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톰 허스턴과 닉슨 백악관

작성일 : 2023-01-01 00:09조회 : 672

톰 허스턴과 닉슨 백악관

1969년 2월 말 전역을 앞둔 톰 허스턴은 패트릭 뷰캐넌의 요청으로 닉슨이 취임한 다음날부터 백악관에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백악관 공보실에는 뷰캐넌 외에도 윌리엄 사파이어, 브라이스 할로우 등이 있었는데, 허스턴은 뷰캐넌과 가까웠다. 톰 허스턴은 닉슨 대통령에게 보다 보수적인 법률가를 연방판사로 임명해야 한다고 건의하는 등 나름대로 정책건의를 했다. 1969년 들어서 웨더 언더그라운드 등 좌익 폭력단체가 폭발물 테러를 하고 반전(反戰) 시위가 곳곳에서 일어나는 등 사회 분위기가 심각했다.

1969년 9월 안보보좌관 헨리 키신저는 베트남 전쟁 상황을 전반적으로 리뷰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닉슨 대통령은 키신저에게 1968년 대선을 앞두고 존슨 대통령이 폭격을 중단시킨 조치(폭격 중단 : 'bomb halt')에 대해서도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지시했다. 닉슨은 또한 케네디 행정부 초기에 있었던 피그스 만 침공과 케네디 암살에 관해 CIA가 갖고 있는 정보를 궁금해 했다. 밥 홀드먼 비서실장은 국방정보국에서 일했던 톰 허스턴이 1968년 '폭격 중단'에 대한 조사를 할 적임자로 보고 키신저에게 허스턴을 추천했다. 키신저도 동의해서 허스턴이 이 작업을 하게 됐다.

톰 허스턴은 국무부, 국방부 등에 이에 대해 알아보았으나 특별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 허스턴은 자기가 근무했던 국방정보국의 스태프와 연락해서 ‘폭격 중단’에 관한 자료가 있는지를 알아보았다. 허스턴은 ‘폭격 중단’에 관한 비밀문건이 있으며 그 외에도 로버트 맥나마라가 국방장관을 그만두기 전에 지시해서 만든 베트남 전쟁에 관한 방대한 비밀문건이 존슨 행정부 시절에 국방장관실 등 몇 군데에 배포됐으며 브루킹스 연구소도 갖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허스턴은 이를 키신저의 보좌관인 알렉산더 헤이그에게 보고했다. 헤이그는 기밀보고서를 찾아보고 브루킹스 연구소가 갖고 있는 비밀보고서를 반납 받으라고 지시했다. 이런 일이 1970년 3월 말까지 이루어 졌다.

이런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허스턴은 존슨 행정부 시절에 FBI가 워싱턴 주재 베트남 대사와 애너 체놀트를 감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허스턴은 ‘폭격 중단’의 배경이 외부로 알려지면 곤란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12쪽 대외비 보고서를 작성해서 보고했다. 허스턴의 보고서를 받아 본 밥 홀드먼, 그리고 아마도 닉슨은 브루킹스 연구소가 한 부를 갖고 있을 것이라는 부분에 대해 긴장했을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는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된 후에 일자리를 잃어버린 스태프들이 대거 취직해서 마치 ‘케네디 망명정부’ 같은 모습을 띄었기 때문이다. (포드 재단은 이들에 대한 인건비를 브루킹스 연구소에 지원했다. 당시 포드 재단 이사장은 케네디의 안보보좌관을 지낸 맥조지 번디였다.) 존슨 행정부에서 국방부 정책기획국장을 지낸 레스리 겔브(Leslie Gelb 1937~2019)도 닉슨 행정부가 들어서자 브루킹스 연구소에 펠로우로 자리를 잡았다. (나중에 펜타곤 페이퍼가 뉴욕타임스에 의해 알려지자 레슬리 겔브가 펜타곤 페이퍼를 작성한 책임자였음이 밝혀지게 된다.)

한편, 1970년 들어서 미군이 캄보디아를 침공하자 대학 곳곳에서 반전 시위가 크게 일어나고 워싱턴에도 대규모 시위와 집회가 연이어 열렸다. 이에 닉슨은 FBI가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톰 허스턴에게 대책을 세워보라고 지시했다. 닉슨은 6월 5일, FBI 에드가 후버 국장, CIA 리차드 헬름스 국장, NSA 노엘 게일러 국장, DIA 도널드 베넷 국장을 백악관으로 불러서 정보기관들이 협력하도록 부처간 협의체(Interagency Committee on Intelligence : ICI)를 만들라고 지시하고 톰 허스턴에게 백악관 연락책임을 맡도록 했다. 이 구상에 대해 에드가 후버 국장은 매우 불쾌하게 생각해서 ICI는 기능하지 못했다.

이런 과정에서 허스턴은 47쪽짜리 보고서를 작성해서 보고했다. 흔히 ‘허스턴 플랜’(The Huston Plan)이라고 부르는 이 보고서는 신좌파 테러 단체와 반전 단체 등과 관련된 위험인물을 감시하고 도청하며 건물에 잠입해서 증거물을 파악해야 미국이 위험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보고서는 닉슨 대통령, 홀드먼 비서실장, 그리고 FBI 국장과 CIA 국장에 전달됐는데, 닉슨도 읽어 보았다고 추측되고 있다. 존 미첼 법무장관은 이 내용이 너무 위험하다고 보아서 닉슨 대통령에게 폐기하도록 했다고 전해진다. 백악관은 ‘허스턴 플랜’ 문건을 폐기했으나 CIA로 전달된 문건은 파기되지 않고 있다가 1976년 CIA 활동을 조사하던 상원 정보위원회에서 실체가 드러나게 된다.

정보기관 협의체(ICI) 구상도 무산되고 자기가 만든 ‘허스턴 플랜’도 무산되자 허스턴은 의욕을 상실했다. 더구나 닉슨 대통령은 국내 정책에 있어서 하버드 교수 출신으로 복지정책을 맡았던 패트릭 모이니핸의 의견을 많이 들었고 공보실에서도 보수적인 뷰캐넌 보다는 중도적인 윌리엄 사파이어가 많은 역할을 했다. (윌리엄 사파이어는 닉슨 2기 들어서 백악관을 나와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활약했다.) 이런 모습을 본 허스턴은 닉슨이 보수주의를 버렸다고 생각하고 실망한 끝에 1971년 봄 백악관에서 사직하고 고향 인디애나로 돌아가서 변호사 개업을 했다. 홀드먼 비서실장은 허스턴이 하던 일을 존 딘 법률비서관과 이질 크로 비서관 등에게 넘겼다.

1971년 6월 13일 뉴욕타임스는 펜타곤 페이퍼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로저스 국무장관과 레어드 국방장관은 그 내용이 케네디/존슨 행정부 시절에 있었던 일이라서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닉슨도 마찬가지였다. 닉슨은 그날 뉴욕타임스 1면 왼쪽에 나온, 전날 있었던 큰 딸 트리셔의 결혼 기사를 자세히 읽고 1면 오른쪽에 나온 펜타곤 페이퍼 기사는 대충 읽고 말았다. 그런데, 키신저가 달려와서 안보 관련 비밀문서가 보도가 되면 외교를 하지 못한다고 펄쩍 뛰어서 닉슨은 생각을 달리하게 됐다. 닉슨은 랜드 연구소에 있었던 대니얼 엘스버그가 펜타곤 페이퍼를 뉴욕타임스에 제공했음을 알고 분노했다.

닉슨은 캄보디아에 대한 비밀폭격이 한 달도 안돼서 뉴욕타임스에 보도가 된 데 불같이 화를 낸 적이 있었다. 닉슨은 백악관 참모회의에서 도무지 FBI는 무엇을 하느냐고 화를 냈다. 당시 FBI 국장 에드가 후버는 노망 증세가 나타나서 2인자인 윌리엄 설리번을 해임하는 등 수뇌부가 마비상태였고, 3인자인 마크 펠트는 자기가 국장이 된다고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다. (마크 펠트가 워싱턴포스트에게 워터게이트 수사 진행을 비밀리에 알려준 ‘Deep Throat'였음은 한참 후에 알려졌다.) 그래서 밥 홀드먼과 존 얼릭먼 등 닉슨의 고위참모들은 정부기밀 누설을 방지하기 위해서 백악관에 특별조사팀(Special Investigation Unit)을 두자고 의견을 모았다.

찰스 콜슨 보좌관이 브라운 대학 동문회에서 자주 만났던 전직 CIA 요원 하워드 헌트를 추천했고, 존 딘 비서관이 법무부에 일할 때 알았던 전직 FBI 요원 고든 리디를 추천해서, 이들을 중심으로 한 7인조 조사팀이 만들어졌고 하워드 헌트에게는 백악관 지하의 창고 같은 작은 사무실이 주어졌다. 이들은 누출을 방지한다는 의미에서 자신들을 ‘배관공’(The Plumbers)이라고 불렀다. 이들이 1972년 6월 17일 워터게이트 건물을 침입한 멤버들이다.
하워드 헌트 등 특별조사팀에게 주어진 첫째 임무는 브루킹스 연구소를 침입하는 것이었다.

헌트와 리디는 브루킹스 연구소를 몇 차례 답사했으나 보안이 너무 철저해서 도주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 왜 백악관 고위참모들이 브루킹스 연구소를 타깃으로 삼았나 하는 질문이 제기된다. 이에 대한 명쾌한 답은 없지만 존 허스턴이 브루킹스 연구소에 베트남 전쟁 보고서(펜타곤 페이퍼)와 1968년 대선을 앞둔 ‘폭격 중단’(Bomb Halt)에 관한 비밀보고서가 있다고 보고했기 때문으로 보는 해석이 유력하다.

닉슨 백악관의 안보실도 ‘펜타곤 페이퍼’가 있다는 이야기를 톰 허스턴을 통해서 알게 됐는데, 그것이 뉴욕타임스에 보도가 되자 허스턴이 보고한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따라서 펜타곤 페이퍼가 공개된다면 브루킹스 연구소에 있다는 ‘폭격 중단’ 비밀보고서도 1972년 대선을 앞두고 폭로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브루킹스 연구소에 침입하려 했다는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면, 과연 브루킹스 연구소에 그런 보고서가 있었을까 ? 있었다면 벌써 공개됐을 것이니, 당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닉슨과 그의 비서실장인 밥 홀드먼은 자신들이 많은 적(敵)으로 둘러 쌓여있다고 생각했다. 닉슨과 홀드먼에게 케네디 사단은 가장 위험한 적(敵)이었고, 브루킹스 연구소는 케네디 사단이 구축한 진지(陣地)였다. 닉슨은 1968년 가을에 애너 체놀트를 통해서 남베트남 티우 대통령에게 평화회담을 거부하라고 했던 일이 1972년 대선을 앞두고 악재(惡材)로 작용할 가능성이 항상 마음에 걸려 있었다. 7인조 특별조사팀은 브루킹스 연구소 침입에 실패한 후 할 일이 없어지자 백악관에서 닉슨 재선위원회로 소속을 옮겼다. 그리고 이들은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를 한밤중에 침입해서 도청장치를 설치하던 중 경찰에 체포됐다. 닉슨은 워터게이트 빌딩 침입 사건을 신문을 보고 알았다. 하지만 닉슨과 홀드먼은 그 사안의 중대성을 간과하고 은폐하려고 해서 닉슨은 결국 2년 후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1971년 봄, 30세 나이에 백악관을 떠난 톰 허스턴은 고향 인디애나로 돌아가서 변호사 개업을 했다. 그의 로펌은 대단히 성공해서 그는 매우 부유해졌다. 대학 학부 다닐 때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허스턴이 단지 변호사 업무에 충실하고 아무런 정치적 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점은 이상할 정도다. 허스턴은 1976년에 CIA의 불법활동을 조사하던 상원 정보위원회에서 나와서 ‘허스턴 플랜’을 작성해서 보고한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이것이 허스턴이 백악관을 나온 후 유일하게 뉴스에 나온 경우였다.

허스턴이 백악관을 떠남에 따라 허스턴이 하던 일을 인계 받은 이질 크로와 찰스 콜슨은 워터게이트와 관련해서 유죄판결을 받고 1년 전후로 복역하고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했다. 존 딘은 워터게이트를 은폐하려 한 주범이었는데, 그는 특별검사에 협력하고 상원 청문회에서 증언을 한 덕분에 1년 동안 증인보호 프로그램으로 격리되는 외에 감옥에는 가지 않았지만 변호사 자격은 박탈당했다. 워터게이트 사건과 관련된 많은 사람들, 즉 홀드먼, 얼릭먼, 콜슨, 헌트, 리디 등이 회고록을 남겼는데, 이들은 한결같이 존 딘을 '쥐새끼'(rat) 정도로 치부했다.

사진 (1) 백악관에서 닉슨 대통령과 톰 허스턴.
사진 (2) 노년의 톰 허스턴 (오른쪽에서 두 번째). 왼쪽에서 두 번째가 에밋 티렐. 인디애나 대학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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