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LEESANGDON

나라와 사회를 올바르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칼럼

애들레이 스티븐슨
작성일 : 2024-04-03 14:19조회 : 155


애들레이 스티븐슨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유엔 주재 미국 대사였던 애들레이 스티븐슨(Adlai Stevenson II 1900~1965)은 처음부터 소련과 협상으로 문제를 풀자고 주장했다. 1949년부터 4년간 일리노이 주지사를 지낸 스티븐슨은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서 프린스턴 대학과 노스웨스턴 로스쿨을 나왔다. 그의 조부는 19세기 말에 부통령을 지냈고 부친은 일리노이 주 국무장관을 지냈다. 그는 1952년과 1956년에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였으나 공화당 후보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에게 패배했다.

1960년 대선을 앞두고 그는 출마는 하지 않았으나 전당대회에서 누구도 대의원 과반수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경우에는 후보로 징발될 가능성은 배제하지 않았으나 케네디가 과반수를 확보함에 따라 케네디가 후보가 됐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 일리노어 여사는 케네디는 형편없는 가문 출신이라고 생각해서 마지막까지 스티븐슨이 후보가 되기를 희망했었다. 

1952년 대선 과정에서 스티븐슨은 바닥에 구멍이 난 구두로 유명해졌다. 한 사진기자가 스티븐슨의 선거 운동을 따라다니다가 다리를 꼬고 앉은 스티븐슨을 찍었는데, 선거 운동을 하느냐고 많이 걸어서인지 구두 밑창에 구멍이 나 있었다. 이 사진은 유명해졌고 사진을 찍은 윌리엄 갤러거 기자는 퓰리처 상(償)을 받았다.

그 해 공화당은 2차 대전 영웅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를 대선 후보로 영입해서 민주당 정권 20년을 끝내려고 맹렬하게 선거운동을 했다. 공화당은 스티븐슨이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공부만 잘한 'Egghead'라서 일반 국민의 생활과 애환을 모른다고 비난했다. ('Egghead'란 공부를 많이 해서 머리에 들은 것이 많은 계란 모양의 길쭉한 머리통을 가진 사람을 비꼬는 용어인데, 실제로 스티븐슨의 머리는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스티븐슨이 구멍이 난 헌 구두를 신고 선거운동을 하고 있음이 알려지자 공화당은 그런 비난을 할 수 없게 됐다. 그러자 공화당은 민주당이 또 집권하면 국민들이 가난해져서 구멍 난 구두를 신고 다니게 된다고 광고를 했다. 민주당은 구두에 구멍이 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머리에 구멍이 난 것이 문제라고 받아쳤다.

1952년 대선에서는 아이젠하워가 대승을 거두었고 스티븐슨은 공화당을 싫어하는 9개 남부 주에서만 승리했다. 특히 스티븐슨은 자기 고향 일리노이에서도 패배했다. 1956년 대선에서도 스티븐슨은 민주당 후보로 나갔으나 현직인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더 크게 패배했다. 대통령에 당선된 케네디는 스티븐슨을 유엔 주재 대사로 임명했는데, 스티븐슨은 대사가 되자마자 발생한 피그스 만 침공 사건 때문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 두 차례 대선에서 패배했음에도 스티븐슨은 양심적이고 지적이며 포퓰리즘이나 극단적 이데오르기에 치우치지 않은 정치인으로서 오늘날까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대통령이 됐더라면 미국은 핵무기 확산을 일찍부터 억제했을 것이며 베트남에 개입하지도 않았을 것으로 학자들은 평가한다. 그는 65세 나이로 심장마비로 별안간 사망했다. 애들레이 스티븐슨처럼 지적이고 양식을 갖춘 정치인은 이제 영영 사라져 버렸나....
 
- 사진 (1) : 구멍 난 구두 사진. 1952년 선거 운동 중.
- 사진 (2) : 변호사 시절 자신의 서재에서.
- 사진 (3) :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담소하는 장면.
- 사진 (4) : 유엔 총회에서 스티븐슨 대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