관을 끌고 갔다. 버즈하트는 일찌기 헤이그 실장에게 닉슨이 결국 사임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거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헤이그 비서실장은 닉슨이 사임하지 않으면 결국 탄핵이 될 것으로 보고 배리 골드워터 등 공화당 중진 의원들과 협의해서 닉슨이 사임하도록 이끌어 갔다. 하원 법사위가 탄핵을 결의하자 닉슨은 헤이그 실장에게 상원에서 자기를 지지할 의원이 몇 명이나 되느냐고 물었고 헤이그는 몇 명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러자 닉슨은 혼자 장고(長考)에 들어갔고, 두 딸과 사위들을 백악관으로 불러드린 후 자신의 결정을 알리고 TV에서 사임을 밝힌 후 가족과 백악관 직원들 앞에서 고별사를 했다. 그리고 다음날 8월 9일 닉슨은 가족과 함께 백악관을 떠났다.

닉슨이 사임함에 따라 버즈하트는 고향 사우스캐롤라이나로 돌아갔다. 정치를 벗어버린 그는 작은 도시에서 변호사를 했고, 이따금 인터뷰를 했다. 그는 밥 우드워드가 닉슨이 사임하기까지의 마지막을 그린 <The Final Days>를 펴내는데 도움을 주었다. 버즈하트는 1973년 5월부터 1974년 8월이 닉슨이 사임하기까지 닉슨과 가까이 있으면서 지켜 본 목격자였다. 백악관에서 있을 때 하루에 14~15 시간씩 일하는 과정에서 건강을 해친 그는 1978년 12월 54세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The Final Days>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버즈하트와 함께 1년 반 동안 난파선 같은 닉슨 백악관의 마지막을 이끌었던 헤이그는 9월 21일까지 포드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정권 이양을 도왔다. 그 기간 동안 헤이그는 포드 대통령에게 닉슨을 조속히 사면하라고 촉구했다. 그것은 헤이그가 닉슨과 사임을 논의할 때 약속했던 바이기도 했다. 9월 4일, 포드 대통령은 닉슨을 사면했다. 포드는 편제상으로 현역 대장인 헤이그를 나토군 사령관 겸 유럽 주둔 미군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헤이그는 5년 동안 그 자리에 있다가 전역을 하고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국무장관으로 임명돼서 1년 반 동안 근무했다.

헤이그는 대대장으로 베트남 근무를 마친 후 키신저 안보보좌관에 의해 군사문제 보좌관으로 발탁된 후 준장으로 진급했고, 안보 부(副)보좌관으로 승진하면서 소장으로 승진하고, 참모차장이 되면서 대장으로 승진했다. 헤이그는 닉슨에 대한 사면을 이루어서 자신을 발탁해 준 닉슨에 대해 보답을 한 셈이다.

사진 (1):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제임스 세인트 클레어 변호사(왼쪽)과 프레드 버즈하트(오른쪽) 1974년 초.
사진 (2): 닉슨 대통령이 대장으로 승진해서 육군참모차장이 되어 백악관을 떠나는 알렉산더 헤이그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모습. 1973년 1월 4일. 재선에 성공하고 파리 평화회의 타결을 앞둔 닉슨은 기분이 좋았다. 왼쪽부터 로저스 국무장관, 키신저 안보보좌관, 레어드 국방장관. 헤이그는 이 날 소장에서 중장을 건너뛰고 대장으로 진급했다. 장성 240명을 건너뛴 초고속 승진이었다.

참고 : 사법방해죄(obstruction of justice)는 검찰의 수사 및 정부의 사법적 조사 기능을 저해하거나 방해하는 은폐, 방해 또는 이것을 모의하는 행위를 의미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이런 범죄가 없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선 수사를 앞두고 입을 맞추어도, 또 관계자들에게 해외로 도망가라고 지시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닉슨이 워터게이트를 은폐하려고 한 행위, 대배심 수사에 앞서 허위증언을 교사하거나 증거를 조작한 행위 등 많은 행위가 사법방해죄를 구성한다. 트럼프 행정부 법무차관, 차관보 등이 백악관의 부당한 지시를 따르기 보다는 사직을 한 것도 그렇게 수사에 간여하면 사법방해죄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사법방해죄가 있다면 정치인들과 고위공직자들이 어떻게 될지는 짐작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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