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조선일보 2008년 12월 13일자 서평 기고문

작성일 : 2008-12-13 09:49조회 : 2,012

<조선일보 2008년 12월 13일자 북 섹션 서평기사>

영향력 막강한 9명의 미국 대법관들, 인간으로서의 생얼굴을 본다
지혜의 아홉 기둥
밥 우드워드·스콧 암스트롱 지음｜ 안경환 옮김 (라이프맵｜896쪽｜4만5000원)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미국 대통령이 역사에 남길 수 있는 큰 발자취는 자신의 정치철학에 부합하는 대법원장을 임명하는 것이다. 지난 2005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의해 대법원장에 임명된 존 로버츠, 1986년에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어 19년간 대법원장으로 재직한 윌리엄 렌퀴스트가 그런 경우다. 헌법과 연방법에 대한 최종 판단권을 갖고 있는 대법원은 대법원장을 포함한 9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되는데, 이들은 종신(終身)이다. 많은 정치적·사회적 문제가 법원의 사법적 판단에 의해서 해결되는 미국에서 이 9명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닉슨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초래한 워터게이트사건을 파헤쳐서 명성을 얻은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가 동료 기자와 함께 1979년에 펴낸 이 책의 원제 '동료'(The Brethren)는 대법관들을 일컫는다. 책은 닉슨 대통령이 보수성향의 법률가 워렌 버거를 신임 대법원장에 임명한 1969년부터 1976년까지의 대법원을 파헤치고 있다. 저자들은 워터게이트를 추적하듯이 대법관들과 그 주변을 인터뷰해서 책을 펴냈다. 이 기간 중 대법원은 "대통령은 자료제출 거부권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 닉슨의 '대통령 특권론'을 배척해서 결국 그를 사임으로 몰아갔다. 워터게이트 특종기자인 우드워드는 그런 대법원에 대해 신비로운 매력을 느꼈을 것이다.

책이 다루고 있는 시기는 인종차별 철폐 등 일련의 진보적 판결을 통해 미국 사회를 바꾸어 놓은 얼 워렌 대법원장이 은퇴한 후 워렌 버거가 후임으로 취임하고, 몇몇 대법관이 퇴임하고 사망함에 따라 새 대법관들이 임명되어 대법원의 성향이 오른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던 때이다. 이 몇 년 동안 대법원은 국방부 기밀문서 사건, 낙태 금지와 사형제도를 위헌으로 판시한 사건 등 미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판결을 많이 내렸다.

이 책의 가치는 그전까지는 언론의 취재 대상으로 보지 않았던 대법원 내부의 사정을 다룬 데 있다. 대법관이 자기 주장을 판결에 반영시키기 위해 동료 대법관을 회유하는 모습, 대법관들의 독특한 습성, 대법관과 젊은 재판연구관 사이의 관계, 대법원장의 스타일 등 인간으로서의 대법관들의 생얼굴을 볼 수 있다.

기자들이 쓴 책이기에 헌법이론이나 대법원 역사 같은 정통적인 지식을 찾아 볼 수는 없다. 그런 탓에 미국 헌법과 대법원사(史)에 지식이 없는 사람은 이 책을 읽어도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책에 나타난 단편적인 '휴먼 스토리'를 읽고 나서 "미국 대법원은 판결을 이런 식으로 하는구나" 하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해다. 미국 대법원은 헌법과 헌법에 관한 선결례(先決例)를 무엇보다 존중하기 때문이다. 벌써 30년 전에 나온 책이라서 오늘날에 이르는 과정을 볼 수 없는 것도 한계다. 그후 오늘날에 이르는 30년간의 대법원을 알기 위해선 제프리 투빈 기자가 2007년에 펴낸 베스트셀러 《아홉명》(The Nine)을 읽기를 권한다.

(C) 조선일보, 이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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