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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1962년 10월 27일 카리브 해
작성일 : 2024-03-31 20:40조회 : 160


1962년 10월 27일 카리브 해


1962년 10월 22일,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에 대해 해상봉쇄 명령을 내리고 미군의 방위태세를 데프콘 III(DefCon III)로 상향시켰다. 미 해군은 63척으로 구성된 대규모 함대를 카리브 해로 보냈다. 항공모함 3척(엔터프라이즈, 랜돌프, 인디펜덴스)과 순양함 2척, 구축함 20척, 그리고 각종 지원함 외에도 대잠수함(ASW) 작전단이 포함된 대규모 해상전력이 쿠바를 포위했다.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관리하는 전략공군사령부(SAC) 사령관 토머스 파워 대장은 SAC의 방위태세를 데프콘 II로 상향시켰다. 당시 국방부 프로토콜에 의하면 이런 상황에선 대통령의 지시나 승인이 없이 SAC 사령관은 방위태세를 데프콘 II로 올릴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데프콘 II 보다 한 등급 높은 데프콘 I은 탄도 미사일을 소련을 향해 발사하는 것을 의미했으니 세계는 아마겟돈의 문턱에 서있었다. 

10월 27일 토요일, 미국과 소련 사이의 군사적 대립은 최고도에 이르렀다. 쿠바에 주둔하고 있던 소련군은 카스트로와 상의해서 미군 정찰기 U-2기를 대공미사일로 격추시켰다. 카스트로는 미소간 전쟁이 일어나기를 원했으나 백악관 확대안보회의가 U-2기 격추에 대해 보복하지 않기로 해서 전쟁은 발발하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그날 카리브 해에서 핵전쟁의 서막(序幕)이 열려서 인류 역사는 종말을 고(告)할 뻔 했다. 케네디와 흐르시쵸프가 전쟁을 하기로 결정하기도 전에, 그리고 미국과 소련의 군부 지도자들이 공격을 명령하기도 전에 핵전쟁이 일어날 뻔했기 때문이다.

소련이 쿠바에 핵 미사일을 배치함에 따라 소련 해군 사령부는 쿠바의 마리엘 항구에 탄도 미사일을 탑재한 잠수함 전대(戰隊)를 보내기로 했다. 하지만 당시 소련 해군이 보유하고 있던 핵 추진 잠수함은 모두 정비와 수리를 위해 드라이 도크에 정박 중이어서 641급 디젤-배터리 추진 잠수함 4척을 쿠바로 향하도록 했다. (NATO는 641급 잠수함을 폭스트롯(Foxtrot)급으로 불렀다.) 쿠바로 향한 641급 잠수함 4척은 재래식 잠수함이지만 통상적인 어뢰 외에도 15 킬로 톤급 핵폭탄을 장착한 어뢰를 1발씩 장전하고 있었다. 15 킬로톤 급은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자폭탄 규모의 파괴력에 해당했다. 미군 정보당국은 그들이 폭스트롯 잠수함이라고 부르는 641급이 핵 어뢰 무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했다.
 
10월 1일, 북해에 면한 콜라 반도 해군기지를 출발한 B-59 등 잠수함 4척은 10월 24일 미군이 해역을 봉쇄한 쿠바 근해에 도착했다. 641급 잠수함은 당시로선 최신형이었으나 대서양의 거친 파도를 헤치고 항해하는 과정에서 밸브와 파이프가 손상되는 등 여러 가지 문제를 겪었다. 재래식 잠수함은 충전을 위해 수면에 부상해야 하지만 미군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최대한 수중에서 항해를 했다. 추운 바다인 북해와 북대서양에서 작전을 하기 위해 제작한 641급 잠수함이 처음으로 더운 바다에 오자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잠수함 실내가 너무 덥고 오랜 잠수 항해로 인해 산소가 고갈돼서 정신을 잃어버리는 대원들이 속출했다. 

핵 어뢰를 장착한 641급 잠수함 4척이 항공모함 3척 등 60여 척으로 구성된 대규모 미 해군 전력이 포진한 카리브 해역에 진입했으니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 당시 소련 군함에는 함장 외에도 정치장교가 탑승했는데, 카리브 해에 도착한 잠수함 4척도 그러했다. 4척으로 구성된 전대(戰隊) 중 지휘함에 해당하는 B-59에는 함장과 정치장교 외에도 전대를 지휘하는 함장급 장교가 탑승하고 있었다. 소련 국방부는 만일에 모스코바와 연락이 두절된 상태에서 자위권 발동으로 핵 어뢰를 발사할 경우에는 함장, 정치장교, 그리고 전대 지휘장교가 모두 동의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B-59의 함장은 발렌틴 사비스키(Capt. 2nd Rank Valentin Savisky) 중령이었고 정치장교는 이반 말레니코프이었고, 전대 참모장 바실 아키포프(Capt. Vasily Arkhipov 1926~1998) 대령이 동승하고 있었다. 카리브 해에 포진한 미 해군 전단(戰團)의 대잠(ASW) 작전본부는 B-59를 포착하고 구축함 5척과 항모에서 발진한 대잠 초계기를 동원해서 B-59를 추적했다. 미군 구축함은 B-59를 수면으로 부상(浮上)토록 하기 위해 연습용 폭뢰를 투하했다. 미 해군의 추적 때문에 나흘 동안 수면으로 부상하지 못해서 배터리가 위험한 수준으로 저하한 상태에 빠진 B-59는 심각한 위험에 처했다.

B-59 함장 사비스키 중령은 모스코바 사령부과 통신을 시도했으나 전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이들은 며칠 전에 미국과 소련이 쿠바 미사일 문제로 전쟁을 할 수도 있다는 뉴스를 들은 후 어떠한 상황인지를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 구축함의 폭뢰 공격을 받게 되자 함장은 미국과 소련이 이미 전쟁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산소 고갈과 배터리 소진으로 잠수함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공포에 휩싸인 사비스키 함장은 자위권을 발동하자고 주장했고 정치장교도 이에 동의했다. B-59의 어뢰발사대에는 핵폭탄을 장착한 어뢰가 발사명령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 한방이면 미국 항공모함 랜돌프 함과 이를 호위하는 구축함 함대를 모두 증발시켜 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바실 아키포프 대령은 동의하지 않았다. 아키포프가 동의하지 않아서 핵 어뢰는 발사할 수 없었고 B-59는 수면으로 부상했다. 잠수함이 수면으로 부상하는 것은 전시에는 항복을, 그리고 평시에는 적대적 행위를 포기함을 의미함에도 바실 아키포프는 핵전쟁 보다는 수면 부상을 택했다. 미 해군 대잠 초계기 S-2는 부상한 B-59에 대해 기관총을 발사했는데, 승조원들이 긴장한 나머지 기관총을 발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른 잠수함 3척도 B-59와 행동을 통일하기로 했기에 모두 핵 어뢰 발사를 포기했다. B-59 등 소련 잠수함 4척은 미 해군 감시 하에 카리브 해 수역을 떠나 본국 기지로 되돌아갔다.

소련 기지로 돌아온 B-59 등 잠수함은 소련 해군에게 좌절을 안겨주었다. 미 해군에게 백기를 들어버리는 수치를 당했으나 함장 등 지휘관을 문책할 수 없었다. 그들의 핵 잠수함은 모두 고장이 나서 수리 중이었고, 재래식 잠수함을 그렇게 먼 곳으로 보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었다. 미 해군에 대한 열세를 절감한 소련은 그 후 해군력 증강에 박차를 가했다. 원래 핵 잠수함 장교였던 바실 아키포프는 계속해서 핵 잠수함 부대에서 근무했고 중장으로 은퇴했다. 쿠바 위기 때 국방장관이던 로버트 맥나마라는 바실 아키포프가 아니었으면 인류는 그날 종말을 맞았을 것이라고 2000년대 들어서 회고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우발적으로 핵전쟁이 일어날 뻔한 경우는 또 있었다. 쿠바 위기 후 53년이 지난 2015년 10월, 노년(당시 73세)에 접어든 존 보드니(John Bordne)라는 사람이 놀라운 증언을 했다. 그는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오키나와에 있는 전략공군사령부(SAC) 산하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기지에서 공군 사병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가 배치된 미사일 발사대의 책임장교는 윌리엄 바셋(William Bassett) 대위였다. 당시 전략공군사령부에는 데프콘 II가 발령된 상태였다. 10월 28일, 바셋 대위는 금방 들어 온 암호 코드를 그가 갖고 있던 미사일 발사코드와 비교해 보았더니 일치했다. 만일에 별도로 도착한 제3의 코드와도 일치한다면 바셋 대위는 미사일 발사 스위치를 누르게 돼 있었다. 바셋 대위가 제3의 코드를 열었더니 놀랍게도 같은 번호였다.

평소에 신중한 바셋 대위는 그럼에도 이상하다고 느꼈다. 핵 미사일을 발사할 상황이라면 데프콘 I이 발령돼야 하는데, 여전히 데프콘 II 상태였다. 그는 인접한 3개 발사대를 책임지고 있는 중위 세 명에게도 발사하지 말고 잠시 기다리라고 급히 연락했다. 그 중 하나를 책임지고 있던 중위는 발사명령을 따라야 한다면서 스위치를 누를 참이었다. 바셋 대위는 대원을 그 중위에게 급히 보내서 정말로 발사할 것 같으면 그를 사살할 것처럼 위협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바셋 대위는 미사일 운영센터(MOC) 당직장교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을 요청했다. 그러자 당직 장교는 발사 코드를 철회했다. 시스템 오작동이었던 것이다. 바셋 대위가 책임졌던 미사일은 소련과 중국 본토로 날라 가게 돼 있었다. 2015년에는 바셋 대위가 이미 작고한 후라서 존 보드니의 주장을 검증할 수 없었지만 얼마 후 보드니와 같이 근무했다는 노년의 신사가 나타나서 보드니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증언했다. 따라서 이들의 주장은  진실로 평가되고 있으며 그런 일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를 파헤치기 위한 노력이 진행 중에 있다. 바셋 대위는 군 복무 중 인지한 비밀은 무덤까지 갖고 가야 한다는 원칙에 충실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 사실이 확인된다면 그도 인류 종말을 막은 사람으로 평가될 것이다.

- 사진 (1) : 수면으로 부상한 B-59 잠수함. 미 해군 헬기가 위에서 순찰하고 있다.
- 사진 (2) (3) : 바실 아키포프. 쿠바 위기 당시와 은퇴 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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