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헨리 키신저 사망

작성일 : 2023-12-02 19:54조회 : 402

헨리 키신저 사망

헨리 키신저가 100세로 사망했다. 닉슨 정부에서 노동장관과 재무장관, 그리고 레이건 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조지 슐츠(George Shultz 1920~2021)에 이어 또 다시 100세 기록을 세웠다. 국내 언론에 키신저에 대한 기사가 많이 났는데, 매체와 필자에 따라 키신저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고, 또 달라야 한다. 하지만 어느 경우에나 사실(fact)은 정확해야 한다. 중앙일보는 키신저에 관한 제법 긴 기사를 썼다. (‘그가 만난 지도자가 세계 현대사였다’ 중앙일보 입력 2023.12.01 00:01) 하지만 사실을 중심으로 쓴 이 기사는 너무나 오류가 많다. 언론이 이런 기사를 내면 곤란하다고 본다.

“키신저는 적대 관계였던 중국과의 수교를 통해 역사를 새로 썼다. 냉전 시기에 지속된 ‘죽(竹)의 장막’을 걷어내고 1972년 2월 역사적인 미·중 수교를 끌어냈다.”(중앙 기사)
- 중국을 국제무대로 불러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은 닉슨 대통령이었다. 키신저는 그러한 닉슨의 지시를 충실하게 이행했을 뿐이다. 키신저가 중국을 비밀리에 방문했음을 발표하자 타임지는 키신저를 ‘닉슨의 비밀요원’(Nixon's Secret Agent)이라고 지칭했다. 유럽 정치를 전공한 키신저는 아시아와 중남미 등 후진국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수교'라고 함은 정식으로 외교관계를 갖는 것인데, 미국과 중국이 정식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한 날은 1979년 1월 1일이다.

“고인은 1973년 북베트남 정부와 휴전협정을 체결해 미국을 베트남전 장기화라는 수렁에서 건져냈다. 지연전술을 펼치는 북베트남과 패전 책임을 뒤집어쓰기 싫은 닉슨 대통령, 미국 내 반전 여론의 틈바구니에서 미국의 출구전략을 마련했다.”(중앙 기사)
- 베트남 전쟁을 종식시킨 1973년 1월 파리 협정은 ‘휴전협정’이 아니고 ‘평화협정’이다. 파리에서 지루하게 열린 평화회담도 1972년 11월 대선 전에 베트남에서 명예로운 평화를 이루고 철군을 해야 한다는 닉슨의 방침에 따라 진행된 것이다. 북베트남이 결국 평화협상에 임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닉슨 대통령이 1972년 북베트남의 춘계 공세에 대응해서 명령한 대규모 공습작전(Operation Linebacker) 때문이었다. 키신저는 1972년 대선 직전에 “평화가 손에 잡혀 있다”("Peace is at hand")고 발표했고 이에 힘입어 닉슨은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대선 후에 북베트남이 협상에 응하지 않자 닉슨은 또 다시 대규모 공습을 명령했다.(Op. Linebacker II). 공습 작전은 닉슨이 합동참모본부에 직접 명령해서 이루어 졌다. 파리 협상 마지막 순간에 북베트남이 몽니를 부리자 닉슨은 할 수 없이 키신저에게 이면(裏面)합의를 허용했다. 키신저는 레둑토에게 미국은 30억 달러 원조를 별도로 하겠다고 은밀하게 약속했는데, 이 사실이 1976년에 드러나서 논란이 됐다. 대규모 폭격과 30억 달러 이면합의가 없었으면 파리 평화협정은 불가능했다.

- “1970년대 초반 4차 중동전쟁(욤 키푸르 전쟁)이 발발하자 이스라엘과 이집트 등 아랍권을 오가며 중재에 나서 ‘셔틀외교’라는 말이 탄생한 계기가 됐다. (중앙기사)
- 4차 중동전쟁은 1973년 10월 6~25일간 있었던 전쟁이다. 따라서 ‘1970년대 초반’이란 표현은 부적절하다. 키신저는 4차 중동전쟁 휴전을 이룩하고 1978년 9월 캠프 데이비드 협정으로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평화협정을 맺도록 토대를 세웠으니 키신저 외교의 가장 큰 업적이다. 당시 닉슨은 워터게이트로 정상적인 집무가 어려워서 키신저는 독자적으로 외교를 펼 수 있었다. 닉슨 대통령이 이스라엘에 대한 대규모 공수작전(Operation Nickel Grass)을 직접 명령해서 이스라엘은 전쟁으로 소실된 군사력 이상을 확보할 수 있었고, 그러했기에 이스라엘은 키신저의 제안을 받아 드릴 수 있었다. 키신저의 중동외교로 이집트와 요르단은 이스라엘과 평화를 이루었지만 이로 인해 시리아 등 강경 아랍권이 더욱 강경해 지는 계기를 만들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음도 엄연한 사실이다.

“베트남전 당시 베트콩 소탕을 내세워 캄보디아의 비밀 폭격을 승인해 민간인 5만 명이 숨진 배후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중앙 기사)
- 1969년 3월에 시작해서 1970년 5월까지 이루어진 캄보디아 폭격(Op. Menu)은 닉슨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다. 합동참모본부는 캄보디아 영내의 호지민 루트를 폭격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으나 존슨 대통령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으나 닉슨은 임기 초에 이를 명령했다. 당시 로저스 국무장관과 레어드 국방장관은 반대했고 키신저 안보보좌관도 너무 위험하다고 보아 주저했지만 닉슨은 과감하게 폭격을 지시했다. 호지민 루트는 인구가 적은 정글 지대라서 이로 인해 민간인 5만 명이 사망했다는 주장은 근거가 박약하다. 합동참모본부는 캄보디아 폭격으로 인한 부수적 민간인 인명피해가 5000명을 넘지 않을 것으로 평가했다.

“유족으로는 50년간 함께한 낸시 매긴스 키신저와 첫 결혼에서 낳은 두 자녀 데이비드·엘리자베스가 있다.” (중앙 기사)
- 키신저는 하버드 학생 시절인 1949년에 사귀어 왔던 앤 플라이셔(Ann Fleisher)와 조촐하게 결혼했다. 키신저는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하고 테뉴어 교수가 되면서 인맥이 넓어졌고 특히 넬슨 록펠러 뉴욕 주지사의 참모로 상당한 보수를 받는 등 경제적으로도 윤택해졌다. 하지만 내성적이고 가정적인 아내와는 멀어지기 시작했고 1964년에 두 사람은 정식으로 이혼을 했다. 두 사람은 아들과 딸을 두었고 앤 플라이셔는 그 후 다른 교수와 재혼했다. 키신저는 그 후 독신으로 살았고, 안보보좌관으로 유명해 진 후에도 언론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여러 여자들과 사교 모임에 나타나서 화제가 됐다. 키신저는 낸시 매기네스(Nancy Maginnes 1934~)와 1974년 3월에 결혼했다. 낸시 매기네스는 키신저가 대학원 과정에서 가르쳤던 학생으로 넬슨 록펠러 센터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키신저와 낸시 사이에선 자녀가 없다.

닉슨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 마치 키신저가 중국과의 문호를 열고 베트남 전쟁을 종식시킨 것처럼 알려지는데 대해 씁쓸하게 생각했다. 닉슨은 언론을 멀리했고 키신저는 언론을 가까이 하고 또 언론을 이용했다. 안보보좌관 시절에 키신저는 일과 시간의 1/3~1/2을 기자들과의 통화에 썼다. 키신저를 싫어한 미국 대통령이 로널드 레이건과 조지 H. W. 부시였음도 아이러니라고 하겠다. 로널드 레이건은 소련과 중공과의 화해를 추구하는 데땅트 정책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고 대통령 취임 후 데땅트(해빙 외교)의 연장인 SALT II 조약을 폐기해 버렸다. 부시 대통령은 유엔 주재 대사를 지낼 때 안보보좌관이던 키신저가 자기를 어떻게 대했는지를 잊어버리지 않았다. 소련과 동유럽 공산권의 몰락을 가져온 시기인 레이건-부시 12년 공화당 정권에서 키신저의 역할은 없었다. 키신저는 컨설팅 회사를 세워서 크게 성공했으나 그가 벌어드린 돈은 대부분 중동 산유국가와 글로벌 기업으로부터 온 것임도 기억해야 한다.

- 사진 (1) : 키신저가 베이징을 비밀리에 방문하고 와서 닉슨의 중국 방문 계획을 발표한 후에 나온 TIME 표지. 1972년 2월 7일자.
- 사진 (2) : 1973년 1월 1일자 TIME 표지. 1972년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압승하고 파리 평화협정 체결을 앞둔 닉슨은 이 커버를 보고 화를 불 같이 냈다고 전해진다. 닉슨이 키신저를 해임할 수 없었던 이유는, 1968년 대선을 앞두고 존슨 정부가 베트남과 휴전협상을 하려고 한다는 정보를 키신저가 닉슨 캠프에게 비밀리에 알려 주었고 닉슨은 이를 사이공의 티우 대통령에게 전달했던 막후(幕後)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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