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급사퇴가 청와대 뜻이라면 (매경 2008 12 19)

작성일 : 2008-12-19 09:17조회 : 2,315

<매일경제> 2008년 12월 19일자 테마진단

1급 일괄사퇴가 `청와대 뜻`이라면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교육과학기술부와 국세청 1급 간부들의 일괄사표 제출이 청와대 의중(意中)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또한 일괄사표 제출이 다른 부처로 확대될 조짐이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배경이 어찌됐든 간에 공직사회를 상대로 청와대가 사실상 강압적인 수단을 동원했다는 점은 예사롭지 않다.

고위공무원단제도로 신분이 보호된다고는 하지만 직업공무원의 꽃인 1급은 원래 신분 보장이 없는 것이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 대통령은 자기의 정치철학에 부응하는 인사를 하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1급을 정치적 자리로 생각한 대통령은 없었다. 1급은 정치적으로 임명되는 장차관과 국장급 이하 직업공무원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1급은 장차관이 추구하는 정치적 목적과 정책을 부처의 고유한 업무에 접목시키는 역할을 한다. 정치에서 행정을 격리하면서도 새 정책을 행정에 반영시키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인체로 말한다면 뇌에서 보내는 신호를 전달하는 중추신경인 셈이다.

우리의 제도는 장차관은 물론이고 차관보와 실ㆍ국장도 정치적으로 임명하는 미국의 경우와 비교된다. 미국의 제도는 고위공무원이 대통령과 정치적 책임을 같이한다는 장점도 있지만 직업공무원의 영역과 책임성이 줄어드는 단점도 있다. 미국에선 이렇게 정치적으로 임명하는 고위공무원은 의회의 청문회와 인준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이 점에서 직업공무원제를 원칙으로 삼고 있는 우리는 미국과는 토양부터가 다르다.

교과부에 대해 청와대가 초법적 강수(强手)를 두게 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교육 분야 공약의 이행 상태가 지지부진한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그러나 교육은 한 정권의 임기 내에 큰 변화나 개혁을 이루어내기 어려운 특성이 있다. 이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건 대입 자율화와 교원평가제만 해도 그렇다. 대입 자율은 우리 사회에서 사라진 신뢰를 다시 구축하지 않고서는 전면 시행이 어렵다. 교육이란 전인적(全人的) 서비스를 제공하는 교원을 매출액으로 세일즈맨을 평가하듯이 평가할 수도 없다. 현 정부가 자율과 경쟁을 교육 분야의 기본 철학으로 삼은 데 대해 크게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지만 그것을 시행하는 데는 순서가 있고 살펴야 할 현실적 문제가 너무나도 많은 것이다.

청와대는 대통령 임기의 첫 한 해가 지나가고 있음에도 종부세 감축 외에는 별다른 업적이 없어 벌써부터 레임덕 이야기가 나오는 데 대해 조바심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같은 리더십의 위기에 대한 책임을 공직사회에다 묻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는 알 수 없다. 정권이 들어서기도 전에 성급하게 해치운 부처 통폐합의 후유증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는 부처가 적지 않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은 교육부와 과학기술부를 억지로 붙인 것이 가장 졸렬했다고 본다. 사정이 이러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 여당의원은 정부인사가 `코드인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으니 우습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노 대통령의 인사를 `코드인사`라고 비난했던 것이 바로 한나라당이다. 노무현 정부가 실패한 원인 중 하나가 무리한 `코드인사`였음은 한나라당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정부 산하 기관장과 연구원장 인사를 무리하게 단행한 정부가 1급 자리마저 `코드인사`로 메우겠다고 나선다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은 뿌리부터 흔들릴 것이다.

정책 수행이 지지부진한 데 대해 청와대가 불만을 가질 수는 있다. 관료들이 갖고 있는 현상유지적 사고에도 분명히 문제는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고쳐 나가는 것이 바로 정치이고, 정치의 생명은 리더십이며, 리더십은 설득과 소통에서 나오는 것이다. 성공적인 대통령으로 평가되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소통의 대가(大家)`였으며, `위임의 달인(達人)`이었다는 사실을 교훈으로 삼았으면 한다.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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