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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유대인 뉴올리언스
작성일 : 2023-10-16 11:05조회 : 407
유대인 뉴올리언스
최근 가자 사태를 둘러싸고 미국 대학이 혼란을 겪고 있다. 목소리가 커진 아랍계 학생들이 반(反)이스라엘 시위를 하자 이에 맞서 유대계 학생들이 하마스 규탄 시위를 하는 등 심상치 않다. 흔히 유대인을 돈과 권력이 있는 집단으로 생각하지만 개신교의 나라 미국에서 유대인은 반유대(anti-semetism) 편견에 시달렸던 소수자였다. 그런 탓에 유대인들은 선거에서 민주당을 지지해 왔다. 최초의 유대인 대법관이었던 루이 브랜다이스 등 유대인 법률가들도 진보 성향이었다.
미국에는 개신교 교단과 가톨릭 교단이 세운 사립대학이 많지만 오늘날 그런 대학에서도 종교적 색채는 많이 사라졌다. 조지타운대학의 경우만 해도 그 대학이 가톨릭 제수이트 대학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교육열이 높은 유대인들은 대학 진학률이 높지만 유대교가 운영하는 대학은 신학교를 제외하곤 없는 편이다.
유대인이 많이 사는 뉴욕에선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아이들이 정체성을 잊을까 걱정해서 유대인 대학 커뮤니티를 만드는 운동을 벌였다. 더 나아가서 이들은 19세기 말에 에쉬바 대학(Yeshiva University)을 설립했다. 유대인 학생들을 유대인답계 가르친다는 목적으로 세워진 이 대학은 지금도 학부생은 전원 유대인이고, 로스쿨 등 대학원에도 유대계 학생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2차 대전 후에 매사추세츠의 작은 도시에 유대인들이 세운 브랜다이스 대학은 크지는 않지만 명문대학 반열에 든다. 최초의 유대인 대법관 루이 브랜다이스의 이름을 딴 이 대학은 진보적 성향이 강해서 이제는 이스라엘 정부나 유대계 재계 인사들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급진 좌파 흑인 운동가 앤젤라 데이비스가 브랜다이스를 나왔고, 클라렌스 토머스 대법관 인준 청문 때 성희롱을 들고 나온 흑인 여자 교수 애니타 힐이 오클라호마 로스쿨에서 파면된 후 옮겨간 대학이 브랜다이스 대학이니까 그 대학의 성향을 짐작할 만하다. 브랜다이스 대학은 더 이상 유대인의 대학이라고 하기 어려울 듯하다.
대도시 인구 집중이 심해지자 도시에서 자라고 일하는 유대계 젊은이들을 타깃으로 한 대학이 1970년에 생겨서 대성공을 거두었는데, 바로 투로 대학(Touro University)이다, 뉴욕 맨해튼의 건물을 여러 곳을 캠퍼스로 만들어서 시작한 이 대학은 여러 도시로 번져나갔다. 유대인들이 돈을 모아서 세운 이 대학은 유대교 정신을 강조하는 교육을 하는데, 등록금은 보통 사립대학의 1/3도 안 된다. 잠재적인 학생들을 찾아서 대도시 한복판 건물 속에 대학을 세운 것이니, 사람도 없는 시골에 대학을 세워서 모두 망하게 만든 우리와는 비교가 된다. 투로 대학은 현재 학부생이 약 5,000명인데 그 중 60%인 3,000명이 유대인이다.
‘투로’는 19세기 초에 뉴올리언스에 정착해서 사업가로 성공한 남부 유럽계 유대인 쥬다 투로(Judah Touro 1775~1854)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던 뉴올리언스에는 남부 유럽에서 건너온 유대인이 일찍이 정착해서 살았고 천성이 근면한 이들은 성공했는데, 유다 투로가 대표적이었다. 그는 소매와 무역으로 거부(巨富)가 됐고 그렇게 모든 돈을 사회사업과 장학사업에 썼다. 그래서 뉴올리언스에는 ‘투로’ 동네와 거리가 있고 '투로' 이름을 붙인 시냐고그와 병원 등 여러 시설이 있다.
미국에서 100위 순위에 드는 좋은 대학의 학부학생 중 유대인의 비중은 주립대학의 경우는 대체로 10% 미만이고 사립대학의 경우는 10~20%를 차지한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컬럼비아는 22.5%, 예일은 12%, 하버드는 9.8%. 에모리는 17.8%이다. 예쉬바 같은 유대교 대학을 제외하고 유대인 학생 비중이 가장 높은 대학은 내가 공부를 한 튤레인(Tulane)이다. 최근 통계로 학부생 7300명 중 3200명이 유대인으로 그 비중은 43.8%이다. 유대인이 세운 브랜다이스가 35%에 불과하니까 예쉬바 대학과 투로 대학을 제외하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유대인 대학’인 셈이다.
내가 튤레인에서 공부를 하던 1980년 전후에도 학부생의 절반이 유대인이라고 했다. 유대인 학생이 많아서 10월의 욤 키푸르(Yom Kippur)는 아예 사흘 동안 휴교를 했다. 학교 구내 식당에는 항상 코셔(kosher) 메뉴가 있었고 학교 주변의 샌드위치 가게도 코셔 샌드위치를 팔았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 유대인 학생이 많이 오는가에 대해선 정확한 답이 없었다. 유대인 학생들이 편하게 공부할 수 있는 대학이라고 소문이 나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설명이 있을 뿐이었다. 로스쿨, 의대 등 대학원은 유대인 학생이 10~15%이니까 다른 사립대학과 다르지 않았고, 교수들도 유대인이 특별히 많은 것은 아니었다. 그때 들은 이야기로는 뉴올리언스에서 성공한 유대인들이 대학에 기부금을 많이 내고 또한 이들이 대학 부근의 부촌(富村)에 많이 산다고 했다. 12월 중순이면 유대 명절인 하누카를 맞아 거실에 촛불을 환하게 켜 놓은 대학 주변 주택가는 분위기가 좋았다.
뉴올리언스는 도시 규모에 비해서 유대인의 비중이 크다고 하는데, 그 정확한 사정은 알기 어렵다. 내가 공부하던 시절 뉴올리언스 도심(다운타운) 상권은 유대인과 마피아가 지배한다는 말을 들었다. 시내의 큰 백화점인 메종 블랑쉬(Maison Blanche)를 비롯해서 보석상 등 크고 작은 상점이 유대인 소유였고, 프렌치쿼터의 유흥가는 마피아 소유라고 했다. 뉴올리언스 마피아의 보스는 케네디 대통령 암살의 배후라는 칼로스 마르셀로였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던 메종 블랑쉬는 내가 공부할 적에 이미 경영난이라고 하더니 결국 창업자 가문을 떠나 매각되고 건물은 호텔로 바뀌었다. 뉴올리언스 자체가 휴스턴과 애틀랜타에 밀리고 더구나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치명상을 입어서 도시 규모가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범죄가 기승을 부려서 치안도 엉망이라고 하니 서글픈 생각이 든다.
- 사진 (1) : 유대인 학생이 공부하기 좋은 대학 랭킹. 3개 대학 중 가장 좋은 대학은 물론 튤레인이다.
- 사진 (2) : 어느 뉴올리언스 유대인 가정이 찍어서 올린 하누카 사진. 아이가 네 명인 가족이 화목해 보인다.
- 사진 (3) : 이제는 추억이 돼 버린 Maison Blanche. 1970년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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