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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케네디 저격범 ?
작성일 : 2023-11-19 16:25조회 : 32


케네디 저격범  ?


1987년 어느 날, 댈러스의 정원관리사인 존 래디매커(John Rademacher)는 아들과 함께 케네디가 암살당한 딜리 플라자를 구경하고 잔디 둔턱(grassy knoll)으로 걸어 올라갔다. 그는 흥미 삼아 차 트렁크에서 금속탐지기를 꺼내서 잔디 둔턱을 훑던 중 .222 구경 탄피 두 개를 지표 15센티 아래에서 찾아냈다. 하나는 잔디 둔턱의 나무 울타리에서 3미터 떨어진 곳 지표에서 발견했고 다른 하나는 20미터 떨어진 곳에서 발견했다. 한 개는 탄피에 둥그렇게 자국이 나 있었다. 그는 이 소식을 신문사에 알렸으나 댈러스 지방신문은 잔디 둔턱에서 탄피가 나왔다고 짤막한 기사를 내보내는데 그쳤다.

1992년, FBI 시카고 지부에서 조직범죄를 다루어 오던 잭 셀턴(Zack Shelton)은 은퇴를 앞두고 침례교회 선교자 출신으로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던  조셉 웨스트(Joseph West)에게 케네디 저격범 중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제임스 파일스(James Files 1942~)일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케네디 암살에 관심이 많은 조셉 웨스트는 존 로셀리와 니콜레티에 관한 자료를 많이 모아 놓은 상태였다.

제임스 파일스는 1991년 5월 일리노이의 작은 도시에서 친구와 함께 훔친 차를 몰고 가다가 경찰관 두 명과 총격전을 벌여서 경찰관 한 명이 부상을 입은 사건으로 현장에서 체포돼서 재판을 받고 살인미수로 징역 50년 형을 선고 받고 일리노이 주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그는 2016년 5월에 가석방됐다.)

존 로셀리(John Roselli 1905~1976. 8. 7)는 1975년 6월 24일과 9월 22일 두 차례에 걸쳐 CIA 불법활동을 조사하는 처치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해서 카스트로 암살계획에 대해 의원들의 심문을 받았다. 로셀리가 상원에 출두하기 며칠 전인 6월 19일, 역시 상원에 출두할 예정이던 샘 지앙카나(Sam Giancana 1908~1975, 6. 19)가 자택에서 처참하게 살해됐다. 지앙카나의 죽음을 보고 놀란 로셀리는 LA와 라스베이거스를 떠나서 마이애미로 이사해서 칩거했다. 로셀리는 1976년 4월 23일 상원 특조위원회에 출석해서 이번에는 케네디 암살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7월 들어서 위원회는 추가 질의를 위해 로셀리에 대해 출석요구서를 보냈으나 로셀리는 행방불명이었다. 8월 7일 로셀리의 토막난 시체가 마이애미 부근 바다에 떠 있는 드럼통에서 발견됐다. 

찰스 니콜레티(Charles Nicoletti 1916~1977. 3. 29)는 샘 지앙카나 조직에서 가장 유능한 히트맨, 즉 킬러였다. FBI는 그가 약 20명을 죽였을 것으로 보았다. 니콜레티는 1977년 3월 29일 시카고 근교 레스토랑 주차장에서 자동차 속에서 피격돼서 사망했다. 그는 하원 암살조사위원회에 출석 통지를 받고 있었다. 존 로셀리와 찰스 니콜레티가 케네디가 암살되던 날에 댈러스에서 있었다는 소문이 마피아 사회에서 암암리에 나돌았고, 이 때 제임스 파일스도 같이 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FBI 요원인 잭 셀턴이 전해 들었던 것이다. 

조셉 웨스트는  제임스 파일스에 연락해서 이제는 말을 할 수 있지 않느냐고 설득을 했다. 이런 진지한 노력에 감동한 파일스는 1992년 8월 16일 교도소에서 웨스트를 만났다. 파일스는 살아 있는 동료는 배신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교도소 면회실에서 웨스트와 만나 증언을 하고 그것을 녹화하는데 동의했다.

하지만 정식으로 녹화하기도 전에 웨스트는 심장 수술을 받아야 했는데,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으나 회복 과정에서 그는 사망했다. 그의 부인은 웨스트의 죽음이 자연사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수술로 말을 하지 못했던 웨스트는 필담으로 부인에게 병원에서 나가야 한다는 메모를 전했으나 결국 호흡곤란으로 갑자기 사망했다. 이렇게 해서 웨스트가 하지 못한 녹화작업은 로버트 버논(Robert Vernon)이 인계해서 진행했다. 그리고 파일스는 1993년 5월 3일과 1994년 3월 22일에  자신이 어떻게 케네디를 저격했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인터뷰를 했다.

1998년에 FBI를 은퇴한 잭 셀턴은 제임스 파일스의 진술이 사실에 부합하다고 생각하는 전직 FBI 요원들과 함께 파일스의 주장을 지지하는 활동을 했다. 이렇게 해서 파일스는 2003년 11월 19일에 또 다시 인터뷰 녹화를 했다. 이렇게 해서 파일스의 주장은 널리 알려지게 됐다.

그러면 제임스 파일스는 어떤 사람인가 ? 앨라배마에서 태어나서 자란 그의 원래 이름은 제임스 서튼(James Sutton)이었고 17~18세 때 입대해서 82 공수사단에 배속됐으나 당시 CIA가 비밀리에 라오스에서 벌이던 비정규전 요원으로 투입됐다. 제대 후에는 시카고에서 레이스 카 드라이버로 잠시 일하다가 찰스 니콜레티의 운전기사로 일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샘 지앙카나 조직의 킬러인 니콜레티 아래에서 일하게 됐다. 그리고 그는 니콜레티와 함께 케네디 저격 팀으로 발탁돼서 댈러스로 향하게 된다.

제임스 파일스가 이런 주장을 하자 FBI 요원들이 교도소를 방문해서 인터뷰를 했다. FBI는 그의 이야기가 신빙성이 없다고 발표했다. 주류 언론(mainstream media)은 물론 제임스 파일의 인터뷰를 무시했으며, 오히려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제임스 파일스가 실명으로 언급한 사람들은 모두 죽었기 때문에 검증을 할 수 없었다. 제임스 파일스는 자기는 살아있는 동료는 배신할 수 없다고 전제하고 인터뷰를 해서 생존해 있을 사람은 언급을 하지 않았다. 파일스는 잔디 둔턱에서 케네디를 저격하고 총에서 사출된 탄피에 이빨로 둥그렇게 표식을 하고 그것을 나무 울타리에 올려놓았다고 말했다. 파일스는 20대 초이던 자기가 건방져서(cocky) 탄피에 표식을 하고 현장에 남겨 놓았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로버트 버논은 1987년에 존 래디매커가 잔디 둔턱에서 찾아낸 탄피 중 둥그런 표식이 난 것을 치의학자에 갖고 갔더니 그것이 사람의 이빨로 난 ‘dentmark’라고 확인했다.

짐 마르스(Jim Marrs), 필립 넬슨(Phillip Nelson) 등 케네디는 잔디 둔턱에서 날라 온 총탄으로 치명상을 입었다고 보는 케네디 암살 연구자들은 제임스 파일스의 증언이 진실에 가까울 수 있다고 보았다. 케네디 암살 40주년이 되는 2003년, 제임스 파일의 주장이 타블로이드 신문과 인터넷을 통해 알려졌다. 하지만 주류 미디어는 이를 다루기를 거부했다. 케네디를 우상으로 만들어 놓은 주류 미디어는 이런 뉴스가 불편했다.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 등 케네디 가족들도 이런 뉴스에 관심이 없었다. 케네디 죽음의 진실이 밝혀지면 케네디 가문의 어두운 과거가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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