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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Single Bullet Theory'
작성일 : 2023-09-14 13:29조회 : 106


'Single Bullet Theory'


케네디 암살 당시 경호원이었던 폴 랜디스가 60년 만에 케네디와 코넬리 주지사를 관통한 것으로 알려진 총탄('Magic Bullet')이 코넬리의 들것이 아니라 리무진 뒷좌석에서 나온 것이라고 증언함에 따라 케네디 암살에 대한 논의가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워렌 위원회의 결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지만 ‘Single Bullet' 이론을 불신하고 제2, 제3의 저격수가 있었다는 가설을 주장해 온 사람들은 뜻하지 않은 새로운 증언에 힘을 얻고 있다.

우선, 어떻게 해서 워렌 위원회가 'Single Bullet Theory'를 지지하게 됐나를 보기로 한다. 이를 위해선 케네디 시신에 대한 부검 결과가 어떻게 나왔나는 보아야 한다. 11월 22일 12시 30분에 피격된 후 파클랜드 병원에 도착한 케네디는 들것에 실려서 응급처치실로 들어갔다. 아직은 심장이 뛰고 있어서 응급실 의사들은 케네디의 목을 절개하고 산소를 공급하는 튜브를 삽입했다. (이것을 ‘tracheostomy’라고 부른다.) 그 때 의사들은 케네디의 목에 마치 총탄이나 파편이 들어간 듯한 상처를 보았다. 이들은 바로 그 곳을 절개하고 튜브를 삽입했다. 그럼에도 뇌가 파손된 케네디는 곧 심장박동을 멈추었다.

당시는 대통령 암살이 연방범죄가 아니라서 살인사건 피해자는 텍사스 주법에 의해 텍사스 검시관의 부검이 필요했다. 부검을 기다리는 도중에 시신 부검을 월터리드 육군병원이나 베데스다 해군병원에서 하는 것이 좋겠으며 댈러스에 존슨 부통령이 머무는 것이 위험하다고 의견을 모아서 케네디의 시신을 급하게 주문한 구리 관(棺)에 넣어서 댈러스 공항으로 옮겼고, 일행과 케네디 시신은 대통령 전용기(Air Force One)에 탑승했다. 이 자리에서 존슨 부통령은 대통령 취임 선서를 했다.

일행을 태운 대통령 전용기는 앤드류스 공군기지에 도착했고 케네디 시신은 부검을 위해 베데스다 해군병원으로 이송됐다. 재클린과 로버트 케네디는 부검을 간단하게 빨리 끝내기를 원했다. 베데스다 해군 병원의 의사들은 케네디의 등 오른쪽 목 아래 5인치 되는 곳에 총탄 삽입구(entry wound)가 있음을 보았다. 의사들은 금속 탐지기를 이용해서 케네디의 몸 속에 금속이 있나를 살폈으나 발견하지 못했다. 의사들은 총탄이 몸을 관통하고 나간 사출구(exit wound)를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 의사들은 새끼손가락을 등에 난 삽입구 상처에 넣어 보았더니 새끼손가락이 절반 밖에 들어가지 않았다. 총탄이 어떻게 됐는지를 이해 할 수 없었던 의사들은 매우 곤혹스러웠다. 그러던 중 댈러스의 파클랜드 병원에서 총탄이 발견됐으며 연방요원에게 전달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에 베데스다 병원의 부검의들은 케네디의 심장을 살리기 위해 가슴을 힘을 가해 마사지하는 과정에서 총탄이 몸 밖으로 튀어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검의들은 케네디의 두개골을 파열시킨 총탄이 후방에서 날라 왔다고 결론 내렸으며 뇌 속에 파편 여러 개가 흩어져 있다고 확인했다. 의사들은 이런 내용을 담은 부검 의견서를 작성했다. 베데스다 병원은 훗날을 위해서 케네디의 뇌를 제거해서 포르말린 액이 들어있는 용기에 넣어 보존하기로 했다. 이런 과정은 로버트 케네디와 재클린 외에도 두 명의 FBI 요원이 지켜보았다. 케네디의 시신은 급히 마련한 마호가니 관(棺)에 넣어서 백악관으로 이송했다. 백악관으로 돌아온 시각은 11월 23일 새벽이었다. 재클린은 비로소 침실로 가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11월 23일 아침, 케네디 시신을 부검한 베데스다 해군병원의 의사들은 파클랜드 병원의 의사들로부터 케네디의 목에 총탄 사출구나 삽입구 같은 상처가 있었으며 그곳을 절개하고 산소 튜브를 삽입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전화를 받은 베데스다 병원 의사들은 케네디의 등으로 들어간 총탄이 목으로 사출됐다고 부검 의견서를 고쳐서 다시 작성했다. 그러면서도 베데스다의 의사들은 등에 난 삽입구와 목에 난 사출구가 일직선이 아니라서 의문을 가졌으나 케네디 시신은 이미 백악관에 가 있어서 더 이상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통상적인 경우라면 총탄 삽입구에서 사출구에 이르기까지를 절개해서 확인해야 했으나 그것이 불가능했다. 

댈러스 경찰은 교과서보관소 건물 6층에서 조준경이 달린 카케노 소총과 탄피 3개를 발견했다. FBI는 파클랜드 병원 응급실에서 발견된 총탄이 카케노 소총에서 발사된 것으로 확인했다.  FBI는 카케노 소총에서 3발이 발사돼서 두 개가 케네디를 맞추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FBI는 볼트 방식으로 수동으로 장전해서 발사하는 카케노 소총은 아무리 숙련된 사격수라 하더라도 1발 발사에 최소한 2.3초가 걸린다고 결론 내렸다. 따라서 6초 동안에는 3발 보다 더 많이 발사할 수 없다고 보았다. 

FBI는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만나서 총성을 몇 발 들었으며 어디에서 총성이 났느냐를 조사했다. 상당수 사람들은 4발을 들었고 특히 모터케이드 진행 방향이던 앞에서 총탄이 날라 오는 듯했다고 진술했다. 경호차량이 타고 있던 비서실장 케네스 오도넬과 총무비서 데이비스 파워스도 양쪽에서 총성이 나는 듯했다고 진술했다. 두 사람은 2차 대전에 참전했기 때문에 총소리에 친숙한 편이었다. 제푸루더라는 사람이 촬영한 8미리 영사기 필름에 피격 당시의 케네디와 코넬리의 모습이 잡혔는데, 케네디가 주먹을 쥐고 목을 가리면서 괴로워하고 1, 2초 후에 코넬리가 괴로워하는 모습이 잡혔다.

워렌 위원회는 총탄이 날라 와서 케네디와 코넬리를 맞춘 상황을 구성해야만 했다. 제푸루더 필름을 여러 번 본 후 위원회 연구진은 카케노 소총으로 케네디와 코넬리를 순차적으로 사격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들은 한 개의 총탄이 케네디를 관통해서 코넬리를 맞췄을 것이라는 가설을 만들어 냈다. 교과서보관소 건물 6층에서 탄파가 3개 나왔고, 총탄 한 개가 코넬리를 옮긴 들것에서 나왔음에 근거해서 총탄 문제를 검토하던 분과위원회는 1개의 총탄이 케네디의 등으로 들어가서 목으로 나온 후 코넬리의 갈비뼈와 손목뼈를 부수고 허벅지에 떨어졌다는 가설을 만들어 냈다.

이런 가설을 정설로 만드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워렌 위원회의 분과에서 일한 알렌 스펙터(Arlen Specter 1930~2012) 변호사였다. 그래서 알렌 스펙터는 ‘Single Bullet Theory’의 아버지라고 불리는데 그는 1981년부터 30년 동안 상원의원을 지냈다. 따라서 ‘Single Bullet Theory’는 과학적 귀결이 아니라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어서 이를 결론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말하자면 설명이 되지 않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그럴싸한 가설을 결론으로 삼은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존 코넬리 주지사와 옆에 타고 있던 그의 부인 넬리 여사는 케네디가 등에 총을 맞고 난 후에 코넬리가 다른 총탄에 맞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처럼 ‘Single Bullet Theory’는 그 자체가 매우 취약했다. 그러다가 60년이 지나서 폴 랜디스가 ‘Magic Bullet’은 케네디 부부가 앉았던 리무진 뒷좌석에서 자기가 발견했다는 증언하고 나옴에 따라 ‘Single Bullet Theory’는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이는 당일 현장에 제2, 제3의 저격수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에 그 여파는 간단치 않다. (계속)

- 사진 (1) : 케네디 피격 직후 댈러스 파클랜드 병원 응급처치실 밖의 모습. 대통령 리무진과 경호실 차량을 주차해 놓은 모습이 보인다. 댈러스 경찰의 사복경관들이 경비를 하고 있다. 
- 사진 (2) : 케네디 시신을 실은 앰블란스가 앤드류스 공군기지에서 베데스다 해군병원으로 출발하려고 하고 있다. 재클린 뒤에 로버트 케네디가 있으나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오른 쪽에 양복을 입고 있는 키가 작은 젊은이가 폴 랜디스 경호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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