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릴린 먼로의 피아노

작성일 : 2024-01-06 08:42조회 : 295

마릴린 먼로의 피아노

마릴린 먼로가 가장 아꼈던 물건은 어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하얀색 베이비 그랜드 피아노였다. 먼로는 어릴 적에 위탁가정과 고아원을 전전하고 살았기 때문에 어머니와 함께 피아노를 갖고 살았다는 이야기는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하지만 먼로의 생애 중 어머니와 함께 자기 집에서 살았던 시절이 1933년 여름부터 그 해 연말까지 약 6개월 동안 있었다. 그 때 먼로의 어머니는 중고 피아노를 사서 일곱 살인 먼로에게 피아노를 가르쳤고 음악에 소질이 있는 먼로는 피아노를 따라서 쳤다.

먼로의 어머니 글래디스 베이커(Gladys Baker 1902~1984)는 첫 남편 베이커와 15살 때 결혼해서 아이 둘을 낳았으나 1921년에 이혼했으며 두 아이는 아버지가 데리고 갔다. 글래디스는 1924년에 마틴 모르텐슨과 결혼했으나 반년 만에 집을 나와서 친구인 그레이스 매키와 함께 살았고 1928년에는 정식으로 이혼했다. 글래디스는 필름 회사에서 일을 했는데, 그의 상사였던 남자와 관계를 맺어서 1926년 6월 1일 먼로를 낳았다. 그 남자의 이름은 찰스 기포드(1898~1965)였는데, 그는 얼마 후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 (후손들의 DNA검사로 확인됐다.) 먼로가 태어났을 때 글래디스는 법적으로 모르텐슨의 부인이어서 먼로의 출생 이름은 노마 진 모르텐슨이었다.

먼로의 어머니 글래디스는 자유분방한 성격이라서 가사와 육아를 하지 못했다. 글래디스는 일을 해야만 해서 아이를 키울 수가 없었다. 더구나 그녀의 부모는 모두 정신병력이 있었고 글래디스도 성격이 불안정했다. 글래디스는 어린 먼로와 함께 우체부인 앨버트 볼랜더의 집에 들어와 살다가 일 때문에 먼로를 블랜더 부부에 맡기고 자기는 할리우드의 필름 회사에서 일을 했다. 글래디스는 주말에 와서 먼로와 시간을 보내고 주중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머물렀다. 블랜더 부부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라서 먼로를 잘 돌보았고 글래디스는 먼로의 양육비를 블랜더 부부에게 냈다.

1933년 여름, 글래디스는 뉴딜 정책으로 만들어진 정부 주택금융회사로부터 돈을 빌려서 할리우드에 작은 집을 구입했다. 글래디스는 영화배우 부부에게 집의 일부는 빌려주고 7살 된 먼로와 처음으로 단란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이 때 글래디스는 하얀색 중고 피아노를 샀다. 그 피아노는 프레데릭 마치라는 배우가 갖고 있다가 중고로 내어 놓은 것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피아노를 두드렸던 그 시간은 먼로에게는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좋은 시간은 얼마 가지 않았다.

앞서 정신병력이 있던 글래디스의 어머니가 사망했는데, 이어서 글래디스가 첫 남편과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죽었다. 그해 가을부터 글래디스는 정신쇄약 증상이 점점 심해지더니 이듬해 1월 글래디스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증상은 갈수록 심해졌다. 그 후 글래디스의 친구인 그레이스 맥키가 먼로와 글래디스의 법적 후견인으로 지정됐고, 먼로는 그 후 위탁가정과 고아원을 드나들면서 힘든 세월을 보내야만 했고 집과 피아노는 다른 사람에게 팔려나갔다. 그레이스가 더 이상 후견인을 할 수 없게 되자 먼로는 첫 남편 도허티와 결혼을 하게 된다.

배우가 된 후에 먼로는 자기 부모는 모두 사망했다고 말했다. 먼로는 어머니가 자기에게 콧수염을 약간 기른 잘 생긴 남자 사진을 보여주면서 그가 아버지라고 알려 주었으며, 자기가 아버지와 전화 통화를 했더니 아버지가 자기에게 전화를 하지 말라고 했다고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것이 사실인지, 아니면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먼로가 환상을 그리면서 한 이야기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먼로의 어머니는 그 후 정신병원에 오래 있었고 먼로가 그 비용을 부담했다. 글래디스는 유명한 딸을 알아보지 못했으나 딸보다 20년을 더 살고 죽었다. 먼로는 유언장에 어머니의 의료비와 생활비를 남겨 놓고 죽었다.

모델을 하면서 수입을 올리게 된 먼로는 어머니와 피아노를 쳤던 때를 그리워하고 혹시 그 피아노를 도로 살 수 있나 생각했다. 먼로는 중고 피아노 가게와 경매로 나오는 피아노를 살펴보았고 드디어 바로 그 피아노를 발견해서 구입했다. 먼로는 자기 아파트에 그 피아노를 들여 놓고 선(線)을 교체하는 등 수리를 했다. 먼로가 LA를 떠나서 뉴욕 맨해튼 아파트에 살 때에도 이 피아노를 갖고 갔고, 다시 LA로 돌아 올 때도 갖고 왔다. ‘엘리자를 위하여’ 같은 피아노 곡(曲)을 칠 줄 아는 먼로는 영화에서도 피아노 치는 장면에 나오곤 했다.

먼로는 죽기 전에 유언장을 통해 어머니에게는 생활비와 의료비로 10만 달러를, 그리고 어머니가 첫 결혼에서 낳은 언니에게 10,000 달러를 남겼다. 그리고 자신이 쓰던 물건은 자기를 아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면서 그 역할을 리 스트라스버그 부부에게 위탁했다. 스트라스버그 부부는 피아노는 물론이고 먼로가 입던 옷, 구두, 장신구 등을 인수해서 그대로 창고에 보관했다. 리 스트라스버그는 부인 폴라가 1966년에 죽자 그 이듬해에 28세 난 배우 애너와 결혼했다. 리 스트라스버그가 1982년에 사망하자 먼로가 남긴 물건들은 애너 스트라스버그가 관리하게 됐다.

애너 스트라스버그는 1999년 크리스티 경매회사를 통해 피아노 등 먼로가 남긴 물건을 경매에 내어 놓았다. 크리스티는 먼로의 피아노에 대해 10만 달러를 최저 경매가로 제시하고 경매에 들어갔다. 먼로의 피아노는 662,500 달러에 낙찰됐다. 먼로의 피아노를 이 가격에 산 사람은 가수 머라이어 캐리 (Mariah Carey 1969~ )였다. 만일에 이 피아노가 지금 경매에 나온다면 얼마나 할까는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먼로가 남긴 유산의 최대 수혜자는 먼로와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애너 스트라스버그였다.)

사진 (1), (2) : 먼로와 피아노.
사진 (3) : 크리스티 경매에 나온 피아노 등 먼로의 물건들.
사진 (4) : 머라이어 캐리와 먼로,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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