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LEESANGDON

나라와 사회를 올바르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칼럼

닉슨이 남긴 유산(Legacy)
작성일 : 2022-11-22 19:09조회 : 105


닉슨이 남긴 유산(Legacy)


금년 초부터 서울신문에 4주일에 한번 씩 연재하는 <1970년대 미국>이 12번째 글을 앞두고 있다. 1968년 초 북베트남군의 구정 대공세(Tet Offensive)부터 시작해서 다음 번 원고는 워터게이트를 다루게 됐다. 1980년 대통령 선거로 1970년대가 마감되니까 13년 중 아직도 8년이 남았다. 장기 연재를 가능케 해준 서울신문에 감사드린다. 많은 역사적 사실을 작은 주제에 맞게 압축해서 스토리텔링을 하기는 쉽지 않다. 제한된 지면 때문에 한글자라도 줄여서 많은 내용을 담아야 하는 고충이 있지만, 그렇게 써야 단숨에 읽어 내려갈 수 있는 글이 된다. (지금까지 나온 글을 미처 읽지 못한 분은 아래 기사 리스트를 클릭.) 
https://www.seoul.co.kr/news/newsList.php?section=read1

1968년 초부터 1980년 말까지 ‘1970년대 미국’의 주역은 리차드 닉슨이다. 우리나라에선 닉슨이라고 하면 워터게이트로 물러나고 베이징에 가서 마오쩌뚱을 만난 사람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대통령을 물러난 닉슨 본인도 자신이 이루어 놓은 많은 일은 망각되고  단지 워터게이트와 베이징 방문만 남을 것 같다고 씁쓸하게 말한 바 있다. 물론 닉슨은 자신의 성격적 결함 때문에 자신을 파멸로 이끌어 갔다. 하지만 그가 남긴 유산(legacy)는 실로 막대하다.

1982년 미국 연방지방법원 해롤드 그린 판사는 AT&T의 분할(divestiture)을 내용으로 하는 조정명령을 내렸다. 이로서 미국 내 전화 사업을 사실상 독점해 오던 AT&T는 여러 회사로 분할됐고 통신시장은 자유경쟁체제로 개편됐다. 이 판결은 우리에게 영향을 미쳐서 1990년대 들어서 통신사업이 재편돼가는 계기가 됐다. AT&T를 상대로 한 반(反)독점소송은 1974년에 닉슨의 법무부가 제기했다. 1970년부터 법무부와 연방통신위원회는 AT&T의 시장 지배력에 대한 검토를 해왔고 법무부는 AT&T를 상대로 반독점법 위반으로 제소해서 8년간 소송 끝에 결정을 받아낸 것이다.

1978년 카터 대통령은 항공사업규제해제법(The Airline Deregulation Act)에 서명했다. 이로써 항공사 설립이 자유로워지고 항공사들은 신규 노선에 자유롭게 진입할 수 있게 됐다.  사우스웨스트 등 신규항공사들이 저가를 내걸고 활활 날아서 보통사람들도 항공여행을 하게 됐다. 우리나라에도 노스웨스트 외에 델타, 팬암, 브레니프가 줄줄이 취항해서 미국에 가는 항공료가 폭락했다. 항공사업 규제로 인한 폐해는 닉슨의 법무부가 연구를 시작했고 그것이 카터 행정부 들어서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닉슨은 오늘날 우리가 매일매일 환율을 들여다보게 만든 변동 환율제를 도입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존슨이 닉슨에게 넘겨 준 미국은 경제적으로 혼란스러운 나라였다. 2차 대전 후 만들어진 브레튼우즈 협정이 정한 금 태환제를 미국은 유지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1971년 8월, 닉슨은 비밀리에 존 코넬리, 아서 번스, 조지 슐츠, 폴 매크라켄, 폴 볼커 등 경제 각료와 참모를 캠프 데이비드로 불러서 이 문제를 논의했다. 아서 번스와 조지 슐츠가 의견이 엇갈리는 등 논쟁은 치열했다. 모든 토론을 듣고 난 닉슨은 금 태환제를 탈피하자고 결정했다. 이로서 고정환율제 시대는 막을 내리고 환율이 시장에 의해 결정되는 시대가 열렸다. 이것은 닉슨의 결단이었고, 충격을 받은 일본인들은 1971년 8월 15일의 이 조치를 ‘닉슨 쇼크’라고 불렀다. 오직 준비된 대통령만이 그런 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존슨 대통령이 도입한 ‘위대한 사회’ 복지 프로그램은 긍정적인 효과도 가져왔지만 근로의식의 저하와 대도시 도심의 슬럼화 등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했다. 복지개혁은 클린턴 행정부 들어서 비로소 이루어졌는데, 복지수당 지급에 시한을 정하고 구직 노력을 조건으로 부가한 것이었다. 이 구상은 닉슨 백악관의 패트릭 모이니핸(나중에 유엔 주재 대사와 상원의원을 지냄)과 조지 슐츠 노동장관(나중에 재무장관과 국무장관을 지냄)이 제안했던 복지개혁안에 기초한 것이었다.

존슨 대통령은 빈곤자와 노령자에 대한 건강보험을 도입해서 그 외 일반국민에 대한 건강보험은 다음 정부의 과제로 남겼다. 닉슨 행정부의 엘리옷 리차드슨 보건교육복지장관(나중에 법무장관과 상무장관을 지냄)은 건강보험을 일반국민에 확대하는 방안을 만들었으나 그가 국방장관을 맡아서 보건교육복지부를 떠나고 난 후 경기침체와 워터게이트로 인해 그 구상은 실종돼버렸다. 하지만 리차드슨 장관의 구상은 오바마 대통령이 도입한 ‘오바마 케어’의 토대가 됐다.
 
닉슨은 미국의 정치와 외교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미국 남부가 공화당의 텃밭으로 변화하게 된 계기는 닉슨의 ‘남부 전략’이었다. 닉슨과 키신저가 추구한 대(對)중국 정책과 소련과의 데땅트 정책은 1970~80년대 미국 외교에 큰 영향을 미쳤고 또 반(反)작용을 가져왔다. 1978년 캠프데이비드에서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메나쳄 베긴 이스라엘 총리가 카터 대통령을 만나서 평화협정을 체결해서 노벨 평화상을 탔는데, 1973년 10월 4차 중동전쟁 후 이집트를 소련의 영향력에서 이탈시켜서 5년 후의 평화협정이 가능하도록 지정학 구도를 변화시킨 사람은 닉슨과 헨리 키신저였다. 

닉슨은 1980년대 공화당 정권의 주인공들을 키운 장본인이기도 하다. 닉슨이 각료로 발탁한 조지 슐츠와 캐스파 와인버거는 레이건 행정부에서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을 오래 지냈고,  닉슨이 재무차관으로 발탁한 폴 볼커는 연방제도위(Fed) 이사장이 되어 1980년대 초 고금리 정책을 밀고 나가서 인플레이션을 잠재우고 미국 경제를 부활시켰다. 닉슨은 1970년  상원의원 선거에서 패배한 조지 H. W. 부시를 유엔 주재 대사와 공화당 전국위 의장으로 발탁해서 부시가 나중에 부통령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1970년대 미국은 1960년대의 혼돈이 1980년대의 안정으로 옮겨가는 변화의 10년이었다. 그런  격동의 세월 1970년대 미국의 주역은 닉슨이었음을  좋든 싫든 부정할 수는 없다.

다음글MBC 민영화 ?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