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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경향신문 2009년 8월 5일자 대담 기사
작성일 : 2009-08-05 01:21조회 : 1,893
<경향신문 2009년 8월 5일자 대담 기사>
보수지식인 이상돈 중앙대 교수 현정부에 ‘쓴소리’
<글 유인경·사진 김정근기자>
ㆍ“李정부 이념좌표는 親기업… 원칙·일관성 상실”
ㆍ경제 타당성 없는 4대강 추진 등 보수 역행
ㆍ대통령 모범답안 찾는다면 아무것도 하지마라
“현 정부의 문제는 제도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국민과 여론을 무시하는 대통령의 독주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사실상 대통령 형제(이명박 대통령, 이상득 의원)가 국정에 앞장서는 모습은 쿠바의 카스트로 형제 같은 독재국가에서나 있는 것이다.” “만일 대기업 7~8개가 지분을 갖고 참여하는 방송이 생긴다면 그 방송은 ‘전경련 방송’이 되고 말 것이다.”
이토록 이 정권에 대해 아프다 못해 독한 말들을 토해내는 주인공은 진보나 좌파진영의 논객이 아니다. 한때 조선일보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가장 대표적 보수주의자로 꼽히는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의 어록들이다. 이 교수는 최근 가장 많은 토론프로에 단골처럼 초대받고 그가 홈페이지에 올린 글은 대부분 언론에 인용된다. ‘합리적 보수주의자’의 대표 인사인 이 교수가 정작 가장 매서운 이명박 정부의 저격수(?)가 된 이유가 뭘까. 삼복더위보다 정부와 정치인들 때문에 더 속이 끓는 국민들을 대신해 그를 만났다.
-요즘 왜 그렇게 이 정부를 대담하다 못해 매섭게 비판합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정통 보수의 가치관을 다 망가뜨리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에 현 정부는 점진적 변화,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으로 요악할 수 있는 정통보수의 가치관에 역행합니다. 보수에게는 원칙과 도덕성, 일관성이 가장 중요한데 그게 없어요. 이 정부가 성공할 것이라고는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실패가 빨리 왔어요. 경제적 타당성이 없는 대운하를 이름까지 4대강 정비사업으로 바꿔가며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고 절망감을 느꼈죠. 과거 행정수도에 거세게 비판하던 경제학자들도 대운하엔 침묵하는 것도 참 안타까워 보수의 진정성을 알리려고 글을 쓰는데 최근에 많이 인용되어 저도 당혹스럽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오히려 좌와 우,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심화된 이유는 뭘까요.
“사실 이명박 정부 들어 발생한 큰 사건은 엄격히 말해서 이념과 별 관련이 없습니다. 인수위의 ‘어륀지’ 파동, 장관인사 검증 파동, 쇠고기 수입개방 문제, 용산사태, 신영철 대법관 사태, 4대강 사업 등은 정책과 법치주의 문제인데 이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오히려 모든 것을 좌파의 책동으로 몰아친 탓에 보수가 위기에 처했다고 봅니다. 굳이 이 정부의 이념적 좌표를 규정하자면 친(親) 기업이죠. 노무현 정부는 소수자 인권을 중요하게 생각해 대체복무제를 추진하려 했으나 이 정부는 백지화시켰고 롯데월드는 공군이 반대했지만 거꾸로 허가했어요. 전자는 기업이 없고 후자는 기업이 있는 것의 차이죠.”
-진보진영에서도 가장 합리적 보수주의자로 인정받는데 이 교수가 판단하는 한국 보수의 문제점은 뭔가요.
“보수주의자라면 언뜻 김동길·조갑제 같은 분을 연상하게 되는 것처럼 지적 기반이 취약하고 노년층에게 국한되어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특히 현 정부 들어서 원칙과 일관성을 상실했어요. 원칙과 일관성은 보수의 덕목인데 말이죠. 또 먹고살기 위해 우파운동하는 사람들의 기회주의도 문제입니다. 진정성도 없고 이념도 없는 생계형 보수, 생계형 우파가 등장하면서 보수가 우습게 돼버렸어요. 보수가 이렇게 조롱거리가 되는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제발 제대로 된 공무원이 소신을 펴고 일할 수 있게 해야 하고 보수 교수들이나 학자들도 목소리를 내서 건강한 비판을 해야 하는데 다들 입 다물고 보신만 하는 것 같습니다.”
-이력서를 보면 ‘진보주의자’여야 마땅할 것 같습니다.
“반공이면서도 민주주의, 이런 게 저의 DNA일 것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4·19가 일어났는데 그때 총소리를 들었고 불탄 서울신문 건물을 본 것이 지금도 강한 추억으로 남아 있어요. 경기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68년에 미국과 서구에서 일어난 스튜던트파워와 뉴레프트 운동에 큰 충격을 받았어요. 미국 사회와 미국 정치, 베트남 전쟁에 대한 깊은 관심도 그때부터 생겼습니다. 70년대인 대학, 대학원 시절에 좋아했던 미국 정치인은 민주당인 헨리 잭슨 상원의원이었어요. 대소련강경파이면서 국민기본권 등 내정에서는 진보적이었죠. 그런데 정작 민주당은 조지 맥거번, 지미 카터 같은 대소련유화파 진보주의자를 대통령 후보로 뽑더군요. 미국 민주당에 실망했죠. 이런데 관심이 많아 법대생이면서도 사법시험은 공부할 수가 없었어요. 미국 유학 시절에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석유가격 규제철폐로 요술처럼 휘발유가격이 내려가는 것을 체험했죠. 레이건의 통쾌한 발언(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부르는 것 등)을 보며 그를 흠모하게 됐고 민주당 내의 보수파가 공화당으로 옮겨가듯 저도 그후 미국 공화당과 보수적 정책을 좋아하게 됐습니다.”
-지난 대선 때는 이회창 후보의 캠프에서 활약했는데 왜 그분을 지지했나요.
“솔직히 MB만 아니면 보수진영의 누구라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MB는 절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될 사람으로 확신했거든요. 이유는 법과 원칙을 무시하고 독선적인데다 대운하 같은 황당무계한 발상, 각종 의혹까지 너무 많죠. 전 BBK보다 그분의 전과 14범 중 사법방해 등이 더 심각한 범죄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MB에게 진심어린 충고를 해드리거나 벤치마킹을 하라고 조언한다면….
“제발 그분이 아무것도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만약 모범답안을 찾는다면 미국의 켈빈 쿨리지 대통령을 배우라고 권하고 싶군요. 그분은 아무것도 안 하셔서 태평성대를 만들었는데 후임자인 후버 대통령이 후버댐을 만드는 등 토목업에 몰두하다 결국 대공황이 왔죠.”
-그럼 박근혜 의원을 차기 대통령감으로 지지하나요.
“박 전 대표와 전 70년대 대학입학생이란 것 외에는 공통점이 별로 없습니다. 탄핵 역풍 후 한나라당을 재건하고 특히 국가보안법 개정반대, 사학법 개정반대 투쟁에 깊은 인상을 받긴 했죠. 저는 박 전 대표가 미디어법, 4대강 사업 등에서 MB와 차별화되어야만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다음 대통령은 비MB계열의 보수 또는 진보가 될 것입니다. 그저 빨리 시간이 흐르기만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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