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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1962년 10월 26~27일
작성일 : 2024-03-30 20:59조회 : 169


1962년 10월 26~27일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냉전이 종식됨에 따라 냉전 시절에 있었던 일들이 점차 밝혀지기 시작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에 소련 지도부가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는 1990년대 들어서 비로소 보다 잘 알게 됐다.

1962년 10월 26일, 흐르시쵸프는 미국이 26일 밤에서 27일 아침 사이에 쿠바를 공습할 가능성에 대비해서 방공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는 쿠바 현지의 소련 지휘관이 보낸 보고를 국방장관으로부터 들었다. 국방장관은 미국이 공격하면 미국에 쓴 맛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흐르시쵸프에게 건의했다. 흐르시쵸프는 긴급하게 소집한 최고회의에서 “앞서 논의한 협상 조건 외에 터키에 있는 미국 미사일을 철수시킨다면 우리가 승리하는 것”이라고 말해서 다른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흐르시쵸프는 소련의 지척(咫尺)인 터키 동부에 미국이 주피터(Jupiter) 중장거리(intermediate) 핵미사일을 배치한데 대응해서 미국의 지척인 쿠바에 중장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했는데, 미국이 터키에 배치된 주피터 미사일을 철수하는 조건으로 쿠바에서 소련 미사일을 철수한다면 소련이 실질적으로 승리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흐르시쵸프는 월터 리프먼의 10월 25일자 칼럼을 보여주면서 미국이 이를 받아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물론 냉전이 끝난 후 공개된 자료에 의해서 알려진 사실이다.)

10월 27일 일요일 오전 10시, 백악관에서는 다시 확대안보회의가 열렸다. 분위기는 긴박했고 전쟁은 불가피해 보였다. 당시 분위기가 얼마나 침통했던지,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은 나중에 그의 회고록에서 자기는 그 다음 토요일 밤을 보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썼다. 회의 도중 케네디의 측근이며 스피치 라이터인 시어도어 소렌슨이 AP 통신 기사를 갖고 들어왔다. 흐르시쵸프 수상이 미국이 터키에서 미사일을 철수하면 소련도 쿠바에서 미사일을 철수하겠다고 케네디 대통령에게 통보했다고 모스코바 라디오 연설을 통해 발표했다는 뉴스였다.

백악관 회의는 AP 기사로 혼란에 빠져들었다. 맥조지 번디 안보보좌관은 케네디가 그런 제안을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고 소렌슨도 이에 동조했다. 케네디는 이 제안이 불합리하지 않다고 말했다. 터키에서 주피터 미사일을 철수하더라도 폴라리스 핵미사일을 탑재한 핵 잠수함을 터키 근해에 배치하면 같은 효과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으나 주피터 철수는 민감한 외교적 사안이라서 신중해야 한다는 반론이 있었다. 맥조지 번디는 터키에서의 미사일 철수는 NATO의 문제이기도 해서 공개적으로 수용하기 어렵다는 의견이었다. 협상을 주장해온 조지 볼 국무차관보도 이 점에 대해선 번디와 같은 생각이었고, 로버트 케네디도 그러했다. 

10월 27일 오후 늦게 합동참모본부는 그날 플로리다의 공군기지에서 발진한 고공 정찰기 U-2기가 쿠바 상공에서 쿠바에서 발사된 지대공 미사일에 맞아서 격추됐고 조종사 루돌프 앤더슨 소령은 탈출하지 못하고 사망했다고 백악관에 보고했다. 또한 미 해군 정찰기 RF 크루세이더기(機)도 대공포 공격을 받았다고 보고했다. 백악관에서 열린 확대안보회의에서 합동참모본부 구성원들은 엇갈린 입장을 보였다. 케네디가 새로 임명한 합참의장 맥스웰 테일러 대장은 U-2가 공격을 받으면 공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입장이라면서, 쿠바에 배치된 소련 대공미사일 기지를 공습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공군참모총장 커티스 르메이 대장은 이로 인해 우리는 소련의 보복에 노출되기 때문에 잃어버리는 것이 더 많다면서 반대했다. 처음에는 가장 강경한 주장을 폈던 르메이 대장이 입장을 바꾼 것이다. 육군참모총장 얼 휠러(Earl Wheeler 1908~1975) 대장도 르메이 대장을 지지하면서 U-2기 격추가 흐르시쵸프의 의도가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합참은 월요일로 예정된 U-2기 출격을 취소했다. 월요일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구태여 더 이상 고공 정찰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군이 공격을 받으면 즉시 공습을 시작하겠다고 앞서서 말한 바 있었던 케네디였지만 그는 U-2기 격추가 흐르시쵸프의 의도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해서 공격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쿠바 위기가 해소된 후 30년이 지나서 알게 된 바에 의하면, U-2기를 격추한 미사일은 쿠바에 들어와 있는 소련군이 흐르시쵸프에게 사전승인을 받지 않고 카스트로와 의기투합해서 발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카스트로는 쿠바에 들어와 있는 소련 무기로 미국을 초토화시켜야 한다고 말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소련군 지휘관들과 어울려서 그렇게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명령도 없이 U-2기를 격추했음을 알게 된 흐르시쵸프는 큰 충격을 받았고 격노했다. 그는 카스트로가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를 깨닫고 핵미사일을 쿠바로 배치한 자신의 조치를 후회했다.

한편, 백악관은 터키에서 주피터 미사일을 철수하는 문제로 혼란에 휩싸였다. 터키 정부는 미사일 철수에 반대했을 뿐더러 이 사안은 NATO가 동의해야만 가능한데 NATO 국가의 분위기도 이에 부정적이라는 현지 대사들의 보고가 들어왔다. 케네디와 확대안보회의 멤버들은 더 이상 시간이 없기 때문에 무언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 사진 (1) : 백악관에서 열린 확대안보회의(ExComm). 
- 사진 (2) : 쿠바 상공에서 격추된 U-2기 잔해.
- 사진 (3) : 협상대상으로 떠오른 주피터 중장거리 핵미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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