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로버트 케네디, 헬기로 떠나다

작성일 : 2024-02-16 07:54조회 : 258

로버트 케네디, 헬기로 떠나다

마릴린 먼로가 죽은 다음 날 아침 먼로의 집에 일찍 도착해서 무엇인가 이상하다고 느낀 뉴욕 헤랄드트리뷴의 조 히암스(Joe Hyams 1923~2008) 기자와 사진기자 윌리엄 우드필드(William Woodfield 1928~2001)는 먼로의 죽음을 둘러싼 주변 상황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조 히암스는 대학을 졸업하고 2차 대전 참전 후 1951년부터 뉴욕 헤랄드트리뷴 기자로 일하면서 LA에서 할리우드를 취재했다. 할리우드 취재가 10년째인 조 히암스는 LA를 잘 알았다. 사진기자로 출발해서 나중에는 극작가로도 성공하는 윌리엄 우드필드는 1962년 6월 22일자 라이프지(誌)에 나온 먼로의 풀장 누드 사진을 찍어서 유명해 졌는데, 그는 프랑크 시나트라 등 할리우드 배우들의 사진도 많이 찍었다.

히암스와 우드필드는 한 밤 중에 헬리콥터가 이착륙 하는 소리가 났다는 데 주목했다. 두 사람은 얼마 전까지 LAPD에서 일했던 전직 경찰관을 고용해서 8월 4일~5일 밤에 헬기 관련해서 경찰이 갖고 있는 정보가 있는지를 알아보게 했다. 그랬더니 바닷가에 있는 피터 로포드 저택의 이웃에서 그날 한 밤중에 헬기가 이륙을 해서 시끄러웠고, 바다 모래가 풀장에 날라 들었다는 민원이 들어왔음을 확인했다. 두 기자는 피터 로포드의 이웃 집 사람들을 만나서 8월 4일 밤 자정에서 5일 2시 사이에 피터 로프드 집 근처에서 헬기가 이륙했다는 증언을 얻어 냈다. 케네디가 대통령이 된 후에 피터 로포드의 집 근처에서 작은 헬기가 이착륙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웃 사람들은 종종 민원을 제기하고 불평을 했다. 히암스 기자가 고용한 전직 경찰관은 로포드의 이웃에 사는 워드 우드라는 사람으로부터 8월 4일 늦은 오후에 로버트 케네디가 벤즈 승용차를 타고 피터 로포드의 집에 오는 것을 보았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히암스 기자는 LA의 헬기 렌탈회사를 알아보았더니 먼로가 죽던 날 밤에 소형 헬기를 탔던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그 업체는 더 이상 알려줄 수 없다고 해서 취재는 진전이 없었다. 히암스와 함께 취재를 하던 우드필드 기자는 자기가 작은 헬기를 타고 상공에서 시나트라의 자가용 비행기를 찍은 적이 있음을 생각했다. 시나트라를 찍으면서 시나트라가 자랑하는 자가용 비행기를 찍은 것인데, 그 때 우드필드는 피터 로포드와 시나트라가 그 작은 헬기를 자주 이용한다는 이야기를 조종사한테서 들었던 것이다.

우드필드는 산타모니카 공항에 있는 코너스 헬기 서비스 회사(Conners Helicopter Service)로 그 조종사를 찾아가서 자기가 할리우드의 유명인사들이 헬기를 어떻게 이용하는가에 대한 기사를 쓴다고 능청을 떨고 헬기 운항일지를 볼 수 없냐고 했다. 그 조종사는 자기가 한번 태워 준 적이 있는 우드필드에게 운항일지를 보여주었다. 우드필드는 8월 4일~5일 밤에 그 헬기가 피터 로프드의 집에서 승객을 태우고 LA 국제공항에 내려주었다는 적혀 있는 운항일지 기록을 보았다.

이렇게 해서 히암스와 우드필드는 로버트 케네디가 8월 4일 오후 늦게 벤즈 승용차를 타고 로포드의 집에 도착했고 5일 자정을 넘은 1시 전후로 로포드의 집 부근에서 헬기가 이륙해서 LA 국제공항까지 운항했음을 알게 됐다. 두 기자는 이런 이상한 일이 먼로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고 직감적으로 느꼈다. 히암스 기자는 먼로가 죽던 날 밤 미국 법무장관이 몰래 자기 매형인 피터 로포드의 집에 도착했고, 한 밤 중에 헬기 편으로 LA 국제공항으로 떠났다는 기사는 초(超)특종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흥분했다.

히암스 기자는 로버트 케네디에 이런 사실에 대한 확인을 할 필요를 느꼈다. 히암스는 법무장관실로 전화를 걸어서 이런 내용의 기사를 쓰려고 한다면서 입장 표명을 요청했다. 얼마 후 법무장관실은 히암스에 이런 답을 전화로 했다. “법무장관은 당신이 그런 기사를 쓰지 않으면 고맙게 생각한다.” 이런 답을 들었음에도 히암스는 기사를 쓰고 뉴욕 헤랄드트리뷴 본사 편집국과 통화를 했다. 얼마 후 본사 편집인(senior editor)이 히암스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히암스의 단독 취재를 축하하면서도 이렇게 이야기했다. “비록 뉴욕 헤랄드트리뷴은 친(親)공화당 성향이지만 그런 기사는 미국 대통령에 한방을 먹이는 것이어서 우리는 게재하지 않기로 했다.” 히암스와 우드필드는 거대한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진실을 덮고 있음을 느꼈다. 두 사람은 그 후 20년 동안 이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그 후 우드필드는 사진작가로서 뿐 아니라 극작가로서도 성공했다. 조 히암스는 1964년에 독일 태생의 미모의 여배우 엘크 소머(Elke Sommer 1940~)와 결혼해서 소머의 남편으로도 유명해졌다. 그가 몸담았던 뉴욕 헤랄드트리뷴은 장기간 노사분규로 경영이 악화하더니 1966년에 폐간했다. 히암스는 그 후 여러 잡지의 기자와 기고가로 활약하고 책도 여러 권 펴내는 등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 후 20년 동안 먼로가 죽던 날에 로버트 케네디가 LA에 다녀갔다는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1980년대 들어서 <Goddess> 집필을 준비하던 영국 언론인 앤서니 서머스(Anthony Summers 1942~ )에 비로소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먼로가 죽던 날 로버트 케네디가 LA에 와서 피터 로포드를 만났으며 한밤중에 소형 헬기편으로 로포드의 집에서 LA 국제공항으로 떠났다는 사실은 먼로의 죽음에 로버트 케네디가 직접 연루돼 있음을 보여주는 ‘스모킹 건’이었다. 하지만 이는 히암스와 우드필드의 증언 뿐이었다. 서머스는 두 사람의 증언을 뒷받침하는 다른 증인을 찾아 나셨다.

코너스 헬기 렌탈 회사의 대표이던 할 코너스(Hal Conners)는 이미 사망한 후였다. 하지만 할 코너스의 딸 패트리셔는 먼로가 죽던 날 아버지가 밤 늦게 집에 들어왔다고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패트리셔는 5일 아침에 “먼로가 죽었다”고 아버지에게 말했으나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앤소니 서머스에게 이야기했다. 서머스는 당시 코너스 회사에서 일했던 조종사 두 명을 수소문해서 인터뷰했다. 이들은 할 코너스가 그 날 직접 조종했다고 20여 년 전에 있었던 일을 기억해서 이야기했다. 그 날 밤에는 그 회사 사장인 할 코너스가 직접 로버트 케네디를 피터 로포드의 집부터 LA 국제공항까지 태워 주었던 것이다.

8월 4일 자정 직전에 순찰 중이던 린 프랭클린(Lynn Franklin) 경관은 과속으로 달리던 벤즈 자동차를 세웠더니 피터 로포드와 로버트 케네디가 타고 있어서 과속 티켓을 발부하지 않고 로포드가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알려 준 사실이 있음도 먼로가 죽은 후 20년이 지나서 확인됐다. 따라서 여러 증언을 짜 맞추면 다음과 같은 스토리가 된다.

로버트 케네디는 8월 4일 낮에 LA에 도착해서 피터 로포드의 집에 머물다가 함께 먼로의 집을 갔다. 그리고 밤 10시 전후로 무슨 일이 있었다. 자정을 앞두고 로포드는 랠프 그린슨과 로버트 케네디를 태우고 자기 집을 향했는데, 가깝고 친숙한 도로임에도 흥분하고 정신이 황망한 로포드는 반대 방향으로 과속을 하다가 순찰 중이던 프랭클린 경관에 의해 적발됐다. 로포드를 알아 본 프랭클린 경관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자정이 넘어서 피터 로포드의 집에 도착한 로버트 케네디는 1시 경 대기 중이던 헬기를 타고 LA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그날 조종사는 코너스 회사의 사장인 할 코너스였다.

로버트 케네디는 LA 공항에서 대기 중인 소형 비행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이나 새너제이 공항에 도착했을 것이다. 공항에서 샌프란시스코 남쪽의 길로이(Gilroy)에 있는 베이츠 랜치(Bates Ranch)에 도착한 시각은 대체로 새벽 4시~5시 사이였을 것이다. 케네디 형제와 친분이 있는 존 베이츠의 랜치는 인적이 없는 한적한 곳이어서 새벽에 들어온 로버트 케네디를 본 목격자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로버트 케네디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부인과 네 아이들과 함께 길로이의 세인트 매리 성당에 가서 9시 30분 미사에 참석했다. 누구의 영혼을 위해서 로버트가 기도를 했을지는 상상해 볼 만하다. (그해 3월 24일 일요일, 팜 스프링스의 빙 크로스비 저택에서 먼로와 긴 밤을 보낸 케네디 대통령이 오전에 팜 스프링스 성당에서 미사를 한 것과 똑같은 멘탈리티이다.)

- 사진 (1) : 8월 6일 월요일자, LA 타임스 기사.
- 사진 (2) (3) : 헬기에 타고 내리는 프랑크 시나트라. 피터 로포드와 시나트라는 이 작은 헬기를 종종 이용했다. 8월 5일 밤, 로버트 케네디도 이 헬기를 탔을 것이다.
- 사진 (4) : 조 히암스와 그의 부인 엘크 소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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