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컷오프, 탈당, 창당

작성일 : 2023-11-30 05:50조회 : 359

컷오프, 탈당, 창당

국민의힘이 영남지역 의원을 대거 컷오프 시킨다는 기사가 나오는가 하면 민주당에선 이낙연을 필두로 의원들이 탈당해서 신당을 만들 것이라는 기사가 나온다. 세월은 흘렀으나 정치권이 하는 행태는 똑 같은 반복이다.

현역의원을 여론조사를 통해 하위 25% 컷 오프한 것은 2012년 총선을 앞둔 박근혜 비대위에서 처음 시행했다. 그 논의에 참여했던 정치학 교수 3명이 주장한 것인데, 현역의원 150여 명을 공정하게 평가하려면 여론조사를 3번 해야 하는데,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당 재정을 완전히 들어 먹을 정도로 컸다. 그래서 당 연구소가 대충 한번 해서 결정했는데, 의외의 탈락자가 꽤 있었다. 그리고는 사무총장이 전략공천권을 행사해서 박근혜 위원장과 불편했던 몇몇 의원들을 탈락시킨 것이 ‘쇄신 공천’이었다. 그 때 비례대표 의원들은 TK와 강남 3구, 분당 공천에서 배제했는데, 비례를 두 번 하는 꼴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본다면 현역 비례의원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국회에 진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2015년에 민주당에 김상곤 비대위가 들어서고 조국 교수가 혁신위원장을 했다. 조국 혁신위가 도입한 것이 여론조사를 통한 현역의원 평가였다. 그것은 주류(친문/친노)가 아닌 호남 다선의원들을 공천에서 탈락시키겠다는 시그널로 받아들여졌고, 정기국회가 끝나가고 낙엽이 떨어질 무렵에 호남 다선의원들의 탈당 행렬이 이어졌다. 이들은 신당 창당을 선언한 안철수와 합쳐서 국민의당을 만들어 2016년 총선에서 파란을 일으켰다.

지금 여권과 야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은 그 때와 똑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2012년 총선은 이명박 정권의 마지막 해에 있어서 차기 주자인 박근혜 위원장에게 힘이 들어가 있었지만 내년 총선은 윤 대통령 임기 중간이고 여권의 차기 주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2012년과는 달리 공천에 반발해서 탈당을 하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나올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나는 그런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2015~16년 연말/연시에 민주당을 탈당한 박지원 등 호남의원들은 산전수전(山戰水戰)을 겪은 베테랑들이라서 생존력이 강하지만 영남권의 새누리/국민의힘 의원은 그런 경험도 없고 그런 상상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국민의힘에서 이탈한 의원들이 신당을 만든다는 이야기는 ‘뻥’이라고 본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도 기껏 만든 그쪽 계열 꼬마 정당들이 합당 대열에 동참해서 미래통합당으로 합쳤다. 그리고 그런 합당 쇼에도 불구하고 총선에서 참패했다.

혁신위, 비대위, 탈당, 창당, 합당으로 쳇바퀴 도는 구태(舊態) 정치를 탈피하기 위해선 정당 개혁과 공천제도 개혁이 필요하다고 나는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최고회의니 비대위니 하는 우리나라 정당 지도부 같은 이상한 기구는 세상에 우리 말고는 없다. 우리 정치 발전을 위해선 당 대표와 최고위는 없애고 정당은 원내 중심으로 운영해야 한다. 당원들을 끌어 모아서 휴대전화로 후보를 정하는 우리 방식의 경선도 세상에 없는 일이다. 캘리포니아 등 몇몇 주가 하고 있는 결선투표 방식의 톱 투 프라이머리가 우리 사정에 가장 알맞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래 칼럼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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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톱 투 프라이머리’ 도입을 제안한다 (경향신문 2011년 2월 8일자 칼럼)
여야는 내년 총선에 나설 후보를 ‘국민경선제’로 선출하겠다고 한다. 지난번 대선 때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일각에선 ‘오픈 프라이머리(개방형 프라이머리)’를 통해 후보를 선출하겠다고 했지만, 결국에는 대의원과 기간당원의 투표에 여론조사 결과를 반영해서 후보를 선출했다. 하지만 여론조사를 가미한 ‘국민경선제’는 그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도 후보 선출에 참여하기 때문에 정당제도의 정신과 배치될뿐더러 신뢰하기 어려운 여론조사에 따라 후보가 판가름 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 예비선거때 정당불문 후보 둘 뽑아
정당 지도부가 후보를 하향 공천하는 방식이 신뢰를 얻을 수 없음은 분명하다. 여당 의원들이 청와대가 명령하는 대로 움직이는 ‘거수기’로 전락해 버린 원인도 따지고 보면 집권세력이 행사하는 공천권 때문이다. 야당은 야당대로 당 지도부가 공천권을 갖고 의원과 정치 지망생들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주권자인 국민은 정당의 실세들이 공천이란 이름으로 결정한 후보자를 상대로 투표를 할 수 있을 뿐이니, ‘주권재민(主權在民)’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후보자를 미국에서와 같이 ‘오픈 프라이머리’로 선출하자는 주장은 그 점에서 진일보한 것이다. 그러나 ‘오픈 프라이머리’라고 해서 누구나 아무 제한없이 예비선거에 참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픈 프라이머리’에 참가하는 유권자는 그 해 선거에서 자기가 선택한 특정 정당의 예비선거에만 참가할 수 있다. 이보다 더 나아간 제도인 ‘블랭킷 프라이머리’를 택한 주(州)의 유권자는 주지사, 상하원 의원, 주 의원, 시장 등 선출직 공무원 후보를 뽑는 예비선거에 아무런 제한이 없이 참여할 수 있는데, 미국 대법원은 지난 2000년에 이 제도가 정당의 결사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으로 판결했다.
‘블랭킷 프라이머리’를 시행해 온 워싱턴 주는 2004년 주민투표를 통해 프라이머리에 정당 소속에 관계없이 모든 후보자가 참가하고, 그 중 최고 득표자 2인이 본 선거에 출마하도록 하는 ‘톱 투 프라이머리’ 제도를 도입했다. 미국 대법원은 이 같은 결선투표형 예비선거는 정당의 자치권을 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합헌으로 판결했다. 이에 힘입어 캘리포니아 주도 2012년 선거부터 ‘톱 투 프라이머리’를 실시하기로 했다.
‘톱 투 프라이머리’를 시행하면 예비선거에는 한 정당에서 여러 명의 후보가 나설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예비선거에서 한 정당에 속한 두 명의 후보가 선출되어 본 선거에서 같은 당 후보 2인이 당락을 겨루게 된다. 워싱턴 주에선 이 같은 현상이 실제로 일어났다. 이 제도가 정당의 정체성을 해한다는 이유로 반대하기도 하지만, 워싱턴과 캘리포니아의 유권자들은 주권재민 원칙에 더 부합한다고 보고 있다. 미국의 프라이머리는 폐쇄형에서 개방형으로 발전해 왔는데, 캘리포니아가 ‘톱 투 프라이머리’를 채택해서 다른 주가 이를 본받을지가 주목된다.
나는 우리나라가 총선과 지방선거에 ‘톱 투 프라이머리’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 - - 이로 인해 정당의 기능이 저해될 것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특정 후보를 지지하고 정책을 홍보하는 정당의 기능은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톱 투 프라이머리’를 실시한다면 법을 고쳐 선거관리위원회가 이를 직접 관장해서 공정성을 담보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사진 : 공천개혁안을 발표하는 박근혜 비대위,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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