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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출판기념회

작성일 : 2023-11-28 09:44조회 : 376

정치인의 출판기념회

선거철이 다가오자 여기저기서 출판기념회를 열고 북 콘서트를 한다는 공고를 많이 접하게 된다. 어느 모로 보나 ‘책’과는 거리가 먼 정치인/정치지망생들이 난데없이 책을 냈다고 하니 정상이 아니다. 국회의원이 책을 낼 정도로 시간이 많은 한가한 직업인지도 알 수 없다. 이런 풍경을 우리나라 말고 어느 나라에서 볼 수 있는지 모르겠다.

2007년에 동아일보에 정기 기고를 할 때 <정치인의 책 쓰기>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16년 전에 쓴 칼럼이지만 지금도 유효한 내용이다. 우리나라 정치 행태는 나아지기는커녕 더욱 더 난장판이 되어 버려서 이런 지적은 하나마나다.

* 동아일보 2007년 3월 28일자 칼럼 <정치인의 책 쓰기>
"- - - 언제부터인지 우리나라의 정치인과 정치지망생 사이에선 책을 내고 출판기념회를 여는 일이 유행이 됐다. 정치인이 대필 작가의 도움을 받아 책을 내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신문 잡지에 글 한편 써 보지 못한 사람이 별안간 책을 내는 모습은 정상이 아니다.
정치적 목적을 갖고 펴낸 이런 책은 자기 과시가 있기 마련이다. 또 미래, 선진화, 따듯한 사회, 민족, 통합 등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많다. 그러면서 자기만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식이니, 오늘날 한국에는 출사표를 낸 제갈량이 널려 있는 셈이다. 어떤 책을 보면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가 저자의 등장을 위한 준비과정인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라서 웃지 않을 수 없다.
책도 책이지만 출판기념회라는 명칭을 내걸고 벌이는 거창한 행사도 정상이 아니다. 원래 출판기념회란 힘들여 책을 펴낸 저자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저자의 주변 사람이 열어 주는 조촐한 자리다. 정치인의 출판기념회는 눈도장 찍고 줄서기하고, 세력 과시를 위해 사람을 동원하는 난장판이 돼 버렸다. 책 쓰기마저 정치적 도구로 전락해 버린 우리 세태가 한심하다."

하지만 정치인이 펴낸 책 중에선 추천할 만한 책도 있다. 이용우 의원의 <두 발로 선 경제>와 유승민 전 의원의 <야수의 본능으로 부딪쳐라>가 그러하다. 금융과 경제 분야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 이 의원의 책은 풍부한 실전적(實戰的) 지식을 담고 있다. 유승민 전 의원의 책은 경제학자로서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활동해 온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철학적 배경을 이룬 유학시절부터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에 대한 접근방향에 이르는 많은 내용을 담았다.

이 두 책은 정치인이 펴낸 책으로선 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정치인이 낸 책, 특히 선거를 앞두고 출마 예상자들이 펴낸 책들은 재활용 공장으로 직행해야 할 쓰레기 일 뿐이다. 유승민 전 의원의 책 제목인 ‘야수(野獸)의 본능’('brutal instinct')은 위스콘신 유학 시절 젊고 의욕적인 경제학 교수가 “난관에 처하면 ‘brutal instinct'를 갖고 문제를 풀라”고 강의 중에 한 말이라고 한다. 유 전 의원은 그 후 그것을 좌우명(座右銘)으로 삼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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