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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마릴린 먼로와 FBI
작성일 : 2024-01-30 09:03조회 : 285
마릴린 먼로와 FBI
1962년 5월 24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케네디와 에드가 후버(J. Edgar Hoover 1895~1972)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물론 알 수 없다. 하지만 후버가 다녀간 후에 케네디는 먼로로부터 오는 전화를 차단하고 피터 로포드로 하여금 먼로에게 전화를 걸어서 자신과의 관계는 끝났다고 전하라고 했음은 확인이 된다. 1990년대에 정보자유화법에 의해 공개된 FBI 문건 중에는 그 내용은 지워져 있지만 먼로가 멕시코시티에 있을 때 먼로를 감시하고 도청했음을 확인해 준 것이 있다. FBI는 멕시코시티에서 먼로를 감시했고, 그 결과는 후버에게 즉시 보고가 됐는데, 후버는 그것을 갖고 있다가 5월 24일에 케네디를 만나서 이야기 한 것이다.
FBI는 먼로가 공산당 활동 전력이 있는 아서 밀러와 결혼을 한 후부터 먼로를 감시해 왔다. 그런 먼로가 멕시코시티에서 그곳에 머물고 있는 미국인 공산주의자들과 가까이 했으니 당연히 감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에드가 후버는 케네디를 만나서 먼로가 일반인이 모르는 민감한 안보 사안에 대해 공산주의자들과 이야기했고 그것이 소련과 쿠바 대사관으로 흘러들어 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을 것으로 본다.
1950~60년대에 멕시코시티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 들어와 있는 CIA 멕시코 지부는 CIA 본부 외에는 가장 큰 규모였다. 그곳에서 중남미 전체, 특히 미국에게 중요한 중미(Central America) 지역 전체를 총괄하고 있었다. 과테말라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자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서 우익 정부가 들어서게 한 작전 본부도 CIA 멕시코 지부였다. CIA 멕시코 지부는 멕시코 정치에도 깊숙이 간여했다. 즉, CIA는 멕시코 대통령을 탄생시켰다는 이야기인데, 1970년대 초까지 그러했을 것으로 본다. 또한 멕시코시티에는 소련 및 동유럽 국가 대사관, 그리고 카스트로 정권의 쿠바 대사관이 있어서 멕시코시티는 냉전 시절 첩보전쟁의 최전선이었다. 미국 외교관 신분으로 멕시코 대사관에 나와 있는 CIA 요원들과 FBI 요원들은 소련 등 공산권 대사관에 접근하는 미국 등 서방인사를 감시했다.
중국 본토가 공산화되고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 의회는 정부 내의 공산주의 혐의자와 공산당 경력 민간인을 소환해서 심문하기 시작했다. 먼로의 남편이던 아서 밀러도 하원 위원회에 불려나갔고 답변을 거부해서 의회모욕죄로 기소돼서 고생을 많이 했다. 이런 분위기를 피해서 멕시코시티로 도피한 미국인들이 상당히 있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밴더빌트 가문인 프레데릭 밴더빌트 필드(Frederick Vanderbilt Field 1905~2000)였다. 그런데 먼로는 멕시코시티에 있으면서 필드 부부 등 공산주의 성향의 미국인들과 어울려서 시간을 보냈다. 먼로는 중국 공산혁명과 카스트로 혁명을 긍정적으로 보았기 때문에 망명인사들은 먼로와 의기투합했을 것이다. CIA 멕시코 지부는 감시 카메라와 도청, 그리고 정보원을 통해서 이들을 감시했고, 이런 레이더 망(網)에 먼로가 걸려들었다.
또 다른 문제는 케네디 형제가 여자 문제도 난잡하지만 말이 가볍다는 사실이다. 임기 초에 있었던 피그스 만 침공 작전도 새로 들어선 케네디 정부의 초보들이 말을 너무 헤프게 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먼로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정치와 외교 이슈에 관심이 많고 자기 생각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대통령과 법무장관인 케네디 형제가 먼로에게 쿠바 문제라든가 핵 실험 등에 대해 이야기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말하자면, 두 명의 케네디는 먼로와 섹스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고 그것을 흘려들은 먼로는 다른 사람에게 전하곤 했다.
에드가 후버는 멕시코시티에서 먼로가 프레데릭 필드 등 요주의 인물들과 나눈 대화에는 일반인이 도저히 알 수 없는 내용이 먼로의 입에서 나왔음을 알게 됐다. 프레데릭 필드 등은 멕시코시티에 나와 있는 소련이나 쿠바의 외교관 및 첩보원과 접선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에드가 후버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약한다면, FBI가 보기에는 먼로 때문에 미국 대통령과 그의 동생인 법무장관이 안보 위험 요소(national security risk)가 된 것이다. 이런 사정을 전혀 모르는 순진한 먼로는 위험한 곳으로 끝없이 빠져들어 가고 말았다.
1990년대 들어서 1962년 8월 초 날짜로 된 CIA 비밀문서 한 건이 비밀 해제되어 공개됐는데. 마릴린 먼로에 관한 문건을 종합해서 보고한 것이었다. 내용은 삭제되어서 알 수 없으나 CIA가 먼로를 관리했음을 보여 주는 증거였다. 이 문건에 결재를 한 책임자는 CIA 국장이 아니라 CIA 방첩단장(Counter-intelligence Chief)인 제임스 앵글턴(James Angleton 1917~1987)이었다. 서로 협력하면서 견제하는 관계인 FBI와 CIA 방첩단은 먼로가 야기하는 문제에 대해 공통된 우려를 갖게 된 것이다. 당시 CIA 국장은 케네디가 임명한 존 매콘(John McCone 1902~1991)이었으나 외부인사인 맥콘은 CIA를 장악하지 못했다. 반면에 부국장이던 리차드 헬름스(Richard Helms 1913~2002)와 제임스 앵글턴 방첩단장은 CIA 창업멤버였다. 존슨 대통령은 에드가 후버에 대해선 정년퇴직 조항을 없애서 계속 일하도록 했고, 리차드 헬름스를 CIA 국장으로 임명했다. 케네디 암살 연구자들은 에드가 후버와 제임스 앵글턴이 암살 움직임을 사전에 감지하고도 그대로 방치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들이 보기에 케네디 형제는 ‘분별력 없는 부잣집 아이들’에 불과했다.
- 사진 (1) : 먼로와 에드가 후버. 가운데는 당시 인기 코미디언이자 배우인 밀튼 벌리. 1950년대 전반부로 보인다. 먼로가 아서 밀러와 결혼한 후에 후버는 먼로를 주의인물로 관리했다.
- 사진 (2) : 프레데릭 밴터빌트 필드. 서가에는 젊은 시절의 마오쩌뚱과 저우엔라이의 사진이 놓여 있다.
- 사진 (3) : 케네디 임기 초인 1961년 2월, 백악관을 방문한 에드가 후버와 케네디 형제. 후버의 표정에 불쾌감이 완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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