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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치범과 잡범
작성일 : 2023-09-21 16:14조회 : 84


정치범과 잡범


검찰이 단식 중인 이재명 대표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가운데,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이를 두고 “수사받던 피의자가 단식해서 자해한다고 해서 사법시스템이 정지되는 선례가 만들어지면 안 된다. 그러면 앞으로 잡범들도 이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장관의 이런 발언에 고무됐는지, 조선일보에는 ‘잡범과 정치범을 구별하는 법’이란 사내 칼럼이 실렸다. 칼럼은 “정치범은 나라 미래 생각하고 잡범은 오로지 출소 후 걱정‘을 한다면서 ‘정치 잡범’의 농단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동훈 장관이 재치있는 발언으로 주목을 사는 것은 좋은데, ‘잡범’이란 단어를 쓴 이번 발언은 부적절했다고 생각한다. 법무장관이 ‘잡범’이란 단어를 사용하면 검찰 수사를 받는 피의자나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범죄인 중에는 잡범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범죄인도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사실을 말한다면 교도소에 있는 사람은 잡범도 아니고 비(非)잡범도 아니며, 단지 유죄판결을 받은 범죄인일 뿐이다.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범죄인도 인간이고 국민이기 때문에 함부로 잡스럽다고 폄하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법무장관이라면 말이다.

조선일보 사내 칼럼은 한술 더 떠서 이상한 논리를 펴고 있다. 조선 칼럼은 “정치범은 나라의 앞날을 생각하는 반면, 잡범은 오로지 출소 후를 생각한다. 정치범은 이념 투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잡범은 졸개를 모아서 선동을 한다.”고 썼다. 그러면서 ‘정치 잡범’의 농단을 막아야 한다고 하니, ‘정치 잡범’은 또 무언지 모르겠다. 그 논지를 보면, 이재명은 ‘정치잡범’이고, 좌익 반미 운동을 펼치다가 교도소를 간 386 운동권은 “나라의 앞날을 생각하는 정치범”이었다는 의미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 문화원와 연세대 건물에 불을 지른 사람들이 나라의 앞날을 생각했다는 논리는 조금 거북하지 않은가 ? 혹시 지금도 우리 교도소에는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정치범이 있다고 말하려는 것인가 ?

1970~80년대 영국은 북아일랜드 지역의 소수파인 가톨릭 인구를 대변한다는 아일랜드 공화군(IRA)의 테러 행위로 혼란스러웠다. 영국 본토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해서 많은 민간인이 사망했다. 1979년 8월에는 영국 왕족인 마운트배튼 경(卿)이 이들이 설치한 폭탄으로 사망했다. 감옥에 수감 중이던 보비 샌즈(Bobby Sands) 등 IRA 멤버들은 자신들을 정치범으로 대우해 달라면서 단식투쟁을 벌였다. 당시 영국 총리는 대처였다. 마가릿 대처는 “그들이 죽인 희생자들은 선택할 자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선택해서 단식을 하고 있다”면서 그들의 요구를 수용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밝혔다. 단식 중인 보비 샌즈는 옥중 출마로 하원의원 선거에 당선됐으나 두 달 단식 끝에 사망했다.

그 때 대처는 “Crime is crime is crime; it is not political."이란 유명한 말을 남겼다. 보비 샌즈가 죽고 난 후 9명 수감자가 단식 끝에 연이어 사망했지만 대처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 IRA 수감자들의 단식투쟁은 대처를 바꾸지는 못했지만 이 후 신페인당이 북아일랜드에서 가톨릭 주민들을 대표하는 정치세력으로 부상하는데 기여했다. 1984년 10월, 대처가 참석한 회의장에서도 폭탄이 터졌으나 대처는 다행히 다치지 않았다. 범죄는 범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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