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명동 1970년대

작성일 : 2022-11-10 23:38조회 : 752

명동 1970년대

우리 세대가 대학 초년생이던 1970년대 초에는 명동과 무교동이 대학생들이 저녁에 한잔하던 장소였다. 무교동이 막걸리라면 명동은 생맥주였는데, 당시 명동의 유명한 생맥주집은 카이저호프·뢰벤브로이였다. 을지로 입구 외환은행 본점 건물 옆 골목 초입에 정면에 보이는 건물(아래 사진) 2/3층에 카이저호프·뢰벤브로이가 있었다. 나는 그래서 지금도 을지로 입구나 명동을 가게 되면 그 쪽을 일부러 지나가곤 한다. 당시 명동은 젊은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었지만 근래에는 중국인 상대로 장사를 해서 지나가기도 싫던 거리였다가, 중국인들이 빠져버린 데다 코로나 사태까지 겹쳐서 상권이 죽어 버린 모습이다.

우리는 고등학교에서 독일어를 배웠고 서울대 입시는 550점 만점에 독일어가 50점이었다. 당시 경기고에는 전광진 선생님이 독일어를 가르치셨는데, 고등학교 3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그리고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었다. 우리가 고교를 졸업하고 나서 전북대 독문과 교수로 가셨는데, 그 후 뵙지는 못했고 최근에 작고하셨다. (MBC의 전 아무개 기자가 선생님의 아들이다.) 그 시절 독일이 낭만적으로 비친 데는 두 권의 책의 영향도 컸다.

그 시절 베스트셀러였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그러한데, 우리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읽었다. 또 다른 책은 31세 젊은 나이에 요절한 전혜린(田惠麟)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였다. 특히 전혜린의 책에 나오는 뮌헨의 슈바빙 거리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전혜린은 서울 법대에 입학했다가 독문학으로 전과하고 독일에 유학을 해서 우리한데는 대학 선배이기도 하고, 또 얼마 전에 작고하신 헌법학자 김철수 교수님의 첫 부인이어서 당시 서울 법대생으로 그 책을 안 읽은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명동의 카이저호프·뢰벤브로이는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독일식 생맥주를 표방했고 상호도 그럴싸하게 독일어로 내걸었는데, 대학 1~2학년 시절에 친구들과 함께 종종 들렀다. 그러면서 우리는 전혜린의 책에 나오는 뮌헨의 생맥주를 연상하곤 했다. 그 건물 1층에 <OB's Cabin>이란 경양식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어둡고 고요한 분위기로, 위층 생맥주집과는 분위기가 다른 곳이었다. 대학 3학년부터 대학원 시절에는 공부하느냐고 명동에 나가는 여유는 없었고, 이어서 군 복무와 미국 유학으로 명동은 먼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카이저호프·뢰벤브로이를 경영하던 주인은 월남이 공산화되던 70년대 중반에 사업을 접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고 전해 들었고, <OB's Cabin>은 명동 다른 곳에서 이전해서 영업을 하다가 닫은 것으로 알고 있다.

외환은행 본점 건너편에는 1980년대에 반미 학생들에 의해 점거되어서 유명해진 미국 문화원이 있었다. 대학원을 다니던 1974~75년에 나는 미국 문화원 도서실을 자주 들렀는데, 교보빌딩 자리의 나지막한 건물 1층에 있었다. 그 건물이 교보빌딩 건축으로 없어져서 반미 시위대가 점거했던 을지로 대로변 건물 2층으로 이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드나들었던 미국 문화원 도서실에는 미국 역사, 헌법, 정치에 관한 책이 많았고 학생증만 있으면 대출도 제한 없이 해 주었다. 하지만 거기에 있었던 책은 대체로 기초적 성격이어서 석사학위 논문에 필요했던 책은 외국서적 수입회사에 주문을 해서 구입해야만 했다.

- 사진 : 1970년대 초 카이저호프가 있었던 건물의 지금 모습. 나무로 가려진 건너편에는 우아한 다방이 있었다. 지금은 주변에 삼계탕과 곱창 식당이 있으니 이 부근은 1970년대 초가 오히려 ‘모던’했다고 할까.. 오래된 앨범을 정리하다보니 1971년 봄에 이 건물 입구에서 찍은 사진이 한 장 있는데, 친구들과 같이 찍은 것이라서 공개할 수는 없다. 그 중 한 명은 증권회사와 금융회사 대표를 지냈고 다른 한 명(여학생)은 서울의 어느 대학 교수를 지냈고, 또 다른 한 명(여학생)은 카이저호프 주인의 처제로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고 들었다.

이전글캐슬린 블랑코 주지사

다음글핼러윈

리스트로

이상돈닷컴

이상돈

LEESANGDON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