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앤서니 서머스, 지니 칼멘

작성일 : 2024-02-04 22:32조회 : 270

앤서니 서머스, 지니 칼멘

마릴린 먼로의 죽음이 케네디 형제와 관련이 있다고 공식적으로 논의가 된 계기는 1985년에 나온 앤서니 서머스(Anthony Summers 1943~)의 <Goddess>였다. 아일랜드 출신으로 BBC 기자를 지낸 서머스는 3년 동안 600여명의 관계자를 인터뷰해서 먼로의 죽음을 파헤쳤다. 먼로가 죽고 난 후 20년이 지나서 케네디 형제는 물론이고 먼로의 정신과 의사 랠프 그린슨도 죽었으나 피터 로포드는 아직 살아 있었다. 알콜 중독으로 폐인이 되다시피 한 피터 로포드는 무엇인가 함축성 있는 말을 남겼다. 이렇게 해서 당시 사건을 목격했거나 이에 관해 인지했던 사람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고, 본인이 죽은 경우에는 그 자식들이 당시 아버지가 했던 말을 기억해 냈다. 진실의 문(門)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앤소니 서머스는 넷플릭스의 <The Mystery of Marilyn Monroe>(2022)에 내레이터로 나온다.

1990년대 들어서자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 든 당시 목격자들과 관련자들, 또는 관련된 무엇인가를 알았던 사람들은 이야기를 했다. 먼로의 죽음과 관련된 거의 모든 증거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목격자와 관련자들의 진술과 증언은 진실에 접근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오래된 사건에 대한 사람의 진술은 주관적이라서 신뢰성이 의심스러울 수 있으나 관련된 사람들의 진술을 짜서 맞추면 진실이 드러나거나 진실에 근접한 추정이 나올 수 있다. 따라서 먼로와 가까웠던 사람들의 진술은 진실에 접근하는 창문이 될 수 있다.

먼로가 배우가 되기 위해 어렵게 노력했을 때 사귀었던 애인이었고 먼로가 유명해진 후에는 먼로와 친구로 지낸 로버트 슬레처(Robert Slatzer 1927~2005)는 먼로가 죽기 두 주일 전에 먼로가 케네디 형제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슬레처는 먼로와 마지막으로 만난 날이 1962년 7월 중순이라고 했다. 먼로가 공중전화로 잠깐 만나자고 해서 자기가 차를 몰고 약속한 장소로 가서 먼로를 태우고 말리부로 드라이브를 갔다. (먼로가 공중전화를 이용했다는 것은 뒤늦게 먼로는 자기의 전화가 도청되고 있음을 알았음을 의미한다.) 그 때 먼로는 “케네디 대통령이 자기 전화를 받지 않더니 이제는 로버트 케네디마저 자기와 연락을 끊었다”면서 화가 잔뜩 나 있어서 슬레처는 “이제는 모두 잊어버리라”고 했으나 먼로는 “그럴 수는 없다”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먼로는 핸드백에서 메모장을 꺼내서 로버트 케네디와 나눈 대화 요지를 적은 부분을 슬레처에게 보여 주었는데, 거기에는 마피아를 통해 카스트로를 암살하려고 하며 지미 호파를 감옥에 보내려고 한다는 등이 적혀 있었다, 슬레처는 먼로에게 “왜 이런 메모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먼로는 “로버트가 자기를 만나면 이런 이야기를 해서 자기가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메모를 했다‘는 답했다고 한다. 슬레처는 먼로에게 조심하라고 하고 그 다음날 고향인 오하이오 콜럼버스로 향했다. 먼로가 죽자 슬레처는 먼로의 죽음은 케네디 형제와 관련이 있다고 직감적으로 느꼈다. 먼로가 슬레처에게 보여준 것이 먼로의 ‘레드 다이어리’(Red Diary)로, 먼로의 다른 서류들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일요일 밤에 누군가 침입해서 가져간 것이다.

먼로에게 전화는 특별한 존재였다. 항상 외로웠고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하는 먼로는 친한 사람들에게 밤늦게 통화를 자주 그리고 오래했다. 당시에는 장거리 전화가 매우 비싸서 스타가 되기 전의 먼로는 전화요금을 제 때에 내지 못해 고생을 하곤 했다. 먼로가 1961년 봄에 LA로 돌아 온 후에 가장 가까이 지낸 친구는 같은 아파트에 살던 지니 칼멘(Jeanne Carmen 1930~2007)이었다. 먼로가 브렌트우드로 이사한 후에도 지니 칼멘은 먼로의 집으로 자주 놀러왔고 전화도 자주 했다. 8월 5일 아침, 먼로가 죽었다는 뉴스가 나오자 칼멘은 깜짝 놀랐다. 바로 전날 밤에도 먼로와 통화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칼멘의 애인이었던 존 로셀리(John Roselli 1905~1976)가 전화를 해서 “생명이 위험하니까 무조건 빨리 LA를 벗어나라”고 했다. (존 로셀리는 샘 지앙카나의 LA와 네바다 사업을 총괄하던 마피아 거물이었다. 탁월한 저격수인 그가 댈러스에서 케네디를 저격한 4명 중 한 명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칼멘은 황급하게 LA를 벗어나서 애리조나로 피해갔고 가명으로 20년 동안 숨어 살면서 결혼을 하고 자식을 두었다. LA에서 모델과 배우, 그리고 묘기 골프 선수로 돈도 잘 벌고 프랑크 시나트라, 딘 마틴 등과 어울리면서 하루하루 재미있게 살던 32세의 칼멘이 모든 것을 버리고 LA를 떠난 이유는 무엇인가 ? 이유는 간단했다. 먼로가 케네디 형제에 대하여 모든 것을 칼멘에게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먼로가 죽던 날인 8월 4일도 먼로는 칼멘과 밤 9시~10시 사이에 통화를 했다고 지니 칼멘은 앤서니 서머스 등 먼로의 죽음을 파헤치는 탐사 작가들에게 이야기했다. 먼로는 칼멘에게 전화를 하고 그 시간에 자기 집으로 와달라고 거의 애원했으나 칼멘은 자기도 너무 피곤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내일 가겠다고 끊었다고 한다. 칼멘은 당시 먼로의 목소리는 수면제에 취하지 않은, 매우 정상적이었다고 기억했다. 칼멘은 그 때 자기가 먼로의 집으로 갔으면 어떻게 됐을까 하고 그 후 평생토록 생각했다고 한다. (먼로가 죽지 않았을 가능성 보다는 칼멘도 같이 죽었을 가능성이 컸을 것이다.)

칼멘의 기억이 정확하다면 먼로는 수면제를 다량으로 먹고 서서히 죽은 것이 아니라 급작스럽게 죽은 것이 되기 때문에 공식적인 부검 결과와 부합되지 않는다. 먼로가 과연 칼멘에게 8월 4일 밤에 전화를 했는지는 전화회사의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8월 5일 일요일 이른 아침, LA의 전화회사 GTE 건물에는 검은 양복을 입고 선글라스를 쓴 남자들이 들이닥쳐서 먼로의 전화기록을 통째로 가져갔고 그 후 그 기록은 사라져 버렸다.

지니 칼멘은 먼로가 황당한 꿈을 꾸고 있어서 자기는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으니까 잊어버리라고 먼로와 여러 차례 싸웠다고 말했다. 먼로는 케네디가 재클린과 이혼하고 자기와 결혼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먼로는 미국 최고의 미인인 자기가 젊고 잘 생긴 미국 대통령과 결혼해서 퍼스트레이디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대통령과 결혼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된 먼로는 법무장관과 결혼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는 이야기이다. 지니 칼멘은 절대로 그런 일이 생길 수 없다면서 먼로에게 정신 차리라고 몇 번씩 이야기했지만 먼로는 로버트가 부인 에셀과 이혼하고 자기와 결혼한다고 했다면서 칼멘에 정색을 하고 대들었다고 한다.

가정이 있는 남자가 부인과 이혼을 한다면서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다가 그렇게 뜻대로 되지 않으면 치정살인(癡情殺人)이 발생하기도 함은 누구나 알 것이다. 케네디 대통령은 또 다른 정부(情婦)였던 매리 마이어(Mary Pinchot Meyer 1920~1964)에게 1964년에 재선에 성공하면 재클린과 이혼하고 마이어와 결혼하겠다고 말했던 것은 확인된 바 있다. 케네디는 댈러스에서 죽기 얼마 전에 비서실장인 케네스 오도넬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오도넬이 인정한 바 있다. 그러니까 케네디가 먼로와 섹스를 하면서 그런 말을 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보아야 한다.

문제는 아버지를 모르고 자란 먼로는 항상 남자를 필요로 했다는 데 있다. 아서 밀러, 이브 몽땅 등 다른 남자와의 관계가 모두 끊어져 버린 먼로에게 케네디 형제는 마지막 희망이었다. 하지만 먼로는 그것이 위험할 수 있음을 잘 몰랐다. 케네디 형제도 그들과 먼로와의 관계가 자신들을 파멸시킬 수 있음을 뒤늦게 알았다. 무모하고(reckless)하고 철없는 형제는 위기감을 느꼈다.

- 사진 (1) : 앤서니 서머스. 아일랜드의 자택 서재.
- 사진 (2) (3) : 지니 칼멘 젊은 시절. 1960년 전후. 누워있는 남자는 입술 위에 골프 공을 올려놓고 있다. 그녀는 이런 묘기 골프(trick golf)의 여왕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
- 사진 (4) : 노년의 지니 칼멘, 히스토리 채널, 엔콰이어 TV 등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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