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마릴린 먼로, 부검대에 오르다

작성일 : 2024-02-20 06:47조회 : 296

마릴린 먼로, 부검대에 오르다

사람이 죽으면 일단 그 시신은 안치소(morgue, mortuary)로 가서 보관되며, 특이한 문제가 없으면 죽은 사람의 가족이나 친지의 주관으로 장례식이 치러진다. 미국은 남북전쟁 후 시신을 방부처리하는 관습이 생겼고, 이렇게 시신을 생시의 모습으로 재현하는 것을 'embalm'이라고 한다. 문상객들은 고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는데, 이 과정을 ‘viewing’이라고 부른다. 장례식은 통상적으로 교회나 성당에서 진행하고 그 다음은 매장하거나 'crypt'라고 부르는 사자(死者)의 아파트에 안치하거나 화장을 한 후에 바다나 사막 등에 뿌린다.

만일에 그 죽음이 통상적이 아니면 부검(剖檢 : autopsy)을 거쳐야 한다. 살인 등 사망 경위가 의심스러운 경우에 경찰은 검시소(Coroner‘s Office)에 부검을 의뢰하며, 검시소에선 부검의(medical examiner)라고 불리는 부검 전문의가 부검을 진행한다. 검시관(Coroner)이 발표한 부검 결과의 공신력은 절대적이고 웬만하면 뒤집히지 않는다. 살인 사건이나 사망 경위가 이상해서 부검을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그 시신은 안치소를 거치지 않고 곧장 검시소로 향한다. 우리가 TV 영화 <CSI>에서 흔히 보는 장면이다.

먼로가 죽었을 때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검시관은 시어도어 커피(Theodore Curphey 1897~1986)이었다. LA와 주변의 작은 자치시를 포함하는 LA 카운티는 그 때나 지금이나 미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카운티였다. LA 다운타운 정부 청사 지하층에 위치한 LA 카운티 검시소는 검시관 외에 부검의 3명과 약물 분석가 등 스태프로 구성되어 있었다. LA는 살인, 자살, 사고사가 많은 큰 도시라서 부검을 해야 하는 시신이 넘쳐흘렀다. 검시관 시어도어 커피는 뉴욕주 나소 카운티에서 부검의를 20년 동안 했던 베테랑으로 1957년에 LA 검시관이 됐다. 마릴린 먼로 부검은 그가 LA 검시관으로 했던 가장 큰 사건이었다.

1962년 8월 5일 일요일 이른 아침, LA 다운타운에 있는 검시소에 출근한 부검시관(deputy medical examiner) 토머스 노구치(Thomas Noguchi 1927~)는 시어도어 커피 검시관으로부터 먼로를 부검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도쿄에 있는 니폰 의대를 졸업한 노구치는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LA 근교에 있는 로마 린다 의대에서 전공의 과정을 거친 후 1961년에 검시소에 취직을 했다. 그는 LA 검시소에서 가장 젊은 신참 부검의였지만 살인 등 사건이 많은 LA이기 때문에 부검은 통상적인 일이었다. 노구치는 먼로가 죽었다는 뉴스를 듣지 않고 출근해서 자기가 먼로를 부검하게 됐다는 사실에 놀랐다. 유명인사 부검은 시니어 부검의가 하는 것이 통상적이기 때문이었다. (노구치는 먼로의 부검으로 유명인사가 됐으며 1967년에 검시관으로 승진해서 1982년까지 검시관으로 있으면서 샤론 테이트, 재니스 조플린, 나탈리 우드, 존 벨루치 등 유명한 배우와 가수의 시신을 부검했으며, 1968년에는 로버트 케네디의 시신을 부검했다. 노구치는 가장 널리 알려진 일본계 미국인 중 한 명이었다.)

노구치는 토요일 밤이나 일요일 아침에 검시소에 들어 온 시신 명단을 살펴보았으나 먼로의 이름은 볼 수가 없었다. 노구치는 검시관 직원인 라이오넬 그랜디슨(Lionel Grandison)에게 확인을 해 보라고 지시했다. 그랜디슨은 먼로의 시신이 웨스트우드 빌리지 안치소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먼로의 시신을 검시소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이렇게 해서 뒤늦게 먼로의 시신은 검시소에 도착했다. 사인(死因)이 분명하지 않은 시신은 검시소로 직접 오는 것이 원칙인데, 어떻게 해서 먼로의 시신이 안치소로 가서 방부처리를 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는 의문이었다.

오전 9시, 먼로의 시신은 검시소에 도착해서 33번 박스에 안치됐으며, 먼로의 시신은 81128호 케이스가 됐다. 10시 15분, 검시소 직원 에디 데이(Eddie Day)가 먼로의 시신을 1호 부검대 위에 올려놓았다. 노구치가 부검을 시작했고 LA 검찰청의 존 마이너 검사(Deputy DA John Miner 1918~2011)가 입회했다. 마이너 검사는 의료법을 전공해서 남가주대학 의대의 실무교수를 겸하고 있는 부검에 경험이 많은 검사였다.

마이너 검사는 부검대 놓인 먼로는 마치 금방 일어나서 걸어 나올 것 같았다고 나중에 당시를 되돌아보면서 이야기했다. 노구치는 먼로의 복부를 절개하고 모든 장기를 검사했고 뇌(腦)를 가르고 조직을 살펴보았다. 먼로의 신체는 외과적 손상은 없었다. 부검이 끝난 먼로의 모습은 원래의 먼로와는 거리가 멀었다. 먼로의 얼굴은 사체 강직이 진행될 때까지 엎어져있었던 탓에 시반(屍班)이 생겨 있었다. 먼로의 시신은 등과 엉덩이 그리고 허벅지에 멍이 들어 있었으나 죽음으로 이어질 부상은 아니었다. 노구치는 먼로의 몸에 주사 자국이 있는지도 살폈으나 찾아 내지 못했다.

외과적 사망원인이 없었기 때문에 사인은 독극물 검사 결과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독극물 분석가인 랠프 애버나시(Ralph Abernathy)는 먼로의 피, 오줌, 위, 소장, 간 등 조직을 검사하기 시작했고 몇 시간 후 그 결과가 나왔다. 먼로의 혈액에서 4.5 밀리그램 퍼센트 수면제 성분이 검출됐고 알콜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다. 먼로는 평소에 샴페인을 즐겼지만 그 날은 알콜을 먹지 않았다. 먼로의 사인은 약물이었다. 간(肝)에서 13 밀리그램 퍼센트의 펜토바비탈이 검출됐으며, 혈액에선 8 밀리그램 퍼센트의 클로랄 하이드레이트가 검출됐다. 펜토바비탈의 제품명은 넴뷰탈(Nembutal)로, 불면증에 시달리던 먼로가 자주 먹었던 수면제였다. 클로랄 하이드레이트는 위험성이 덜한 수면제였다. 먼로의 위(胃)는 공복 상태였고 수면제를 과다하게 복용하면 생기는 핏빛 라이닝이 있었으나 수면제가 위나 소장(小腸)에 남아 있지는 않았다.

8월 10일, 노구치는 먼로가 숨진 베드룸에서 수면제 빈 약병이 발견됐으며 치사량을 넘는 성분이 혈액에서 확인됐다는 이유로 먼로의 사인을 자살(suicide) 또는 사고사(accidental)로 분류하고 그 위에 ‘probable suicide'로 적은 최종 부검서를 제출했다.

- 사진 (1) : 검시소에 도착한 먼로의 시신.
- 사진 (2) : 부검이 끝난 후 먼로 사진. 타임/라이프사의 Leigh Wiener(1929~1993) 기자가 찍은 사진. 위너 기자는 유일하게 검시소에 들어가서 부검이 끝난 먼로를 찍었다. 타임/라이프사는 사진이 너무 끔찍해서 공개하지 않았으나 유일하게 이 사진이 유출됐다.
- 사진 (3) : 시어도아 커피 검시관과 토머스 노구치(가운데). 옆은 동료 부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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