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애미티 슐래스의 '잊혀진 사람' 번역본 해제

작성일 : 2010-02-27 00:51조회 : 2,079

북월드에 소개된 애미티 슐레스의 잊혀진 사람(The Forgotten Man)이 한국어로 출판되어 나왔습니다. 2008년에 나와서 호평을 받은 책이 번역된 것입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대공황과 뉴딜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아래는 번역본의 권말에 제가 쓴 '해제'입니다.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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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티 슐래스, 잊혀진 사람 (위선주 옮김, 웅진 리더스 북, 2010, 27,000원)
해제

우리나라에 ‘뉴딜’은 부진한 경제를 다시 살리는 요술램프로 알려져 있다. 노무현 정권은 수도이전이 ‘한국형 뉴딜’이라고 주장했었고, 이명박 정권은 4대강 사업을 ‘경제를 살리는 뉴딜’이라고 둘러댔다. ‘뉴딜’이 “일자리를 늘리고 경제를 발전시키는 묘약(妙藥)”처럼 인식이 된 것은 1960년대 이후 박정희 정권이 주도해서 성공시킨 경제개발계획이 뉴딜과 유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1930년대의 대공황을 루스벨트 정부가 뉴딜로 극복했듯이 박정희 정권은 공단을 건설하고 댐을 세워서 조국 근대화를 이룩했다는 인식이 널리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미국의 뉴딜에 관한 한 그런 ‘일반적 상식’은 진실과 거리가 멀다.

1929년 10월의 주가 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은 미국 역사에 있어 큰 불행이자 오점으로 남아있다. 많은 사람들은 1920년대에 만연했던 투기 자본주의 때문에 주가 폭락 사태가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1920년대는 황금과 같은 시대였지만 소설 ‘위대한 개츠비’가 보여 주듯이 투기와 한탕주의가 팽배한 시기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당시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해서 단기에 그칠 불경기가 대공황으로 이어졌으며, 1933년에 대통령에 취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시행한 뉴딜 정책으로 미국이 대공황을 극복했다고 알고 있다. ‘박정희 신화’를 ‘한국형 뉴딜’로 알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 뿐 아니라 많은 미국인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뉴딜에 관한 이러한 ‘일반적 상식’은 잘못된 것이다.

2008년에 미국을 덮친 금융위기는 ‘대공황’이 결코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대공황을 연구해서 박사학위를 딴 경제학 교수 출신인데, 그는 초(超)인플레이션 등 그 어떠한 것도 대공황 보다 더 나쁘지는 않다는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버냉키가 막대한 연방자금을 풀어서 리먼 브라더스 파산과 서브프라임 주택금융으로 초래된 금융경색을 해결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허버트 후버가 투기경제를 바로 잡겠다면서 돈줄을 조여서 단기로 끝날 경기침체를 ‘대공황’으로 만들었던 역사의 교훈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다. 오바마 행정부가 ‘경기진작책’(The Stimulus Package)이란 이름으로 천문학적인 재정을 풀어서 일단 경기지표를 되살렸다는 점에서 루스벨트의 뉴딜을 빼어 닮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무지 뉴딜 시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대공황에 대한 일반적 상식이 잘못임을 지적한 경제학 저술은 많이 있다. 그러나 대공황 시대에 과연 미국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해 일반독자가 읽을 만한 책은 찾아보기 어려웠는데, 2007년에 나온 애미티 슐래스의 ‘잊혀진 사람’은 그런 공백을 메워주기에 충분하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논설위원을 지내고 지금은 블룸버그 통신의 칼럼니스트로 활약하는 애미티 슐래이스는 이 책에서 1929년-1940년에 걸친 미국의 대공황 시대의 역사를 소설처럼 잘 그려내고 있다. ‘대공황에 대한 새로운 역사’라는 부제목이 보여 주듯이 저자는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이 대공황을 종식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황을 불필요하게 장기화시켰음을 설명하고 있다.

1932년 대통령 선거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자신이 대공황을 끝내고 경제를 살리겠다고 약속했다. 그가 추진한 정책이 바로 ‘뉴딜’이다. 그러나 루스벨트는 결코 대공황을 끝내지 못했다. 루스벨트 행정부는 농산물 가격 폭락을 막는다면서 계란과 우유를 정부 고시가 보다 싸게 파는 상인을 처벌하고, 최저임금제를 강화해서 저임금에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취업을 막았다. 그 대신 루스벨트는 대형 토목공사를 발주하고 소련을 본 딴 집단농장을 건설해서 고용을 늘리고자 했다. 이런 시도에도 불구하고 경제상황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루스벨트는 그 책임을 부유층 탓으로 돌렸다. 부유층에 많은 세금을 부과하고 대기업에 독점금지법을 발동하자 투자와 소비 심리가 더 위축되어 가장 극심한 ‘대공황 중 대공황’이란 위기가 닥쳐왔다. 뉴딜은 실패한 것이다.

책의 제목 ‘잊혀진 사람’(The Forgotten Man) 이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책을 읽은 독자가 판단할 수 있게 돼 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취임 초인 1932년 4월, “오늘날 같은 불행한 시대는 경제 피라미드의 바닥에 있는 ‘잊혀진 사람’에 대한 신뢰를 공고히 하는 플랜을 요구하고 있다”고 연설했다. 루스벨트는 실업에 허덕이는 빈곤층이 ‘잊혀진 사람’이며, 자신이 이들을 구하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하지만 ‘잊혀진 사람’은 1883년에 예일 대학의 경제학자 윌리엄 섬너가 처음 사용한 용어이다.

섬너 교수는 당시에 태동하던 사회적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꼬집었다. “A는 고통을 겪고 있는 X를 도와야 한다고 B를 설득한다. A와 B는 X를 돕기 위한 법률을 제정한다. 이 법률은 이 논의에 참여하지 않은 C로 하여금 X를 돕도록 강요한다. C는 전혀 생각되어지지 않는, ‘잊혀진 사람’이다. C는 성실하게 일하고 투표하고, 또 항상 돈을 낸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대공황 시절에 정말로 잊혀진 사람이 누구였나”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책은 1937년 말 뉴욕 브루클린에서 굶주림에 시달린 13세 소년이 자살한 사건으로 시작한다. 1938년 들어 미국의 실업률은 20%를 넘는 등 공황이 한층 심해졌다. 유럽은 공황을 벗어났지만 미국만 유독 공황이 더 심해 진 것이다. 1938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상하원 의석수와 주지사 숫자를 늘리는데 성공했다. 1930년 이후 공화당이 처음으로 선거에서 선전(善戰(선전))한 셈이다. 1940년 들어 공화당은 다가 오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공화당은 기업인 출신으로 뉴딜에 맞서 싸운 웬델 윌키를 후보로 지명했지만 윌키는 2200만 표를 얻어서 2700만 표를 얻은 루스벨트에 패배했다. 큰 전쟁을 앞둔 시점에서 미국민은 루스벨트를 계속 선택했던 것이다.

책은 대공황 이후 후버와 루스벨트 행정부가 취한 정책이 공황을 장기화시키고 심화시켰음을 잘 보여 준다. 토목기사 출신으로 시장과 금융을 신뢰하지 않았던 후버는 주식시장이 폭락하자 시중에 대한 자금공급을 줄이고 정부지출을 늘리는데 주력했다. 자국 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의회가 통과시킨 보호무역법안에 서명해서 무역전쟁을 유발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지식인들은 소련을 훌륭한 대안으로 보았는데,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집단농장을 건설했던 콜럼비아 대학의 렉스포드 터그웰 교수와 루스벨트 행정부의 톱 브레인이 된 아돌프 벌리가 대표적이었다.

1932년 11월 대선에서 승리한 루스벨트는 취임하자마자 전에 없던 정책을 밀고 나갔다. 농업에 면허제를 도입해서 농지를 줄였고, 돼지고기 가격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새끼돼지 600만 마리를 살(殺)처분했다. 먹을 것이 떨어진 실업자들은 새끼 돼지를 죽여서 묻어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아연실색했다. 루스벨트는 테네시 계곡에 대형 댐을 여러 개 건설해서 고용을 늘리고 경제를 살리고자 했지만 테네시 계곡 댐은 불필요했던 면이 많았다.

루스벨트 행정부는 부도덕한 대기업 때문에 공황이 생겼다면서 기업인들을 옥죄었다. 1920년대 공화당 정권에서 재무장관을 오래 지낸 앤드루 멜런을 탈세 혐의로 수사했고, 그가 소유한 알코아를 독점금지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법무부는 파산으로 투자자에 큰 손해를 입힌 전기사업가 새무엘 인설을 기소했다. 멜런을 기소하려는 시도는 실패했고, 인설은 결국 무죄로 석방되었다. 정부는 경제를 살리겠다면서 온갖 법규를 만들어내서 기업의 투자의욕을 막았다. 정상적으로 사업을 하던 사람들이 연방정부의 책상머리들이 만들어낸 법규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기소됐는데, 브루클린에서 유대식으로 닭을 도살하여 팔던 스켁터가(家)가 대표적인 경우였다.

책은 미국식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인 앤드루 멜런과 뉴딜의 한 축을 이끌었던 렉스포드 터그웰 교수의 행로(行路)를 비교해서 보여준다. 후버와 루스벨트의 반(反)시장 정책에 좌절한 멜런은 고향 피츠버그에 멜런 연구소(The Mellon Institute)를 세웠고, 그가 평생 모은 미술품을 미국민의 품에 넘기기 위해 워싱턴 한복판에 세운 미술관을 세우고 자신의 모든 소장품을 기증하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The National Gallery of Art)이 탄생했다.

루스벨트의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되자 경기는 더욱 나빠졌고 주가는 계속 하락했다. 집단농장을 건설하는데 많은 예산과 노력을 퍼부은 터그웰은 비로소 자신의 구상이 실패했음을 깨닫고 정부를 떠났다. 터그웰이 그리던 농업 유토피아 건설은 실패로 끝난 것이다.

1940년 대선에 패배한 후 윌키는 고향 인디아나의 엘우드에 돌아와서 연설을 했다. 윌키는 섬너 교수가 이야기 한 원래의 ‘잊혀진 사람’이 중요하다고 했다. 윌키는 “‘잊혀진 사람’은 우리에게 자신들의 존재를 기억해 줄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는 단지 위대한 미국을 향한 우리의 모험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요구할 뿐이다”고 말했다. 저자는 ‘잊혀진 사람’이 닥쳐오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을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이라는 말로 책의 끝을 맺는다. 전쟁을 해야 하는 루스벨트는 대기업에 대한 적대적 정책을 포기했고, 천만 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전선(戰線)으로 향해서 실업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대공황이 끝나버린 것이다.

‘잊혀진 사람’은 경제정책에 있어 잊어서는 안 될 교훈을 제시한다. 경기침체를 정부가 재정지출을 확대해서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대공황으로 신음하고 있을 때 미국과 국경을 마주 대고 있는 캐나다는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유독 미국만 혹독한 공황을 겪었다는 사실은 “뉴딜이 대공황을 해결했다”는 명제가 허구임을 보여준다. 뉴딜 시대에 건설된 여러 개의 댐은 전력을 공급하는 등 좋은 효과를 가져왔지만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는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뉴딜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 라스베이거스 근처의 후버댐은 뉴딜 전에 건설하기로 예정되었던 것으로 뉴딜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 우리가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어온 뉴딜의 대표적 성과라는 테네시계곡공사(TVA)는 실패한 공기업의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정치인들이 툭하면 내세우는 ‘국민’은 묵묵히 일하고 세금을 내는 원래의 ‘잊혀진 사람’이라는 점 역시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이 책은 국민이 낸 세금을 자기 돈처럼 생각하고 그것으로 무엇을 해서 경제를 살리겠다는 ‘장밋빛 약속’을 늘어놓는 정치인을 경계해야 함을 깨닫게 해 준다.

이상돈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c) 이상돈, 웅진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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