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먼로, 밀러와 결혼하다

작성일 : 2024-01-05 23:15조회 : 279

먼로, 밀러와 결혼하다

1940~50년대 할리우드에선 약물 남용이 심각했다. 제약업의 발전에 힘입어 합성 의약품이 쏟아져 나왔고 할리우드의 배우와 스태프들은 각성제, 진정제, 수면제 등 처방약에 길들여졌다. 불면증에 시달렸던 마릴린 먼로는 세코날, 넴뷰탈 같은 처방약에 의존했다. 약물 남용과 더불어 정신과 의사와의 상담도 할리우드 스타들에게 일종의 유행이었다. 1950년대 미국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이 유행할 때였고, 부유층은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신분의 표상이라도 되는 듯 생각했다. 먼로는 약물과용과 정신과 의사에 대한 의존성을 스스로 키웠다.

뉴욕에서도 먼로는 항(抗)우울제와 수면제 사용을 늘려갔다. 이를 걱정한 밀튼 그린은 먼로에게 마가릿 호헨버그(Margaret Hohenberg 1898~1992)라는 정신과 의사와 정기적으로 상담을 해 보도록 했다. 이렇게 시작한 정신분석 전문의와의 상담이 과연 먼로에게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먼로는 정신과 의사에 대한 의존성을 갖게 됐다. (먼로가 LA 자택에서 죽던 날 밤에도 그녀의 옆에는 정신과 의사가 있었다.)

한편, 뉴욕에서 먼로는 시인인 노만 로스텐(Norman Rosten 1913~1995) 부부와 알게 돼서 가까이 지냈다. 먼로는 시(詩)와 단편소설 그리고 희곡을 좋아했으며 미국 최고의 극작가는 아서 밀러와 테네시 윌리엄스라고 말하곤 했다. 1955년에 먼로는 또 다시 낙태를 했는데, 그녀는 그것이 자신의 13번째 낙태라고 주변에 고백했다. 이런 먼로가 1955년 연말에 자신에게 새로운 연인이 생겼으며 그가 아서 밀러(Arthur Miller 1915~2005)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다. 먼로는 아서 밀러의 작품을 읽어서 밀러를 잘 알았다. 두 사람은 1951년에 공항에서 잠시 만난 적이 있으나 왕래는 없었다. 그러다가 먼러가 뉴욕으로 온 후 노만 로스텐 부부 및 리 스트라스버그 부부를 만나면서 밀러를 만나게 됐다. 먼로는 자기보다 나이가 11살 많은 밀러와 자주 통화를 했으며 밀러의 첫 번째 결혼이 실패로 끝날 것임을 알았다.

아서 밀러는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뉴욕시에서 태어났다. 대공황으로 아버지의 사업이 문을 닫아서 밀러는 일을 하면서 공부했고 미시건 대학을 나왔다. 영문학을 전공한 밀러는 1940년에 첫 부인과 결혼해서 두 자녀를 두었다, 극작가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밀러는 1948년에 코네티컷 록스베리에 전원주택을 지어서 이사를 하고 <Death of a Salesman>을 발표했다. 이 연극이 브로드웨이에서 성공해서 그는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대공황으로 부친이 사업체 문을 닫은 경험을 토대로 평범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 이 희곡으로 그는 퓰리쳐 상을 탔다.

1956년 5월, 먼로는 <Bus Stop>(1956) 촬영을 끝냈다. 애리조나 마을의 장거리 버스 정거장 등 미국 시골을 무대로 한 이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다. 그 즈음 밀러는 네바다에서 이혼 수속을 끝내고 뉴욕으로 돌아왔다. 먼로는 밀러와 결혼을 하고 <The Prince and the Showgirl>을 촬영하기 위해 영국으로 갈 예정이었다. 밀러도 영국에 같이 가려고 여권을 신청해 놓았다. 그런데 뜻밖의 문제가 발생했다. 하원 비미(非美)활동위원회(The House Un-American Activities Committee : HUAC)가 아서 밀러에 대해 위원회에 출두하라는 소환장을 보낸 것이다.

6월 21일 HUAC에 출두한 밀러는 공산당 관련 활동을 묻은 의원들에 대해 자신은 “공산당 모임에 여러 차례 참석해서 사회정의와 평등을 주장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참석자 명단을 대라는 의원들의 요구에 대해 밀러는 답을 하기를 거부했다. 청문회장에는 먼로가 참석해서 밀러를 응원했다. 하지만 위원회는 밀러를 의회모독(Contempt of Congress)으로 기소했고 1957년 5월 연방법원은 밀러에 대해 벌금 500 달러 또는 구금 30일을 선고했다. (밀러는 항소했으며, 1958년 8월, 연방항소법원은 위원회가 밀러에게 답변을 유도했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파기했다.)

6월 29일, 밀러와 먼로는 밀러의 전원주택에서 결혼을 발표했다. 두 사람의 결혼은 센세이션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두 사람은 법정에서 판사 주재로 결혼을 하고 며칠 후 유대교 의식을 가졌다. 먼로는 유대교인이 된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영국으로 향했다. 먼로와 밀튼 그린이 만든 마닐린 멀로 프로덕션(MMP)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영화가 될 <The Prince and the Showgirl>은 영국의 국민 배우인 로렌스 올리비에 경(Sir Laurence Olivier 1907~1989)이 감독과 주연을 하게 되어 촬영 단계부터 영국에선 관심이 많았다. 이 영화를 촬영할 때에도 먼로는 수면제로 늦잠을 자고 상습적으로 지각을 해서 제작진은 고생을 했다.

로렌스 올리비에는 먼로와 영화를 하다가 몇 년은 늙었다고 혀를 찰 정도였다. 또한 올리비에는 먼로의 연기 코치로 촬영장에 와 있는 폴라 스트라스버그에 대해 방해가 된다면서 짜증을 내고 뉴욕으로 돌려보내고 그러면 폴라는 얼마 후 다시 런던으로 돌아왔다. 올리비에는 4개월 동안 지옥 같았다고 나중에 술회했다. 밀러는 먼로가 얼마나 어린 아이 같은지를 영화 촬영을 지켜보면서 깨달았다. 지루함을 느낀 밀러는 뉴욕을 다녀오고 먼로는 그것을 좋지 않게 보았다. 두 사람의 부부 관계는 이때부터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먼로는 런던에서도 밀튼 그린과 밀회를 계속했다. 먼로의 분방한 행동을 직접 본 밀러는 먼로가 정숙한 여인이 아님을 뒤늦게 깨달았다. 밀튼 그린 덕분에 <Bus Stop>에 이어서 <The Prince and the Showgirl>은 제작 기일과 예산을 지킬 수 있었다. 밀러는 밀튼 그린과는 함께 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결국 1년 후 그린은 마릴린 먼로 프로덕션(MMP) 지분을 10만 달러를 받고 넘겨주고 먼로와의 사업상 관계를 청산했다. 밀튼 그린이 떠남에 따라 MMP는 지속하기 어려워졌고 결국 먼로는 이를 정리하게 된다.

- 사진 (1) : 런던에 도착한 먼로와 밀러.
- 사진 (2) : 밀러 자택에서 열린 결혼식.
- 사진 (3) : 로렌스 올리비에와 먼로. 런던 사보이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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