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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낸시 레이건과 심장병 어린이
작성일 : 2022-11-26 21:19조회 : 134


낸시 레이건과 심장병 어린이


1983년 11월 12~14일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그 해 9월 1일 대한항공 007편이 소련 전투기에 의해 격추됐고, 10월 9일에는 아웅산에서 북한 공작원들이 폭탄 테러를 감행해서 이범석 외무장관, 김재익 경제수석 등 우리 정부 요인들이 무참하게 죽었다. 이런 상황이 있은 후 레이건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기 때문에 그것은 북한과 소련에 대해 미국이 한국을 지킬 의지가 확실함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레이건은 그 때 미 2사단 DMZ 초소를 방문해서 북한 쪽을 보는 사진을 찍었다.

당시 레이건의 한국 방문은 삼엄한 경계 속에서 이루어 졌다. 옥외 행사는 전혀 없었고 레이건은 2사단 영내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레이건은 일기에 DMZ에서 있었던 일을 이렇게 적었다. “(DMZ 초소에서) 남쪽을 보니까 병원 응급차와 병원 헬기가 대기하고 있어서 마치 야전 병원을 옮겨 놓은 것 같았다.” 항상 유머가 넘치는 레이건 다운 표현이었다.

당시 레이건 대통령과 함께 한국을 방문한 낸시 여사는 심장병 수술을 요하는 입양 대기 아이 둘을 대통령 전용기(Air Force One)에 태우고 귀국길에 올랐다. 당시 잠시 미담처럼 뉴스에 나오고 잊혀진 이 일은 2016년 3월 6일, 낸시 여사가 94세로 사망하자 ABC 방송이 낸시 여사를 추모하는 기사를 내보면서 소개해서 다시 알려졌다.

레이건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는 계획이 알려지자 ‘Gift of Life'라는 자선단체와 한국에 머물던 한 미국 여성이 백악관에 편지를 썼다. 당시 한국에는 심장병 수술을 기다리는 아동이 900명이 있다면서, 레이건 대통령이 미국으로 돌아갈 때 몇 명을 데리고 가주기를 희망하는 편지였다. 이 편지가 낸시 여사에게 들어가서 낸시 여사는 심장수술이 필요한 아이 둘을 데리고 오도록 조치를 취했다. 한국에서 이 일을 맡았던 미국 여성은 해외 입양을 기다리고 있지만 심장 수술이 필요한 여자 아이(안지숙 7세)와 남자 아이(이길우 4세)를 택했거나, 또는 처음부터 이 두 아이의 딱한 사정을 알고 백악관에 편지를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서울 방문 중 낸시 여사는 두 아이를 보호하고 있던 기관에 가서 두 아이를 데리고 귀국길에 올랐다. 아래 사진 (2)는 당시 Air Force One에서 찍은 사진이다. 두 아이는 뉴욕 롱아일랜드의 병원에서 심장 수술을 마치고  애리조나에 있는 가정에 입양됐다. 두 아이는 이렇게 해서 다이애나(Diana Halvorson)와 브렛(Brett Halvorson)이 됐다. 두 아이가 한 가정에 입양이 되어서 이들은 서로 의지하면서 잘 자랐을 것이다. 그 후 세월이 흘러서 남자 아이 브렛은 보험회사에서 일하는 직장인이 됐다. 브렛은 자기가 어릴 때 낯선 아줌마에 이끌려서 비행기를 탔다는 것 밖에 기억하지 못했지만 나이가 들자 그 아줌마가 낸시 레이건 임을 알게 됐다.

2004~5년에 브렛은 레이건 기념도서관에 편지를 써서 낸시 여사를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했으나 2004년 여름에 레이건이 서거함에 따라 답신은 늦어졌다. 2007년 10월 27일 드디어 레이건 기념 도서관에서 낸시 여사와 브렛이 만날 수 있었다. (사진 1) 브렛은 자기 생명을 구해주고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열어 준 낸시 여사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브렛은 그 후 한국에 있는 친부모를 찾을 수 있었고 자신과 같은 아이들을 돕기 위해 자기에게 구원의 줄을 던져 주었던 ‘Gift of Life'에서 일을 했다. (2016년 현재)   

(1983년에 우리는 개도국이었지만 빈곤국가는 아니었다. 당시 우리나라 1인당 GNP는 2000 달러를 약간 넘었는데, 지금의 달러 가치로 환산하면 5000 달러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에도 아이들을 해외로 입양을 보내고 있었다. 또한, 1980년대 중반 들어 어린이 심장수술 돕기가 사회운동으로 번진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것이 낸시 여사의 방한과 관계가 있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

낸시 여사는 1983년 방한 당시에 있었던 이 일에 대해서 특별히 언급을 한 적이 없다. 최근에 나온 워싱턴포스트 캐런 투멀티 기자의 낸시 여사 전기에도 이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선행(善行)은 조용히 해야 하는 법이다.
https://abcnews.go.com/.../man-remembers-nancy.../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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