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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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전쟁의 상처
작성일 : 2024-06-29 14:25조회 : 183


전쟁의 상처

고등학교 시절에 즐겨 들었던 노래 중에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이 있었다.  전쟁에 반대하는 가사를 담은 이 노래는 당시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에서 미국의 젊은이들이 많이 불렀다. Kingston Trio, Brothers Four, Joan Baez 등이 이 노래를 불렀다. 가사에는 “When will they ever learn”이란 구절이 나온다. 전쟁이 참혹한 것임을 도무지 언제 깨달을 것이냐는 의미다. 베트남 전쟁은 내가 대학 4학년이 되던 1973년에 파리 협정 체결로 끝났다. 그리고 내가 대학원 2학년이 되던 1975년 봄, 사이공이 함락됨에 따라 베트남은 완전히 공산화되고 말았다. 베트남에서 전사한 우리 장병 중에는 나와 비슷한 연배도 있다. 1972년 북베트남 춘계 대공세 등 막바지에 전사한 장병 중에는 1950년생과 드물게는 1951년생이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17세까지 징집했던 미군에는 내 나이 또래 전사자가 적잖게 있다.

베트남 전쟁을 겪은 미국은 다시는 그런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전쟁의 참담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점령하자 전쟁을 준비하면서도 전쟁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하고 전쟁을 하더라도 짧게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걸프 전쟁’이었다. 그러나 철없는 그의 아들 조지 W. 부시는 무모한 이라크 전쟁을 일으켜서 또 다른 국가적 재앙을 초래했다. 국가의 부름을 받은 남편과 아들 딸,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오지 못한 가정은 큰 아픔을 겪어야 했다. 베트남 전쟁과 마찬가지로 이라크 전쟁과 2차 아프간 전쟁은 명분도 실리도 없었던 전쟁이었다. 아라크 전쟁과 아프간 전쟁은 징집병이 치른 전쟁이 아니라 자원병이 치른 전쟁이었다. 그래서 그 상처는 더 큰 것 같다. (사진)

나는 이상한 핑계로 병역을 회피해서 총을 만져보지 못한 자들은 6.25가 어떻고 뭐고 말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전쟁이 무엇이고 군복무가 무엇인지를 아는 지도자는 결코 전쟁을 쉽게 입에 올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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