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닉슨과 레이건, 대통령 이후

작성일 : 2023-03-28 08:11조회 : 511

닉슨과 레이건, 대통령 이후

미국에서 전직 대통령 연금을 도입한 시기는 아이젠하워 시절이었다. 아이젠하워는 군인 연금이 있었기 때문에 대통령 연금이 딱히 필요치는 않았다. 사정이 어려웠던 트루먼 대통령은 이 혜택을 보지 못했다. 존. F. 케네디는 임기 중 암살됐고 재클린은 재혼을 한 후 배우자 연금 혜택을 상실했다. 존슨 대통령은 원래 심장이 좋지 않았는데,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건강이 악화되더니 퇴임 후 5년 만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불명예스럽게 대통령을 물러난 닉슨(1913~1994)은 퇴임 후 변호사 비용 때문에 파산 상태에 이르렀다. 여러 가지 문제를 간신히 마무리한 후 닉슨은 남부 캘리포니아에 있는 저택과 플로리다 키 비스케인에 있는 별장을 처분해서 빚을 청산하고 뉴욕 맨해튼으로 이사했다. 변호사 사무실을 연 닉슨은 집에서 사무실까지 걸어서 출근하는 등 보통 사람으로서의 삶을 즐겼다. 귀찮다는 이유로 전직 대통령에 주어지는 경호를 거절한 닉슨은 커피숍에 들러서 만나는 사람과 담소를 하기도 했다. 닉슨은 변호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데이비드 프로스트와 인터뷰를 한 외에는 돈 받고 하는 강연 같은 것을 하지 않았고 회사 고문도 맡지 않았다. 근로계층 출신이라서 모든 것은 스스로 일구어 내야만 했던 닉슨 부부는 백악관을 나온 후에도 그런 자세로 살았다. 닉슨은 변호사 업무를 하는 중에도 새로 나온 책을 읽고 신문 칼럼을 챙겨 보았다.

닉슨은 실추된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방대한 회고록을 펴냈다. 휘티어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듀크 로스쿨을 최우등으로 졸업한 닉슨은 매우 지적(知的)인 사람이었다. 닉슨은 역대 미국 대통령 중에 독서량이 가장 많은 축에 속한다. (닉슨 외에 토머스 제퍼슨, 존 퀸시 애담스, 그리고 우드로 윌슨이 독서량이 많았던 대통령이다.) 그의 회고록 <The Memoirs of Richard Nixon>(1978)은 역대 대통령이 펴낸 회고록 중 가장 상세해서 그 시기 미국 정치를 공부하는 사람이면 반드시 참조할 가치가 있다. 이 회고록을 펴내는데 큰 역할을 한 스태프가 그 후 유명한 TV 앵커가 되는 다이앤 소여(Diane Sawyer 1945~ )다.

닉슨은 1994년 봄에 사망하기까지 책을 여러 권 펴냈다. 1990년에 나온 <In the Arena>(아래 사진 가운데)는 닉슨의 인간적 면모를 알게 해주는 또 다른 회고록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기를 키워준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무한한 존경, 그리고 평생을 같이 한 부인 패트 여사에 대한 사랑이 넘쳐흐른다. 동유럽 공산권이 붕괴하는 등 격동의 시기이던 1990년대 초에 닉슨은 외교정책 원로로서 냉전 이후 세계에서의 미국의 역할에 대한 책을 두 권 펴냈다. 1992년에 나온 <Seize the Moment>와 1994년에 나온 <Beyond Peace>가 그러하다. 그의 마지막 책이 된 <Beyond Peace>에서 닉슨은 먼저 세상을 뜬 패트 여사를 추모하는 글을 남겼으나 그 자신도 책이 나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그 외에도 닉슨의 인간적 면모를 알 수 있게 하는 책으론 닉슨의 마지막 비서였던 모니카 그로울리가 펴낸 <Nixon Off The Record>등이 있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대통령 퇴임 후 거취가 논란이 된 경우였다. 닉슨으로부터 대통령을 승계해서 불과 2년 4개월 동안 대통령을 한 포드는 퇴임하자마자 여기저기 회사의 고문을 맡고 돈 받고 하는 강연에 나서서 빈축을 샀다. 그래서 ‘포드 주식회사’가 탄생했다는 언론 기사가 나오기까지 했다. 닉슨은 그런 포드를 경멸했고, 카터도 포드의 그런 행태를 비판했다. 포드는 하원의원 시절에 가장 청렴하고 정직한 정치인으로 이름이 높았기 때문에 대통령 퇴임 후에 이런 모습을 보일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퇴임 후 회고록 <An America Life>를 1990년에 펴냈다. 마치 레이건의 연설을 듣는 것 같이 술술 잘 읽히는 이 책은 물론 베스트셀러가 됐다. 레이건 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기념도서관 건립위원회가 금방 구성되고 기부금이 넘쳐흘러서 캘리포니아 시미 밸리에 기념 도서관이 1991년 가을에 문을 열었다. 레이건은 퇴임 후에 그가 좋아하는 산타바버라 랜치에서 낸시 여사와 승마를 하다가 낙마해서 머리를 다쳤다. 이 낙마 사고가 치매의 한 원인일 수도 있다고 이야기 된다. 1993년 초부터 레이건이 사람들을 잘 알아보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돌아서 레이건과 가까웠거나 레이건을 가까이 모셨던 사람들이 레이건을 마지막으로 찾아보았다. 레이건이 마지막으로 참석한 공식적 자리는 1994년 4월 닉슨의 영결식이었다. 치료가 불가능한 알츠하이머라고 정식으로 진단을 받은 레이건은 그해 11월 중간선거를 며칠 앞두고 미국인에 보내는 고별사(告別辭)를 발표했다. 이 고별사에 감동한 많은 사람들이 투표장에서 공화당을 찍어서 그 해 선거에서 민주당은 참패했다.

레이건의 재산은 산타바버라에 있는 랜치와 퇴임 후에 살기 위해 은행 융자와 친지로부터 빌린 돈으로 마련한 로스앤젤레스의 저택이 전부였다. 낸시 여사는 유명한 신경외과 의사이며 노스웨스턴 의대 교수를 지낸 양부(Step Father) 로열 데이비스(1896~1982)로부터 약간의 재산을 상속받았다. 자기의 두 번째 부인이 전 남편 사이에서 낳은 낸시를 매우 사랑한 데이비스는 낸시를 비싼 사립학교와 명문 여자대학 스미스 칼리지에 보냈다. 로열 데이비스가 첫 번째 부인과 사이에서 낳은 리차드(1926~2021)도 펜실베이니아 대학 의대 교수를 지낸 저명한 신경외과 의사였다.

레이건이 알츠하이머로 진단을 받자 낸시 여사는 이제는 필요가 없어진 산타바버라 랜치를 매각했는데, 레이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공동으로 구입해서 ‘Young America's Foundation’에 기증했다. 이 단체는 랜치를 레이건 부부가 살아 있을 때 모습으로 관리하고 있다. 레이건의 알츠하이머 투병기간이 길어서 의료비가 많이 들었고, 레이건이 사망한 후 낸시 여사는 12년을 혼자 살아서 낸시 여사가 사망한 후에는 남은 재산이 없었다. LA 저택은 부채를 제외하면 남는 것이 없었고, 레이건 부부가 사용했던 가구와 액자 등 모든 소품은 경매에 붙여졌다. 레이건 부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경매에 나온 물건들을 기꺼이 사들였고, 경매로 얻어진 수익은 레이건 기념 도서관에 기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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