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먼로, 디마지오와 결혼하다

작성일 : 2023-12-31 19:54조회 : 295

먼로, 디마지오와 결혼하다

조 디마지오(Joe DiMaggio 1914~1999)는 이탈리아 시칠리에서 미국으로 건너 온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막 일을 하던 중 야구에 천부적 소질이 있음이 알려져서 패시픽 리그 선수로 발탁되어 활약했다. 1936년에는 메이저 리그로 진출해서 뉴욕 양키스를 승리하는 팀으로 이끌었다. 최장기 연속 안타 기록을 세운 타자로 이름을 높인 디마지오는 1951년 말 은퇴했다. 디마지오는 1939년에 결혼했으나 아들 하나를 두고 5년 후 이혼했다.

디마지오는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알려진 선수였지만 스포츠에 관심이 없었던 마릴린 먼로는 디마지오가 이태리 배우인 줄 알았다고 전해진다. 먼로는 메이저 리그를 홍보하는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이 기사를 읽은 디마지오가 자기의 에이전트를 통해 먼로에게 만남을 제의했고 세 사람과 다른 여성이 저녁 식사를 같이 했다. 이때는 1952년 봄으로, 디마지오는 화려하게 은퇴한 직후였고 먼로는 인기가 절정이었다. 먼로는 자기가 디마지오를 만났다는 사실을 알려서 두 사람의 데이트 뉴스가 언론을 크게 장식하자 재미있어 했다. 먼로는 체격이 좋고 옷을 멋있게 입은 디마지오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먼로가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디마지오의 첫 부인은 가수였는데, 디마지오에게 폭력을 당했다는 이유로 이혼 후에 소송을 걸었다는 사실을 먼로는 알지 못했다.

화려한 야구선수 생활로 거부(巨富)가 됐지만 배우자가 없이 사는 외로운 디마지오는 먼로에게 흥미를 갖고 접근했다. 1952년은 먼로에게 최고의 해이었지만 먼로는 외로웠는지 결혼을 하고 싶어 했다. 먼로는 그 때 사귀던 연하의 배우 니코 미나르도에게 청혼을 했으나 미나르도는 감당하기 어렵다고 회피했다. 먼로는 폭스사에서 작가로 일해 온 로버트 슬레처(Robert Slatzer 1927~2005)와도 6년째 만나고 있었다. 그해 10월 두 사람은 결혼을 하기로 하고 샌디에고 남쪽 국경 건너 멕시코 티후아나에 가서 결혼 신고를 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폭스사 임원은 그러면 영화 흥행을 망친다면서 불같이 화를 내면서 두 사람에게 결혼을 취소하고 없는 것으로 하라고 했다. 두 사람은 다시 티후아나에 가서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고 결혼 신고를 없었던 일로 처리했다. 이 사실은 슬레처가 나중에 펴낸 책에서 밝혔고 사실로 확인됐다.

1953년 들어서도 먼로는 결혼을 하고자 했던 두 남자와 계속 만나면서 디마지오와도 만나고 있었다. 1953년은 먼로에게 최고의 해였다. 먼로는 제인 러셀(Jane Russell 1921~2011) 과 함께 할리우드 명예전당 거리에 손자국을 찍었다. 먼로에게는 드라마 코치인 나타샤 리테스(Natasha Lytess 1911~1963), 헤어 디자이너 글래디스 휘튼, 메이크업 담당자 휘트니 슈나이더 등 먼로를 돌보는 스태프가 생겼다. 리테스는 1956년에 먼로 옆을 떠났으나 나머지 두 사람은 먼로가 죽는 날까지 먼로와 함께 했다. (나타샤 리테스는 먼로와 아파트를 같이 쓰기도 해서 동성애 관계였다는 추측도 있다.) 이런 먼로가 디마지오에게 마음을 연 계기는 디마지오 동생의 익사(溺死) 사고였다. 먼로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장례식에 다녀온 후에 디마지오의 가족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게 됐다.

한편, 먼로는 원래부터 있었던 불면증으로 인해 수면제에 더 의존해야 했고 촬영에 늦게 도착하는 경우가 많아서 제작진의 원성을 샀다. 1953년에 <River of No Return>을 촬영할 때에 먼로는 지각을 너무 심하게 해서 제작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다. 그리고 급기야는 1953년 12월 말 폭스사는 먼로와의 계약을 중단한다는 조치를 취했다. 먼로와 함께 영화를 만들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허전해진 먼로에게 디마지오는 결혼을 하자고 졸았고, 먼로는 이에 동의해서 두 사람은 결혼을 발표했다. 최고의 야구선수와 최고의 여배우 간의 결혼은 미국 전역을 강타한 ‘빅 뉴스’였다.

1954년 1월 14일, 디마지오와 먼로는 샌프란시스코 시청 강당에서 판사 주재로 결혼식을 올렸다. 이른바 ‘civil marriage'이었다. 두 사람은 팜 스프링 등에서 묶으면서 신혼을 즐겼다. 그리고 2월 초 팬앰 항공편으로 일본으로 향했다. 하와이에 기착해서 연료를 보충한 프로펠러 여객기는 도쿄에 도착했고 두 사람은 열렬한 환영을 받으면서 제국호텔(The Imperial Hotel)에서 여장(旅裝)을 풀었다. 전후에 일본에선 야구 붐이 일었고, 2년 전에 디마지오는 일본에서 야구 경기를 가진 적이 있었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미국인은 맥아더와 디마지오라고 할 정도라서 도쿄에선 먼로 보다 디마지오가 더 큰 환영을 받았다.

먼로는 일본으로 향하기 전에 주한 미군을 위문하는 공연을 하기로 미군 장성과 약속을 했다. 디마지오는 이에 반대했으나 먼로는 디마지오의 반대를 무시하고 그대로 강행했다. 먼로가 한국에 가는 것을 반대한 디마지오는 그대로 일본에 머물렀다. 2월 쌀쌀한 날씨에 휴전선 남쪽에 위치한 미군 부대를 방문한 먼로는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지프차와 탱크를 타고 또 헬기에 걸터앉기도 한 먼로는 병사들과 스스럼없이 기념촬영을 했다. 휴전 협정이 맺어진 후 반년이 지나서 아직도 긴장이 감도는 전방의 미군 부대를 먼로가 방문했으니, 그것은 일대 사건이었다. 먼로는 인천상륙작전과 장진호 전투를 치른 부대로 우리에게 친숙한 해병 1시단 장병 1만 3천 명이 모인 야외 장소에서 몸매가 드러나는 얇은 선정적인 드레스를 입고 ‘Bye, Bye, Baby' ’Do It Again' 등 자신이 잘 부르는 노래를 정열적으로 불렀다. 먼로는 이 공연을 평생토록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추운 날씨에 어깨가 드러나는 얇은 옷을 입고 공연을 한 먼로는 감기와 가벼운 폐렴 증상을 갖고 일본으로 돌아왔다. 먼로를 맞은 디마지오의 표정은 무표정이었다. 디마지오는 먼로가 미군 장병들과 어울리고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고 무대에 선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쌀쌀한 표정으로 LA로 돌아왔다. 먼로와 디마지오의 결혼은 먼로의 한국행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가정과 가족을 모르고 자란 먼로는 샌프란시스코의 디마지오 가족에 매료되어 디마지오와 결혼했으나 먼로는 그들이 시칠리 사람들이고, 시칠리 사람들은 가부장적이고 남성우위 문화를 갖고 있다는 점은 알지 못했다. 문제는 또 있었다. 두 사람은 똑 같이 고등학교를 중퇴했으나 먼로는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어서 문학과 예술에 밝았으나 디마지오는 운동 외에는 아는 것이 없는 무식쟁이였다. 두 사람의 파경(破鏡)은 처음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 사진 (1) : 할리우드 명예의 전당 도보에서 손자국을 찍는 마릴린 먼로와 제인 러셀. 먼로 보다 5살 많은 제인 러셀도 LA 출신이며, 먼로가 모델을 할 때에 이미 유명한 배우였다.
- 사진 (2) : 일본에 도착한 먼로와 디마지오. 먼로를 취재하는 일본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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