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제임스 홀링스워스 장군

작성일 : 2022-12-03 15:34조회 : 638

제임스 홀링스워스 장군

사진(1)은 1975년 8월 27일 방한한 제임스 슐레진저(James Schlesinger 1929~2014) 국방장관(오른쪽)이 DMZ 미군 초소에서 주한 미군 사령관 리차드 스틸웰(Richard Stilwell 1917~1991) 대장(왼쪽), 그리고 한미 1군단장 제임스 홀링스워스(James Hollingsworth 1918~2010) 중장(가운데)과 함께 북쪽을 보는 장면이다.

슐레진저 장관의 한국 방문은 의미가 컸다. 그해 4월 말 남베트남이 공산화된 후 이민비자를 얻기 위해 미국 대사관 앞에는 새벽부터 사람들이 긴 줄을 이루는 등 우리나라는 분위기가 아주 안 좋았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을 찾은 슐레진저 장관이 북한이 도발하면 “북한의 심장부를 강타해서 초토화시키겠다”고 발언해서 한국민을 안심시켰다. 슐레진저 장관은 청와대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몇 시간에 걸쳐 회담을 했는데, 2000년대 들어서 미국측 기록이 비밀해제가 되어 전문이 공개되어 있다. 10쪽이 넘는 기록을 보면 박정희 대통령이 매우 구체적인 사안을 갖고 슐레진저와 진지한 대화를 했음을 알게 된다.

박 대통령은 주한 미군 주둔이 필요하다고 했고, 슐레진저도 물론 이에 동의했다. 박 대통령이 북한 잠수함에 대항해서 우리도 잠수함을 들여와야 한다고 하자 슐제진저는 잠수함 보다는 대잠 초계기 P-3를 도입하는 게 비용 측면에서 효과적이라고 답했다. 슐레진저 장관은 북한에 대한 가시적 경고로서 당시 최신 전폭기였던 F-111 편대를 주한 미 공군기지에 자주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슐레진저는 한국이 핵 비확산 조약(NPT)을 준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화제를 바꾸었는데, 그 다음은 삭제돼 있다. 삭제된 부분에는 핵 재처리 시설을 해서는 안 된다는 미국의 확고한 입장이 전달됐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 후 프랑스와 맺은 핵 재처리 계약은 파기된다.)

박 대통령은 스틸웰 대장과 홀링스워스 중장이 한국에 1년 더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했고, 슐레진저 장관은 스틸웰 대장은 퇴역까지 다른 데 갈 이유가 없으며, 홀링스워스 중장은 포드 대통령에게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실전 경험이 풍부한 두 미군 장성의 경력을 잘 아는 박 대통령은 두 사람이 한국에 있으면 김일성이 감히 덤비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스틸웰 대장은 웨스트포인트 출신으로 2차 대전, 한국전,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고 주한 미군 사령관을 마지막으로 퇴역할 예정이었다. 스틸웰 장군은 1976년 8월에 있었던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으로 인한 위기상황을 지휘하고 그 해 10월 본국으로 돌아가서 퇴역했다. 스틸웰은 레이건 1기 행정부에서 국방부 부차관보로 일하고 은퇴했다.

홀링스워스 중장은 학군 출신으로 2차 대전 당시 조지 패튼 장군이 지휘하는 2기갑 사단 소속으로 북아프리카 전투와 시칠리 상륙작전을 치렀다. 이어서 조지 패튼 장군의 3군(The 3rd Army) 휘하에서 탱크 대대를 앞장서서 이끌고 발지 전투(Battle of Bulge)를 치르고 엘베 강을 건너 독일 본토로 진입하는 전설적인 기록을 남겼다. 2차 대전 중 그는 다섯 차례 부상을 당하면서도 부대를 지휘해서 많은 훈장을 받았다.

준장으로 진급한 그는 베트남 전쟁 초기인 1966년에 1사단 부사단장으로 부임해서 휘하 부대가 적극적으로 베트콩 섬멸에 나서도록 했다. M-16을 들고 헬기로 저공비행을 하면서 베트콩을 직접 추격하는 모습이 동승했던 영국 기자에 의해 언론 기사로 나오기도 했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 Apocalypse Now>에서 M-16을 들고 헬기 부대를 이끄는 킬고어 중령은 홀링스워스 장군에서 착안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홀링스워스 장군은 패튼 장군처럼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성향이 있어서 상부에서 입을 닥치라고 여러 차례 경고를 받았다. 소장으로 진급한 홀링스워스는 1972년 북베트남의 춘계 대공세 때에는 사이공 서쪽 3군 지역 미군 고문단장으로 안록을 포위한 북베트남군에 대한 폭격을 지휘해서 안록을 탈환하고 북베트남군을 섬멸해서 사이공을 지켜냈다. 그는 후퇴하는 북베트남군을 끝까지 추격하도록 남베트남군을 독려하다가 한쪽 눈에 파편을 맞고 본국 병원으로 후송됐다.

중장으로 진급한 홀링스워스는 한국군과 미군 13개 사단을 지휘하는 한미 1군단장으로 취임했다. 홀링스워스는 방어 위주로 되어 있던 작전계획을 공격 위주로 전환하고 그 계획에 부응해서 부대를 재배치했다. 홀링스워스가 수립한 새로운 작전 계획은 한미 연합군이 5일내에 침공한 북한군을 궤멸시키고 그 후 4일 만에 개성과 평양을 점거하도록 되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홀링스워스 장군은 월스트리트저널 기자에게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면 9일이면 끝낸다고 이야기한 것이 1976년 1월 초에 기사화돼서 논란이 일었다. 그 해 3월에 홀링스워스는 예상보다 빨리 본국으로 발령이 났고 얼마 후 퇴역했다. 그의 전설적인 군 복무를 기념해서 모교인 텍사스 A&M 대학에 동상이 세워져있다.

제임스 슐레진저 장관은 한국에 다녀가고 3개월 후인 1975년 11월 할로윈 데이에 국방장관직에서 해임됐다. 슐레진저는 개성이 강해서 포드 대통령과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이 모두 부담스러워 했다. 포드 대통령은 윌리엄 콜비(William Colby 1920~1996) CIA 국장도 경질해서 이날의 깜짝 인사를 ‘할로윈 학살’이라고 부른다. 포드는 비서실장이던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Rumsfeld 1932~2021)를 후임 국방장관에, 그리고 중국 주재 대표부 대사 조지 H. W. 부시를 후임 CIA 국장으로 임명했고, 비서실 차장이던 딕 체니(Dick Cheney 1941~)가 비서실장이 됐다. 이렇게 해서 럼스펠드와 체니가 포드 행정부의 실세로 등장했으나 1년 후 대통령 선거에서 포드가 패배해서 실세 노릇은 1년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24년 후에 체니는 부통령, 럼스펠드는 다시 국방장관이 돼서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는 등 진짜로 실세 노릇을 했다.
- 사진 (2)는 1972년 북베트남군 춘계 대공세 당시 홀링스워스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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