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케네디, 존슨, 야보로

작성일 : 2023-10-10 10:16조회 : 446

케네디, 존슨, 야보로

1963년 11월 22일 케네디 대통령과 일행은 아침 9시에 텍사스 포트워스 상공회의소가 주관하는 성대한 조찬 모임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이에 앞서 케네디는 일행이 묵고 있는 텍사스 호텔 앞에서 간단한 연설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가랑비가 흩날리는 아침에 케네디의 연설을 보려고 모여들었다. 그날 연단에는 랠프 야보로 상원의원, 존 코넬리 텍사스 주지사, 그리고 린든 존슨 부통령이 케네디의 뒤에 섰다. 세 사람은 모두 코트를 입었으나 케네디는 진한 곤회색 양복 차림이었다. (사진 1) 존슨은 표정이 매우 안 좋은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존슨, 야보로, 코넬리는 모두 텍사스 출신이지만 진보적인 야보로 상원의원은 존슨 부통령과 코넬리 주지사를 아주 싫어했고, 두 사람도 야보로를 싫어해서 마주 보기도 거부할 정도였다. 이런 불화는 텍사스 언론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보도가 돼서 케네디 대통령과 참모들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케네디가 텍사스를 순회 방문한 중요한 목적은 텍사스 민주당의 결속을 기해서 이듬해 대선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1960년 대선에서 텍사스와 일리노이에서 간신히 승리해서 대통령이 된 케네디는 텍사스 민주당의 내분으로 텍사스가 민주당에서 이탈할 가능성을 걱정했던 것이다. 그러면 야보로와 코넬리는 어떤 사람이었나?

랠프 야보로(Ralph Yarborough 1903~1996)는 빈한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사범대학과 텍사스대 로스쿨을 나오고 변호사를 하다가 2차 대전 후 오스틴에서 판사를 지냈다. 민주당원으로 주정부 선출직에 도전한 끝에 1957년 상원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됐고 1958년에 재선에 성공했다. 농민과 노동자, 그리고 흑인 인권을 중시한 그는 당시 남부에선 보기 드문 진보 성향 정치인이었다. 케네디 대통령은 야보로 의원을 좋아 했으나 같은 텍사스 출신인 존슨 부통령은 야보로를 매우 싫어했다. 야보로는 흑인차별을 철폐한 1964년 민권법에 찬성한 유일한 남부 출신 상원의원이었다. 진보적 성향인 그는 1970년 상원의원 선거 민주당 프라이머리에서 보다 보수적인 로이드 벤슨에게 패배했고 1972년 상원 도전에도 실패한 후 변호사로 여생을 보냈다.

존 코넬리(John Connally Jr. 1917~1993)는 텍사스대 로스쿨을 나온 후 변호사를 하다가 2차 대전에 참전했다. 전후에 석유회사를 대변하는 로펌에서 일하다가 린든 존슨을 만났고 1948년에 존슨이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하자 선거 운동을 지휘했으며 그 후 존슨의 핵심 참모로 활동했다. 부통령이 된 존슨은 코넬리를 케네디 정부의 해군장관으로 임명되도록 했다. 해군장관으로 지명도를 높인 코넬리는 1962년 텍사스 주지사 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무난하게 당선됐다. 당시는 임기가 2년이던 주지사를 3연임한 코넬리는 닉슨 행정부가 들어서자 다시 변호사 업무로 복귀했고, 1971년 초 닉슨에 의해 재무장관이 돼서 1972년 6월까지 있으면서 달러화의 금태환 이탈 등 중요한 결정을 이끌었다. 그 후 ‘닉슨을 지지하는 민주당원’이란 모임을 이끌면서 닉슨의 1972년 재선을 도왔다. 닉슨은 코넬리를 통해서 남부의 지지를 획득하고자 했다.

1963년 11월 22일 아침에 텍사스 호텔에 묵고 있던 케네디 일행의 호텔 방에 배달된 댈러스 모닝뉴스의 1면 헤드라인은 ‘야보로, 존슨을 외면하다’(Yarborough Snubs LBJ)였다. 또 다른 댈러스 신문은 ‘닉슨, 케네디가 존슨을 버릴 수 있다고 예측하다’(Nixon Predicts JFK May Drop Johnson)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또한 댈러스 신문들은 이듬해 대선에서 케네디-존슨 티켓은 공화당 대선후보로 유력한 배리 골드워터에게 52대 48로 텍사스에서 지고 있지만 랠프 야보로 의원은 상원의원 선거에서 누구를 상대해도 승리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크게 보도했다. 22일 아침 모임에 참석할 사람들이 모두 이 기사를 읽었을 것이니 존슨 부통령의 체면은 말이 아니었다.

11월 21일 샌안토니오와 포트워스에서의 일정을 끝내고 호텔에 들어온 케네디가 밤늦게 해결해야 했던 일은 다음날 댈러스 모터케이드에 야보로와 코넬리가 누구 자동차를 타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샌안토니오에서 야보로 의원은 존슨 부통령의 오픈카에 동승하기를 거부하고 다른 차에 편승했다. 댈러스 신문들은 이를 보도하면서 존슨이 야보로에게 자기 차에 함께 타자고 두 번이나 요청했으나 야보로가 거부했다고 썼다. 실제로 케네디는 케네스 오도넬 비서실장에게 “야보로를 존슨의 자동차에 집어넣으라”고 지시하고 “야보로가 존슨의 차를 타기 싫으면 걸어오는 수밖에 없다”고 화를 냈다. 22일 아침에 케네디는 야보로 의원한데 “나와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존슨 차에 타라”고 직접 이야기했다. 야보로는 케네디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지는 여러 사람의 증언으로 확인된 사실이다.

21일 밤늦게, 케네디는 존슨과 통화하면서 야보로 문제를 이야기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는데, 이런 가설이 있다. 존슨이 케네디의 리무진에 야보로가 타고 코넬리는 자기 차를 타는 게 좋겠다고 케네디에게 여러 차례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텍사스를 방문한 대통령은 텍사스 주지사와 함께 리무진을 타는 것이 당연할 뿐더러 언론이 야보로와 존슨과의 관계를 주목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주지사를 젖혀 놓고 야보로와 함께 리무진을 탄다면 그 자체가 텍사스 민주당의 분열상을 보여주기에 충분했기 때문에 케네디는 존슨의 요청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결국 11월 22일, 댈러스에서 케네디 부부는 코넬리 주지사 부부와 함께 타고, 야보로 의원은 존슨 부통령 부부와 함께 타고 모터케이드 행진을 하게 됐다. 그리고 그 결과로 케네디는 사망했고 코넬리는 중상을 입었다.

이것을 두고 그날 댈러스에서 저격이 있을 것을 알고 있는 존슨은 자기와 가까운 코넬리 지사는 자기 차에 타고 야보로는 케네디 리무진에 태워서 야보로를 암살자의 총탄에 노출시키려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 전날 밤 케네디와 존슨이 전화로 어떤 대화를 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저격 순간이 오기 전에 미리 몸을 숙인 존슨이라면 그런 계산을 충분히 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사진 (1) : 뒤 왼쪽부터 야보로, 코넬리. 존슨. 1963년 11월 22일 포트워스 텍사스 호텔 앞. 존슨의 표정이 좋지 않다.
사진 (2) : 텍사스 호텔을 나오는 케네디 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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