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케네디, 피격 후 18시간

작성일 : 2023-06-06 20:02조회 : 547

케네디, 피격 후 18시간

총상을 입은 케네디가 댈러스 파클랜드 병원에 도착했을 때 심장은 뛰고 있었다. 응급실 의사는 호흡을 돕기 위해 목을 절개했으나 부질없는 일이었다. 뇌가 파열된 케네디는 심장도 곧 멈추었다. 재클린은 얼굴에 케네디의 피가 묻어 있었고 핑크 색 옷은 피와 뇌수로 젖어 있었다. 존슨 부통령 부인 버드 여사와 경호원이 옷을 갈아입을 것을 권하자 재클린은 “아니에요. 그들이 남편에게 한 짓을 보게 할 거에요”(“No, let them see what they've done.”)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재클린은 얼굴의 피를 수건으로 닦았으나 “내가 왜 이걸 닦았지” 하고 후회해서 주변 사람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그 때 백악관에서 맥조지 번디 안보보좌관이 존슨에게 전화를 걸어서 댈러스는 위험하니 워싱턴으로 곧 올라오라고 했다. 존슨은 재클린과 함께 올라가겠다고 했다. 백악관 참모들은 존슨에게 공항으로 가서 공군 1호 전용기 속에서 기다리라고 했고 존슨 부부는 공항으로 이동해서 대통령 전용기에 올라탔다.

케네디의 시신을 실고 가려면 관(棺)이 필요했다. 케네디 차에 올라타서 재클린을 좌석으로 밀어 넣고 병원에 도착하자 케네디를 응급실로 밀고 들어간 클린트 힐 경호원에게 관을 구해보라고 해서 그는 병원에 문의해서 오닐 장의사(葬儀社)에 전화를 걸었다. 힐은 막연하게 가장 좋은 관을 곧 보내달라고 했다. 그 장의사는 가장 비싼 3,995 달러짜리 순동(純銅) 관을 영구차에 싣고 곧 병원에 도착했다. (당시 3,995달러면 지금은 40,000달러에 해당한다.) 구리로 만들고 내부가 백색 실크인 그 관은 무게가 400 파운드(180Kg)나 나갔다.

장례사는 케네디의 시신을 보고 깜작 놀랐다. 뇌가 부서져서 뇌수가 흘러나오고 피가 흥건했다. 간호사의 도움으로 장례사는 병원에서 쓰는 린넨으로 시신을 싸고 비닐로 관의 내부를 감싸서 액체가 흘러나가지 못하도록 한 후 시신을 관에 안치했다. 재클린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케네디의 주치의인 조지 버클리 해군제독과 함께 이 모습을 지켜보았다. 일행이 관(棺)과 함께 공항으로 떠나려 하는 순간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댈러스 시 검시관 얼 로즈가 나타나서 텍사스 주법에 의해 주내에서 발생한 살인 피해자는 댈러스 검시관의 검시가 없이는 텍사스 주를 떠날 수 없다고 했다.

당시는 대통령 암살이 연방범죄가 아니기 때문에 검시관의 주장이 법적으로는 맞았다. 케네디의 비서실장 케네스 오도넬이 검시에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었더니 해부를 해야 해서 12시간에서 24시간 걸린다고 했다. 기가 막힌 오도넬은 “이 xx, 비켜”(Get the f*** out of it!)하고 소리를 쳤지만 검시관은 못 나간다고 버텼다. 소란이 생기자 댈러스 경찰관들이 달려왔다. 백악관 경호원들이 권총을 뽑을 기세로 케네디의 관을 밀고 나가자 검시관과 경찰관들이 물러섰다. 이렇게 해서 백악관 팀은 케네디 관을 영구차에 실고 댈러스 공항에 도착했다. 대통령 전용기로 무거운 관을 옮기는 것이 큰일이었다. 무거운 관을 백악관 팀원들이 트랩으로 올리는 과정에서 관의 손잡이가 망가지는 등 손상을 입었다. 일행이 전용기에 올라온 시간이 오후 2시였고 판사가 도착해서 존슨이 비행기 속에서 대통령 취임선서를 하고 출발한 시간은 오후 2시 30분이었다.

워싱턴 DC로 비행하는 동안 재클린은 뒤쪽에 놓인 관(棺)을 옆에서 지켰다. 케네디의 주치의인 버클리 제독이 재클린에게 시신을 해부해야 한다고 설득하면서 육군병원과 해군병원 중 어디로 하겠냐고 물었다. 재클린은 케네디가 해군 출신이라면서 베데스다 해군병원으로 하자고 했다. 전용기가 앤드류 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6시였다. 공항에서 기다리던 로버트 케네디는 이제는 대통령인 존슨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재클린에게 다가 가서 "Hi Jackie, I am here“라고 하고 재키를 부축했다. 두 사람은 해군 병원 차량에 케네디의 시신을 싣고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그날 저녁 공항에서 존슨은 자신이 대통령임에도 완전히 무시당한 느낌을 받았다.

베데스다 해군 병원에서 7시 35분부터 시작된 해부 검시는 자정이 넘어서야 끝났다. 검시를 한 두 의사는 케네디가 후방에서 날라 온 총탄 두 발을 맞았다고 결론을 내렸다. X-레이는 케네디의 두 개골을 때린 탄환은 부셔져서 파편으로 케네디의 뇌 속에 흩어져 있음을 보여 주었다. 등으로 들어온 총탄은 몸속에서 발견할 수 없었고 댈러스 병원에서 목을 절개하면서 총탄이 빠져 나온 곳이 훼손됐음이 밝혀졌다. (케네디의 몸을 관통한 총탄은 나중에 댈러스 병원에서 존 코넬리 주지사를 응급실로 옮긴 환자 이송용 들것에서 발견돼서 큰 논란을 일으킨다.)

베데스다 병원에 도착한 케네디의 관은 손잡이가 훼손됐을 뿐만 아니라 시신에서 나온 액체가 관 바닥을 적셔서 더 이상 사용할 수가 없었다. 로버트 케네디와 케네스 오도넬은 워싱턴의 유명한 고울러(Gawler) 장의사에 연락해서 2,000 달러짜리 마호가니 관을 주문했다. 해부가 끝나자 케네디의 시신을 보전처리(embalm)해야만 했다. 문제는 케네디의 머리가 너무 많이 훼손돼서 파라핀 등을 사용해서 복구해야 만 했다. 그 절차가 끝난 시각이 11월 23일 오전 4시였다. 미국은 장례식에 앞서 관을 열어서 고인의 모습을 보도록 하는 게 관습이고 링컨, 루스벨트 등 역대 대통령도 장례식 전에 그런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장례사가 복원한 케네디의 모습이 마치 밀납 인형 같아서 재클린은 절대로 그런 모습을 공개할 수는 없다고 해서 시신 공개(viewing)는 하지 않기로 했다. (이를 기점으로 대통령 장례식에서 시신 공개는 하지 않게 됐다.)

이렇게 해서 케네디는 마호가니 관에 눕혀져서 백악관 이스트 룸에 도착했다. 그 시각은 11월 23일 새벽이었고, 재클린은 비로서 피 묻은 핑크 색 옷을 벗을 수 있었다. 거실로 올라간 재클린은 파리에 있는 디자이너 위베르 지방시에게 전화를 걸어서 장례식에 입을 상복(喪服) 제작을 부탁했다. 지방시가 부지런히 상복을 만들어 보내서 재클린은 그 유명한 망사 상복을 입고 장례식에 참석하게 된다.

장례식이 끝난 후에도 정리되지 않은 일이 하나 있었다. 댈러스에서 급하게 마련한 3,995 달러짜리 관 문제였다. 로버트 케네디는 정부가 그 대금을 지불하도록 요청했다. 연방 총무처(GSA)는 너무 비싸다고 해서 장의사측은 3,495 달러로 가격을 내렸다. 그러다가 장의사측은 관을 도로 보내주면 돈을 안 받겠다고 했다. 어느 콜렉터가 10만 달러(현재로는 100만 달러)에 그 관을 사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문제가 크다고 생각한 총무처는 대금을 지급하고 그 관을 미국 정부 소유물로 관리하게 됐다.

법무장관을 그만 두고 상원의원이 된 로버트 케네디와 재클린은 케네디를 댈러스에서 워싱턴으로 옮겨 온 관(棺)이 남아 있으면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이들의 부탁에 따라 총무처는 이 관을 케네디 가족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처리하기로 했다. 1966년 2월 18일, 이 관은 구멍을 여러 개 내고 모래 자루를 잔뜩 채운 후 앤드류 공군공항에서 공군 C-130 수송기에 실려서 낙하산을 매달고 델라웨어 해변에서 100마일 떨어진 대서양의 수심 9,000 피트 되는 깊은 바다에 잠겼다. 그 바다는 생전에 케네디가 요트를 즐겨 타던 곳에서 멀지 않았다. 해군 장교로 2차 대전에 참전해서 해군 장병이 수장(水葬)되는 모습을 본 케네디는 자기가 죽으면 바다에 뿌려지면 좋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는 알링턴 묘지에 묻혔으나 그의 육신을 잠시 담았던 그 관이 바다에 묻힌 것이다. 미국 정부는 이 사실을 비밀로 분류해 오다가 1999년에야 비로서 공개되어 알게 됐다.

그러면 재클린이 입었던 피 묻은 핑크 색 옷은 어떻게 됐나 ? 재클린은 그 옷을 세탁하지 않고 보관했다. 재클린이 사망한 후 딸인 캐롤라인이 보관해 오다가 2003년에 최소한 2103년까지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미국 정부에 기증했다. 현재 이 유명한 옷은 연방정부 문서보관소의 철통같은 관리 하에 있다. 재클린은 댈러스에서 핑크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그 모자는 행방불명이다. 댈러스의 병원에 도착한 후 클린트 힐이 자동차 바닥에 이 모자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집어서 재클린의 비서인 매리 갤러거에게 전했는데, 갤러거는 그 후 백악관을 그만 두었고 그 모자에 대해 행방을 모른다고 답했다. 아마도 누군가 몰래 갖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재클린은 케네디가 그 날 입었던 피와 뇌수가 흥건한 옷을 돌려 달라고 했으나 법무부는 그것이 범죄 관련 물품이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피 묻은 케네디의 옷도 정부 문서보관소에 있다. 케네디와 재클린이 운명의 날에 입었던 옷의 실물을 보기 위해선 앞으로 100년은 지나야 할 것이다.

사진 (1) : 댈러스 공항에서 케네디 시신을 담은 무거운 관이 전용기 트랩을 오르고 있다. (22일 오후 2시)
사진 (2) : 앤드류 공군공항에 도착해서 관을 내리는 모습 (22일 오후 6시 30분)
사진 (3) : 앤드류 공항에서 로버트와 함께 출발하는 모습
사진 (4) : 베데스다 해군 병원에 도착하는 모습 (22일 오후 7시)
사진 (5) : 백악관 이스트 룸에 안치된 케네디 유해. (23일 새벽) 재클린이 핑크 색 옷을 입고 찍은 마지막 사진이다. 옆에 로버트가 같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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