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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워터게이트
작성일 : 2022-11-29 21:04조회 : 61


워터게이트


워터게이트가 발생하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닉슨 대통령이 정부 비밀 누설에 대해 지나치게 과민 반응을 했으며, 공직 경험이 없는 젊은 변호사들이 백악관 정무 파트에서 설쳤기 때문이다. 닉슨과 원래 알았고 닉슨의 선거 운동을 총괄했던 밥 홀드먼은 비서실장이 됐고 그의 UCLA 친구인 존 얼릭먼은 내정 문제 수석보좌관이 됐다. 얼릭먼은 존 딘이란 젊은 변호사를 자기 아래에 일하는 법률비서관으로 기용했고, 닉슨의 선거 운동을 도왔던 찰스 콜슨은 브라운 대학 동문회에서 알게 된 하워드 헌트를 백악관으로 불러 들여서 특별조사팀을 만들었다. 존 딘은 자기가 알던 전직 FBI 요원을 백악관으로 불러들여서 특별조사팀에 가담시켰다.

닉슨은 이런 하위직 인사에는 간여하지 않았고 이들이 보고하면 깊은 생각이 없이 OK를 했다. 이런 식으로 백악관 핵심부에 들어 온 젊은 변호사 중의 한명인 존 딘은 워터게이트 은폐 작업을 총괄했다. 존 딘은 자기가 중벌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자 상원 조사위원회와 특검과 협상을 해서 증언을 하는 대신 형을 감면받기로 협의를 했다. 이렇게 해서 워터게이트가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워터게이트에 연루된 많은 사람들이 1년 안팍의 실형을 살았다. 이들은 출소 후에 각자 책을 펴내서 자기가 본 워터게이트를 기록으로 남겼다. 밥 홀드먼은 회고록 외에도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있으면서 남긴 일기를 정리해서 책으로 펴냈다. 찰스 콜슨은 교도소에서 1년을 보낸 후 출소해서 목사가 되어 윤리를 강조하는 설교로 오랜 세월을 살았다. 전설적인 CIA 요원이었던 하워드 헌트는 워터게이트로 한 평생 쌓아 온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성장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입은 영혼인 닉슨은 다른 사람을 믿지 않는 피해망상 심리가 있었다. 닉슨은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백악관에서 참모를 만나는 경우도 주로 1대 1 보고나 면담이었다. 이 점에서 여러 사람과 웃으면서 대화하기를 좋아 했던 레이건 대통령과 크게 비교된다.

닉슨이 부통령을 지내던 1950년대에 CIA는 이란과 과테말라 정권을 무너뜨렸고, 그 시절 FBI는 도청과 서신 검열을 마음대로 했다. 케네디와 존슨 정부 들어서도 그 점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케네디는 남베트남 대통령과 그 동생을 제거하라고 명령했고, 존슨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혼외정사 녹음을 다른 사람들과 같이 듣고 즐거워했다. 하지만 닉슨은 세상이 변했음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민권운동과 반전운동으로 인해 사회 분위기가 바뀌었음을 알게 된 FBI와 CIA는 스스로 과거의 행태에서 벗어났는데, 닉슨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닉슨은 FBI는 관료제에, CIA는 엘리트주의에 빠져 있다고 생각해서 불신했고, 이 역시 워터게이트를 악화시키는데 기여했다.

남부 캘리포니아의 빈한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자기 힘으로 대학과 로스쿨을 나온 닉슨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동북부 아이비리그 출신을 혐오했다. 닉슨은 민주당의 진보세력을 위선적인 기득권 집단이라고 생각했다. 1972년 대선은 그들에 대한 닉슨의 통쾌한 승리였지만, 워터게이트로 인해 이들과 다시 마주치게 됐고, 결국 사임을 해야만 했다.

사진 : 밥 홀드먼과 존 얼릭먼, 하워드 헌트와 고든 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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